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두브로브니크_최고로 맛있는 삼겹살!

서른 살에 떠난 30일간의 배낭여행 27/30

by Hongchic
두브로브니크 성벽 투어 > 스르지 산 투어 > 선셋 관람

내가 묵는 민박집에는 스르지 산 차량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투어비는 한 사람당 20유로. 두브로브니크에서 스르지 산은 보통 케이블카를 이용한다. 나에게는 오늘 하루만이 온전히 두브로브니크를 볼 수 있는 시간. 차량 투어를 받으며 멋진 풍경을 좀 더 즐겨 보기로 했다.


차량 투어를 신청하며 가만 생각하니 어제 함께 가고 싶어 했던 두브로브니크 친구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모두 20대 초반으로 아르바이트한 돈을 모아 모아 유럽 일주를 하고 있고, 가고 싶은 나라는 많은데 빠듯한 예산 때문에 주린 배를 바나나로 채우는 중이었다. 20 유로면 국경을 넘을 수 있는 버스 비용. 그들에게는 쉬운 돈이 아니었을 터. 예산이 빠듯해 안 되겠다고 아쉬워하며 스르지 산은 걸어서 트래킹 하겠다는 두브로브니크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내게 남아 있는 돈을 계산해 봤다.


남아 있는 돈은 200유로 남짓. 여행 기간 동안 숙박비를 제외한 4만 원을 하루 경비로 책정했는데 동유럽의 저렴한 물가와 쇼핑을 모르는 내 천성(?) 덕에 돈이 많이 남았다. 야호! 이 돈이면 우리 넷 모두 다 함께 스르지 산 차량 투어를 하고도 남는다. 나는 친구들에게 혹시 내가 경비를 부담해도 좋을지 물어보고 양해를 구한 뒤, 민박집에 이들의 투어를 신청했다. 두브로브니크 친구들은 내가 멋쩍을 정도로 고마워했다.

IMG_9269.JPG 저기 보이는 저 산을 오를 예정입니다

8년 전, 1유로가 한화로 2,000원을 호가했을 무렵. 나와 내 친구 예나는 약 한 달간 유럽 여행을 떠났다. 3유로짜리 샌드위치만 하더라도 무려 6,000원. 빠듯한 예산과 비싼 물가 때문에 예나와 나는 주린 배를 움켜쥐며, 햇반 하나를 반으로 갈라 저녁을 해결하곤 했다. 그때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 서른 살 채호 오빠는 우리를 딱하게 여기며 밥값, 커피값, 교통비까지 모두 대신 내주었다. 차갑고 배고팠던 여행길에서 오빠의 호의는 너무나 따뜻했다. 8년이 지난 지금, 내가 오빠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은 배고픈 젊은이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뿐. 고마워하는 그들에게 난 후에 시간이 지나 다시 여행길에 오르게 되면 배고픈 젊은이들을 만났을 때, 멋지게 한 턱 내주라며 멋있는 척을 했다.

IMG_9238.JPG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길

오전 10시에 두브로브니크 친구들을 만나 성벽 투어를 시작했다. 성벽 투어란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을 감싼 성벽을 돌아보며 경치를 구경하는 것으로 바다와 타운의 멋진 풍경들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계속 이어지는 성벽을 걸으며 많은 얘기를 나누고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IMG_9242.JPG 두브로브니크 성곽에서 본 풍경
IMG_9382.JPG 좋은 길동무가 되어 주었던 영아, 재현, 상훈

한참 성벽길을 걷던 중 상훈 씨의 표정이 굳어가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한국의 유명 대기업 맥주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마지막 달의 임금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원래는 오늘 입금되기로 했는데 회사 측에서 다시 입금일을 미뤘다고 한다.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상훈 씨에게 고용노동부에 신고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우리나라의 인건비 체계는 너무 엉망이다. 매 년 치솟는 물가에 비해 최저 임금의 인상률은 너무 저조하다. 거기에 너무 과한 업무와 감정 노동, 임금 체불까지. 도대체 인간은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 걸까. 한국의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모으기 위해서는 학업과 아르바이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공부하며 일하기 너무 힘든 사회라는 것이다. 그러니 형편이 어려운 학생은 기회를 갖기도 당연히 어렵다. 그런데 기성세대는 밤새 일하고 공부까지 해야 하는 청년들에게 근성이 부족하다고 비난하며 고통을 더 얹는다. 나중에 본인의 자녀가 그런 고통을 겪게 될 수도 있는데..


여행하며 만난 한 친구가 이런 얘기를 했다.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얘기하니까 어른들이 그러더라고요.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 거기라고 편할 거 같냐고. 그래서 진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서 나와 봤어요. 그런데 정말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더 힘들어요.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또 내가 배낭여행을 할 수 있는 이유가 회사 복지 제도 중 하나 인 3년 근무 후, 1개월 안식 휴가 때문이라는 것을 설명했을 때, 한국인들은 그런 회사가 있냐며 놀라고, 외국인들은 1개월 휴가를 받는 것이 어렵냐면서 놀란다.

IMG_9450.JPG 화가 치솟는 기분과 다르게 엄청 좋았던 날씨

노비로 태어나서 평생 착취당한 사람에게 어느 날 집주인이 오늘 하루는 쉬라고 했을 때, 노비는 우리 주인이 최고라며 감격할 것이다. 한국인들의 삶이 그렇다고 생각했다. 여유라고는 가져본 적 없으니 아주 작은 혜택에도 감격하고 감사히 여긴다. 하지만 국민 만족도가 높은 나라는 그럴만한 사회적인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다. 모두의 인생은 소중하고 한 번뿐이다. 즐거운 하루하루가 쌓여 즐거운 삶이 되고 행복한 인생이 된다.

IMG_9287.JPG 눈부시게 아름다운 아드리아해

상훈 씨는 회사가 말한 입금일 까지 한 번 더 기다려보고, 이후에도 계속해서 입금을 미루면 고용노동부에 신고하겠다고 얘기하며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우리를 안심시켰다. 간단히 햄버거와 파스타로 점심을 먹고 스르지산에 올랐다. 가이드님은 멋진 장소로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우리는 아주 높은 곳에서 두브로브니크의 전망을 감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IMG_9439.JPG 산 정산에서 내려다본 두브로브니크의 풍경
IMG_9321.JPG 스르지산에 가다가 잠깐 들른 슈퍼마켓에 상훈이는 휴대폰을 두고옴.. ㅋㅋ

저녁으로는 재현 씨의 고추장 삼겹살을 먹었다. 재현 씨는 요리를 공부한 청년으로 고추장, 간장, 후추 등 갖은양념과 쌀을 지니고 다닌다. 재현 씨는 호스텔 주방에서 밥을 짓고 삼겹살을 고추장에 재우고 뚝딱뚝딱 음식을 만들었다. 한식을 먹고 싶어서 안달이 난 시점에 먹은 고추장 삼겹살은 정말 정말 맛있었다.

IMG_9345.JPG 요리하는 멋진 청년 재현이 kitchen
IMG_9348.JPG 내 인생 최고의 삼겹살

삼십 년 인생에서 맛본 최고의 삼겹살! 후식으로 과일까지 챙겨 먹으며 두브로브니크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IMG_9327.JPG 우리들의 젤라또 치어스


덧.

민박집 사장님이 만원에 스냅사진을 찍어주셨다.

DUK_446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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