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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두달홍천살이 Sep 06. 2020

4월은 미얀마의 새해, 물 축제 ‘띤잔’ 보내기

이웃 공동체와의 나눔으로 가득한 미얀마인들의 삶을 느끼다  

4월은 미얀마, 태국, 라오스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 새 해를 맞이하는 달이다. ‘바꾸다’는 의미를 가진 미얀마 어 ‘띤잔(Thingyan)’은 불교에서 기원한 행사로, 불교가 주 종교인 이웃국 태국과 라오스에서는 각각 ‘송크란’, ‘송칸’이라고 부른다. 


띤잔 명절(또는 축제) 기간에는 지난해의 죄, 실수 등 과거의 때를 벗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기념으로 서로에게 물을 뿌려 준다. 또한 4월은 동남아시아에 속하는 이들 국가가 가장 더워지는 시기로, 우기가 시작하기 전에 물을 뿌리며 더위를 잊고 새로운 해의 농사를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비록 과거에 불교에서 시작된 행사이지만 현재는 미얀마 내에 살고 있는 인구 전체가 남녀노소 인종, 종교, 문화를 막론하고 함께 즐기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2017년 띤잔 연휴는 4월 13-17일 5일간 진행됐다.  


띤잔은 여러 주체들마다 각각의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어떤 이들 (주로 젊은이들)에게는 마치 대학교 축제인 것처럼 먹고, 마시고, 뛰놀며 기존에 억눌린 모든 억압을 터뜨리며 사회 규율을 무시하는 기간인 것 같았다. 길거리에 쓰레기가 난무하고 트럭 뒤에 탄 무리들이 마치 세상을 정복하는 것처럼 도로를 휘젓고 다녔다. 4월 15일 시내 19번가에서 MITV라는 방송사기 진행하는 가요 무대에 구경 나갔다가 사람들이 띤잔의 의미를 잊고 싸움을 벌이는 모습에 눈살을 찌 뿌리기도 했다. 주요 방송사나 생산업체들에게는 행사 개최와 마케팅으로 최고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장사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추석이나 설날에 물이 추가된, 조금 더 요란한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닌수와 함께 닌수 남편이 일하는 방송국에서 개최하는 행사에 참여했다. 유명 가수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사람과 물이 뒤 범벅이 된 무질서한 행사장 모습
돈을 주고 호스를 맡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을 뿌릴 수 있고, 미니 트럭을 빌린 사람들이 도시를 휘비고 다니며 축제를 즐긴다. 




나는 오랜 전통을 가진 명절 '띤잔'이 단지 공격적으로 물을 뿌리며 술에 취해 먹고 즐기는 시간이 아닐 거라는 직감을 느꼈고, 4월 13일 축제 첫날 인터넷을 검색해 띤잔에 대해 모르던 정보들을 얻었다. 


띤잔 첫째 날에는 독실한 불교 신자라면 불교에서 지켜야 할 계율을 준수한다. 

점심 이후에는 금식을 하고, 오락이나 외모를 꾸미는 것을 삼간다. 또한 전통 의상을 차려 입고 사원을 방문해 부처 상에 성수를 뿌리는 의식을 치른다. 밤에는 평소보다 덜 호화스럽고 불편한 장소에서 잠을 잔다. 모두 평소 누리던 욕구를 자제하고 내면을 다지는 순간을 위한 규칙이었다. 그래서 나도 마음을 비우고 그동안의 잡념을 보내고자 하는 바람으로 점심식사 이후 밤 12시까지 금식을 시도했다. 미얀마어로 금식을 ‘우도’라고 부른다. 그 기간과 정도는 다르지만 마치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이 매 년 약 한 달간 가지는 금식기간인 라마단(Ramadan)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둘째 날부터는 동네 곳곳에서 밖에 나와 서로에게 물을 뿌리기 시작한다. 

띤잔 기간 배운 점이 있다면 싫은 것을 피할수록 피하는 나만 괴롭다는 거다. 나는 온몸을 적신 채 밖에 돌아다니고 싶지 않아 대부분 물을 피해 다니느라 온 신경을 주변에 두어야 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순간만큼은 서로에 대한 경계 없이 물을 뿌리는 상황에서 그 상황을 피하려는 것만큼 힘겨운 일도 없었다. 나를 겨냥해 물을 뿌리려는 사람이 있으면 얼굴이 굳어지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만약 내가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처럼 함께 젖었다면 신경 쓸 일도 없었을 거다. 이 경험을 통해 띤잔이란 내 마음에 있는 불편한 마음을 알아차리고 고치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첫째 날 숙소 근처에 사는 현지 친구 닌수 집에 초대받은 덕분에 정이 넘치는 띤잔을 보낼 수 있었다. 

