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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chic Dec 10. 2017

부케를 받는다는 것

받는 순간부터 100일간의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2017년 9월 16일. 나는 부케를 받았다.

내가 너무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가 던지는 꽃다발을 받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절대! 놓치면 안 돼!' 마치 학창 시절 옆반과의 피구 경기에서 결정적인 한 방의 주인공이 된 듯 비장한 각오로 그녀가 던지는 부케를 주시했다. 이윽고 하이힐과 정장 차림의 피구 선수는 공중에 떠오른 부케를 무사히 낚아챘다.

나이스 캐치
내가 받은 부케. 이때는 예쁜 꽃다발을 보며 마냥 좋았지.
그리고 100일간의 부케 되돌려주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부케를 들고 집에 올 때까진 마냥 좋았다. 예쁜 꽃을 보며 친구의 행복한 앞 날을 빌어주었다. 그러나 결혼식이 끝나고 집에서 편한 옷을 갈아입고 난 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부케를 보자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다. 얘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저런 궁리 끝에 꽃다발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꽃을 늘어놓고 어떤 방식으로 말리면 좋을지 검색한 끝에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 방식으로 꽃을 말린다는 것을 알아냈다.


1. 줄기채 거꾸로 매달아서 말린다.

2. 줄기에서 꽃송이와 이파리를 분리한 후 따로 말린다.


어떤 결과물을 만들지에 따라 1번과 2번 중 알맞은 방식을 선택하면 된다. 꽃 하나하나를 살려 유리관에 넣거나 드라이플라워 다발을 만들 생각이라면 1번, 꽃송이와 이파리만 병에 담거나 이를 활용해 또 다른 작품을 만들 생각이라면 2번 방법이 적절한 듯 보였다. 나는 무엇을 만들지는 아직 못 정했지만, 부케를 활용해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 주고 싶어 꽃송이와 이파리를 줄기에서 떼내어 말리기로 결정했다.

잘라낸 꽃송이와 이파리

상자에 키친타월을 깔고 그 위에 잘라낸 꽃송이와 이파리를 펼쳐놓았다. 그리고 햇볕이 닿지 않는 책꽂이 한편에 상자를 올려두었다. 이제 서서히 마르길 기다리면 된다. 방심하면 곰팡이가 슬거나 부서져 버릴 수도 있으니까 초반에는 수시로 꽃 상태를 확인하기로 했다.

결혼한 지 100일되는 날이 언제야?

부케를 말려둔지 2개월 반이 지난 시점. 그동안 나는 한 달간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30일간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꽃은 고유의 색을 유지하며 예쁘게 바짝 잘 말라 있었다. 이제는 날짜를 체크해야 할 차례. 친구에게 결혼한 지 100일이 되는 날짜를 물어봤다. 친구는 왜냐는 물음과 함께 크리스마스라고 답했다. 좋았어! 12월 안에 부케를 되돌려주면 되겠구나.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할 때다.

마른 부케. 모양을 잡아보았다.

무엇을 만들지 고민하며 인터넷을 둘러보다가 부케 액자를 만들어주기로 결정했다. 병에 넣어서 주기에는 마른 꽃송이의 모양과 색이 너무 예뻐서 아까웠고, 재료의 양도 액자를 채울 수 있을 만큼 충분했기 때문에 액자를 만들어 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대략 크기를 가늠하기 위해 A4용지 위에 말린 꽃의 모양을 잡아보았다. 저대로 붙여서 액자로 만들어 볼 생각이다.

글루건으로 붙여서 액자를 만들었다.

액자와 배경 종이를 구매해 작업을 시작했다. 글루건으로 종이에 꽃과 이파리를 하나하나 붙이면서 모양을 잡아나갔다. 보관해두었던 부케의 리본 끈으로 손잡이 부분의 장식을 만들고 글루건으로 고정했다. 글루건을 쏘고 붙이는 작업을 몇십 번 반복하자 액자 위에 예쁜 드라이플라워 부케가 그려졌다.

완성된 부케 액자
마침내 부케는 친구에게 되돌아갔다.

완성된 액자를 들고 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100일인 크리스마스에는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아서 집들이 날인 오늘 액자를 전달하기로 마음먹었다. 건네준 액자를 받아 든 친구는 꽤 감동한 눈치다. 약 석 달간 함께한 부케를 되돌려주려니 왠지 시원섭섭하다. 친구의 집 한편을 예쁘게 장식하길. 100일간의 부케 되돌려주기 프로젝트는 이렇게 끝이 났다. 후! 아무나 부케 받는 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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