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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쎄오 Oct 19. 2023

육아의 어려움은 어디서 오나?

23.09.24 아빠가 되어 보니 조금은 알겠네요

육아가 쉽지 않을 것이란 건 진작부터 어느정도 각오하고 있었지만, 정확히 어떤 부분이 어떻게 힘들어서 사람들이 힘들다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천상 P형 인간이기 때문에 굳이 미리 공부하려 할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저 '닥치면 알게 되겠거니'의 마인드로 여기까지 왔다.


물론 사람마다 힘든 포인트가 다르겠지만, 내가 겪은 어려움을 돌이켜 보면 '시간에 대한 통제권'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을 할 때는 일반적으로 해야 할 분량이라던가 절차가 비교적 명확하고 그것을 수행했을 때의 기대 결과물도 예측 가능했다. 또한 일의 양에 따라 내가 시간을 어떻게 분배하여 사용하면 문제 없이 수행할 수 있을 지 판단하고 실행하는 것도 나의 몫이었고, 다시 말하자면 일 하는 시간에 대한 통제력을 상당 부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아기 육아는 정말 그 반대이다. 물론 대략적인 하루 일과가 있고, 똑게육아를 비롯한 베스트셀링 육아서를 열심히 탐독하며 먹놀잠 스케줄링, 수면교육, 각종 놀이 방법 등을 섭렵한 나다. 이론대로라면(!) 지구는 스케줄에 맞게 충분한 영양섭취와 놀이, 수면을 취할 수 있고 그 중간중간에 나는 내 시간을 가지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기는 예측가능성을 싫어하나 보다. 밤중 수면패턴이 꽤나 잡혔다지만 갑자기 새벽에 깨서 한 시간을 내리 울지를 않나, 먹놀잠 패턴을 무시하고 거의 한 숨의 낮잠도 안 잔 채로 끊임없이 칭얼대지 않나, 온갖 방법을 써서 겨우 잠 든 지구를 침대에 내려놓으면 십 분이 채 안 되어 숨 넘어가게 울어대는 일도 다반사였다.


무엇보다도 신기한 것은 등센서이다. 깨어 있는 상태의 지구를 바닥에 내려 놓기만 하면 빼액 울기 시작한다. 역방쿠나 바운서, 아기체육관, 트립트랩 등을 총동원하지만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운다. 그러다 보니 내 몸이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지구의 안녕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깨어 있는 상태의 지구를 두고 화장실을 가려다가도 서럽게 울어대는 지구의 목소리를 들으면 갑자기 맥이 탁 풀리면서 미루게 되고, 밥은 가장 간단하게 집어먹을 수 있는 것으로 먹는 둥 마는 둥 하게 된다. 시간에 대한 통제력이 정말 제로에 수렴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업무는 보통 내가 펑크를 내더라도 커버를 해 줄 백업이나 다른 담당자가 있지만, 육아는 그렇지 않다. 만약 나 혼자 육아를 하는 중이라면 그 안에서의 이슈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매듭지어야 한다.  


 사실 이 부분은 아내가 일을 시작할 10월이 되면 닥쳐올 가장 큰 걱정 넘버 원이기도 하다. 과연 온전히 나 혼자 지구를 잘 케어할 수 있을까? 며칠만에 지쳐 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하기 위해 육아휴직을 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우리네 어머니들이나 주변의 모든 엄마들은 대부분 그렇게 해 오셨다. 보통 '흔한 것 = 가치 없는 것', '모두가 하는 것 = 쉬운 것'으로 여겨지게 마련인데, 지구가 생긴 후로 그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한 명 한 명의 사람들이 모두 태어나서 누군가의 손에 길러지는 과정을 통해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므로 출산과 육아는 정말 흔한 것이고 모두가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결코 무가치하다거나 쉬운 것으로 폄하될 수 없다. 되려 믿을 수 없이 신비하고 놀랍도록 필사적인 과정이 출산과 육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깨달음을 지구가 나보다는 빨리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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