도로 뒤편으로 향하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자동차 소음으로부터 조용해지고, 닌수가 사는 동네가 나타난다. 한 마디로 정말 평화롭고 살기 좋은 동네 같았다. 그 요인은 한 가족처럼 모여 사는 동네 사람들 간의 정과 유대에 있는 듯 보였다. 집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또 서로 가깝게 마주 보고 있었다. 모든 집 아이들이 집 앞에 나와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고, 모든 어른들이 이웃집 아이들을 자신들의 가족처럼 돌봐 준다. 이날 나는 동네 아줌마들과 마당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띤잔 명절 떡 ‘몬 롱 예 포(Mont Lone Yay Paw)’를 빚었다. 한국 꿀떡과 유사한데 찹쌀가루를 반죽해 동그랗게 만들어 그 안에 미얀마 전통 천연 설탕인 타냐 덩어리를 넣는다. 한국에서는 주로 떡을 쪄서 먹는데, 미얀마는 끓는 물에 삶아 먹는 게 신기했다. 물에 덩어리들이 동동 뜨면 채로 건진 후 코코넛 가루를 얹어 먹는데, 그 이름 ‘몬 롱 예 포’도 ‘물에 뜨는 간식’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 함께 앉아 수다를 나누다가 이 동네 아줌마들이 주로 미얀마 동남부의 몬 지역(Mon State)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됐다. 마치  우리나라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드라마 한 장면에 있는 것 같았다. 과거 지방에서 상경한 우리 부모세대가 같은 지역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살았던 옛날처럼, 이곳에서도 같은 고향 사람들끼리는 서로 돕고 또 양곤 토박이 주민 및 다른 민족들과도 서로 화합하며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한 나라의 민족 평화와 화해는 한 골목 안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품는 날이었다. 

닌수네 집으로 향하는 골목에 들어서자, 미얀마 주민들의 정겨운 삶이 펼쳐진다 
닌수네 동네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동네 아줌마들과 마당에 모여 ‘몬 롱 예 포’를 빚던 즐거은 시간
‘몬 롱 예 포’ 를 삶는 과정
쫄깃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한국의 꿀떡과 비슷했다 
닌수네 이웃집에서 우리를 초대해 맛있는 국수를 차려 줬다. 인정이 넘치는 동네다. 




마지막 날에는 어르신들의 머리를 감겨드리고 손톱을 깎아 드리는 등 공경하는 봉사를 하고 복지시설에 기부를 하는 등 베푸는 참여를 한다. 물고기 등 갇혀 있던 자연 생물체를 물에 방생하며 자유를 빌기도 한다고 한다. 


나는 인터넷을 통해 양곤 곳곳에는 노인 복지 시설 'Home for the Aged(노인을 위한 집)'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 거주지 인근에 있는 한 오래된 시설을 발견했다. 현지 친구를 통해 그곳에 연락을 취해 방문 의사를 밝혔더니 흔쾌히 수락을 해 줬다. HNINZIGON(닌지곤)이라는 이름의 이 노인 복지 기관은 1933년 도 우 준(Daw Oo Zun)이라는 60대 여 스님에 의해 처음 시작됐다. 1944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시기 전까지 그녀는 불법을 기반으로 노인들을 섬기는 삶에 헌신했다. 2차 세계대전 기간 폐허가 된 닌지곤은 1941년 문을 닫아야 했지만, 인도주의자이자 Alin신문사의 매니저였던 알린 우 띤 (Alin U Thin)의 노력으로 1943년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이후 1955년에 바한 타운십(Bahan Township)에 위치한 안정적인 부지에 재정 착해 현재까지 운영되어 오고 있으며, 양곤에서 저명한 공무원들과 기부자 및 봉사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NGO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전 8시경 내가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공식적인 손톱깎이 및 머리 감겨 주기 행사가 끝난 뒤였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마당에 나란히 마주 보고 앉아 계셨다. 어쩔 줄 몰라하는 내게 기관 관계자 분께서 손톱깎이와 손톱을 다듬는 도구를 주며 손톱을 다듬어 보라고 하셨다. 나는 인위적인 활동이 싫었지만 할머니들 한 분 한 분께 무릎을 꿇고 앉아 눈을 맞추었고 손을 마주 잡고 인사를 나눴다. 아기처럼 왜소해진 몸으로 나에게 인자한 웃음을 보내는 그분들을 통해 오래전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졌다. 그들의 모습에는 그분들이 살아온 삶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살고 있는 환경만 다를 뿐 노인들을 마주하는 느낌은 세계 어느 곳이나 같았다. 


