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냉소로 인정하고 방관하지 않을 다짐
결국, 2024년 12월 7일 국회에서 윤석열 탄핵 소추안이 정족수 부족으로 폐지됐다.
부결도 아닌 무효였다. 국민의 힘 의원들은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투표에 참여한 뒤, 본회의장을 이탈해 '의원 총회'라는 이유를 빌미로 윤석열 탄핵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안철수, 김예지, 김상욱 단 3명의 국민의 힘 의원들만 본회의장에 다시 진입해 투표권을 행사했고, 우원식 국회의장은 여당 의원들에게 투표에 참여해 주길 촉구하며 의결진행 시간을 연장했다. 그러나 그 세 명의 의원 외에 누구도 본회의장으로 발걸음을 옮긴 의원은 없었다. 그렇게 밤 9시 20분 의결이 마무리됐고, 결국정족수 부족 '무효'로 끝이 났다. 허탈하고 무력한 밤이었다.
나와 남편, 동생과 동생의 친구, 그리고 그 친구의 동생은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당산역에서 만나 여의도로 걸어갔다. 나와 남편은 신촌에서 있었던 결혼식에 참석하고 난 뒤였고, 동생은 직무 교육을 듣고 난 뒤, 그리고 동생 친구의 동생은 주말 출근을 마치고 퇴근을 한 상태였다. 다들 짐이 한가득이었다. 그 짐에는 나보다는 남을 위한 것들이 많았다. 오랜 시간 서 있을 주변사람들에게 나눠줄 사탕이나 초콜릿, 찰떡파이, 핫팩, 넉넉하게 챙긴 물, 함께 나눠 앉을 돗자리 같은 것들이 커다란 배낭에 들어 있었다. 결혼식에 대충 구색을 맞춰 입은 셔츠와 집회 참여를 위해 입은 롱패딩 그리고 짐으로 가득 찬 배낭을 둘러매고 있는 내 차림새는 괴상했다. 그렇지만 그런 건 아무렇지 않았다. 나의 작은 불빛 하나가 오늘 있을 역사적인 순간에 보템이 된다면, 추위와 고됨도 다 기꺼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었다. 다들 그런 마음이었다.
여의도 국회 앞에는 100만 명의 국민이 운집해 있었다. 말 그대로 구름 같은 인파였다. 초와 깃대, 피켓을 들고 '탄핵'을 외치는 사람들 가운데 우리도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집회에 참여했다. 행진을 하고 구호를 외쳤다. 어느새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낸 적 없는 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런 목청이 나에게 있었나?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에너지였다. 그만큼 절박했다. 하지만 생중계 방송에서는 국민의 힘 의원들이 본 회의장을 이탈해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회의원 회관까지 행진하며 눈물이 났다. 내가 생각한 정의가 구현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당론'의 이탈자가 생길까 봐 투표마저도 하지 않는 의원들을 내가 너무 믿었단 사실 때문이었다. 계엄 해제 요구안이 통과되었던 12월 3일의 밤. 나는 최소한 그들이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몸담겠다고 마음먹었던, 그 아주 오래전 초심이 새어 나왔다고 믿었다. 적어도 민주주의와 헌정질서에 위배되는 '옳지 않은 것'에는 단결하고 합치할 수 있는 선의와 열정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이 보기 좋게 배신당했다.
당론이, 집권 여당이라는 허울뿐인 자격이, 본인들의 탄핵 트라우마가 얼마나 크고 중요하길래, 대국민 사과 담화에서도 웃음을 꾹꾹 눌러가며 별거 아니라는 듯 1분 30초간 성의 없는 몇 문장을 던지고 홀연히 사라지는 위험하고 예측 불가한 국가 원수를 아주 안전하고 안락하게 보존하겠다는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결정에 변수가 생길까 투표 조차 하지 않을 결심을 하는 것일까.
표결 기한이 연장되고 나서 국회 의사당 앞에 모인 100만 명의 국민들은 더욱더 최선을 다했다. 함께 소리를 내고, 노래를 부르고, 각자 가지고 있는 불빛을 흔들었다. 이 염원이 전해지길, 그리고 그걸 알아차린 누구라도 본 회의장으로 발길을 돌리길, 어떤 의사표현이라도 투표권을 행사하길 바랐다. 국민은 국민을 위했다. 차가운 도로 위에서 우리는 각자 싸 온 것들은 나누었고, 핫팩을 쥐어주었다. 지치지 않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의지했다. 본인이 뽑지 않은 대통령을 바로잡기 위해 대설의 추운 날 집회에 참여하는 20대 청년 세대의 집회는 알록달록했다. 그들이 흔들고 있는 가지각색의 응원봉이 예쁜 물결을 만들어냈다. 함께 부르는 K팝이 단결을 자아냈다. 개성 넘치고 다양한 그들이 너무 예쁘고 생생했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슬펐다.
밤 9시 20분.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탄핵 소추안은 폐지되었다. 여당의 행보에 나는 완전한 실망감을 느꼈다. 졌다는 패배감에서 오는 실망이 아닌, 무엇인가 해보지도 못하고 무산된 경기를 목격한 상실감에서 오는 실망감이었다. 그렇지만 굳게 다짐했다. 오늘의 결과가 형편없더라도, '정치인이 뭐 다 그렇지! 정치는 원래 그래'라는 냉소로 쉽게 인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함부로 우리의 민주주의를 쉽게 훼손하도록 두지 않을 것이다. 나의 노력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아주 아주 아주 미세하고 작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할 것이다. 부끄러워지고 싶지 않다. 내가 언제 승산이 있는 경기에만 참여했었나. 40년 채 안 되는 내 삶을 돌아봤을 때, 내 인생은 어차피 승리보다 패배가 훨씬 많았다.
참패하더라도 당당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