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순간부터 100일간의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2017년 9월 16일. 나는 부케를 받았다.
내가 너무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가 던지는 꽃다발을 받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절대! 놓치면 안 돼!' 마치 학창 시절 옆반과의 피구 경기에서 결정적인 한 방의 주인공이 된 듯 비장한 각오로 그녀가 던지는 부케를 주시했다. 이윽고 하이힐과 정장 차림의 피구 선수는 공중에 떠오른 부케를 무사히 낚아챘다.
그리고 100일간의 부케 되돌려주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부케를 들고 집에 올 때까진 마냥 좋았다. 예쁜 꽃을 보며 친구의 행복한 앞 날을 빌어주었다. 그러나 결혼식이 끝나고 집에서 편한 옷을 갈아입고 난 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부케를 보자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다. 얘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저런 궁리 끝에 꽃다발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꽃을 늘어놓고 어떤 방식으로 말리면 좋을지 검색한 끝에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 방식으로 꽃을 말린다는 것을 알아냈다.
1. 줄기채 거꾸로 매달아서 말린다.
2. 줄기에서 꽃송이와 이파리를 분리한 후 따로 말린다.
어떤 결과물을 만들지에 따라 1번과 2번 중 알맞은 방식을 선택하면 된다. 꽃 하나하나를 살려 유리관에 넣거나 드라이플라워 다발을 만들 생각이라면 1번, 꽃송이와 이파리만 병에 담거나 이를 활용해 또 다른 작품을 만들 생각이라면 2번 방법이 적절한 듯 보였다. 나는 무엇을 만들지는 아직 못 정했지만, 부케를 활용해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 주고 싶어 꽃송이와 이파리를 줄기에서 떼내어 말리기로 결정했다.
상자에 키친타월을 깔고 그 위에 잘라낸 꽃송이와 이파리를 펼쳐놓았다. 그리고 햇볕이 닿지 않는 책꽂이 한편에 상자를 올려두었다. 이제 서서히 마르길 기다리면 된다. 방심하면 곰팡이가 슬거나 부서져 버릴 수도 있으니까 초반에는 수시로 꽃 상태를 확인하기로 했다.
결혼한 지 100일되는 날이 언제야?
부케를 말려둔지 2개월 반이 지난 시점. 그동안 나는 한 달간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30일간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꽃은 고유의 색을 유지하며 예쁘게 바짝 잘 말라 있었다. 이제는 날짜를 체크해야 할 차례. 친구에게 결혼한 지 100일이 되는 날짜를 물어봤다. 친구는 왜냐는 물음과 함께 크리스마스라고 답했다. 좋았어! 12월 안에 부케를 되돌려주면 되겠구나.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할 때다.
무엇을 만들지 고민하며 인터넷을 둘러보다가 부케 액자를 만들어주기로 결정했다. 병에 넣어서 주기에는 마른 꽃송이의 모양과 색이 너무 예뻐서 아까웠고, 재료의 양도 액자를 채울 수 있을 만큼 충분했기 때문에 액자를 만들어 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대략 크기를 가늠하기 위해 A4용지 위에 말린 꽃의 모양을 잡아보았다. 저대로 붙여서 액자로 만들어 볼 생각이다.
액자와 배경 종이를 구매해 작업을 시작했다. 글루건으로 종이에 꽃과 이파리를 하나하나 붙이면서 모양을 잡아나갔다. 보관해두었던 부케의 리본 끈으로 손잡이 부분의 장식을 만들고 글루건으로 고정했다. 글루건을 쏘고 붙이는 작업을 몇십 번 반복하자 액자 위에 예쁜 드라이플라워 부케가 그려졌다.
마침내 부케는 친구에게 되돌아갔다.
완성된 액자를 들고 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100일인 크리스마스에는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아서 집들이 날인 오늘 액자를 전달하기로 마음먹었다. 건네준 액자를 받아 든 친구는 꽤 감동한 눈치다. 약 석 달간 함께한 부케를 되돌려주려니 왠지 시원섭섭하다. 친구의 집 한편을 예쁘게 장식하길. 100일간의 부케 되돌려주기 프로젝트는 이렇게 끝이 났다. 후! 아무나 부케 받는 거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