행사를 마친 후, 공무원직을 은퇴하고 현재는 닌지곤에 단기로 복부하고 계신 현지 관계자분의 안내로 기관 전체를 둘러볼 수 있었다. 60여 년의 시간 동안 체계적으로 발전해 온 닌지곤은 노인들의 병원, 체육관, 물리치료실, 찻집, 식당, 기도실 등 다른 현지 공공복지시설보다 훨씬 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듯 보였다. 일본 국제협력단 (JICA)이 7만 달러 상당의 다양한 의료 장비를 기부했다는 기념비를 발견했다. 일본의 영향이 미얀마 곳곳에 스며 있어 감탄했다. 본 시설의 존립 목적은 미얀마 전역에서 집을 잃고 희망이 없는 노인들에게 도움과 보살핌을 제공하고, 이곳에 여생을 맡긴 노인들에게 평화로운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모든 노인들이 닌지곤에 입소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곳에는 약 240명 만을 수용 가능하며, 입소를 위해 충족되어야 할 몇 가지 규칙이 있었다. 70세 이상이어야 하며, 스스로 부양이 불가능하며, 도움 없이도 거동이 자유롭고, 신체적이고 정신적으로 건강하며, 당파적인 정치활동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이곳에서는 아침 5:30, 점심 10:30, 티타임 13:30, 저녁 16:30 이렇게 하루에 4번 식사 시간이 있다. 떠나기가 아쉬웠던 나는 기관에 요청을 해 10:30 있을 점심시간 급식 봉사를 하기로 했다. 밥, 국, 반찬을 식탁에 준비하며 이곳에서 일하시는 아줌마와 학생 봉사자와도 금세 친해졌다. 이곳 고등학생들도 학업 기간 이수해야 하는 일정 봉사시간이 있다는 게 인상 깊었다. 직원과 일반 봉사자 외에도 이 날은 띤잔이라 그런지 다른 방문객들이 많이 와 있었다. 미얀마 밀크티 회사에서도 유니폼을 입고 노인들께 제품을 기부하고자 나와 있었다. 관리자의 안내로 다 함께 불교식 기도문을 외우고 식사를 시작했다. 기도 중 ‘타두, 타두, 타두’ 라는 말을 자주 외는데 이는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자신의 전생의 업을 벗고 자유로운 혼을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이 날은 티타임 이후 금식이라 몇몇 할머니들께서 반찬 통을 들고 와서 밥과 반찬을 챙기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밥통을 들고 다니는 내게 할머니들이 내게 오라고 손짓하고서 아이 같은 욕심으로 조금만 더 달라고 하시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식사 종료 후 설거지까지 마치고 나서 기관을 나왔다. 


미얀마에는 기부문화가 정말 잘 잡혀 있다. 자비와 나눔을 통한 상생을 강조하는 불교문화의 기반 때문인 것 같다. 미얀마인들은 보통 생일 및 결혼 등 자신과 가족 구성원들에게 기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주도적으로 자신의 이웃과 공동체에 기부를 한다. 이 날도 기부 사무실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의 줄이 끊이질 않았다. 여기서는 봉사 활동 시간 인증뿐 아니라 기부에 대해서도 기념으로 인증서를 만들어 주고 기념 촬영도 해 준다. 점심시간 나는 노인들에 대한 나의 관심과 사랑을 조금이나마 표현하고자 기관에 소액을 기부했다.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은 행복한 띤잔이었다. 


급하게 준비한 미얀마 롱지를 입고 닌지곤 노인복지시설 입구에서 & 시설을 구경시켜 준 직원분과 함께
닌지곤 설립자 기념 동상 
닌지곤에 거주하는 노인들 대부분은 불교신자다 
노인분들이 생활하는 식당 및 기도실


일본이 기부한 앰뷸런스
일본이 기부한 물리치료실 장비들
미얀마 공무원들이 방송국 카메라와 함께 시설을 방문해 노인들을 만나는 모습. 때로는 선전을 위한 장소가 되기도 한다.  
후원 업무를 보는 사무실 모습. 즉석에서 기부 증명서를 만들고 있다.


기부자들 이름이 새겨진 타일로 만들어진 닌지곤의 벽. 이런 풍경은 미얀마의 불교 관련 시설 곳곳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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