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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chic Oct 27. 2022

삼. 은둔의 땅에서 매일 아침 떠오르는 열기구

카파도키아. 소망이 깊어지면 떠오르게 될까요?

아침이 가장 화려한 지역을 꼽으라면 1등은 카파도키아 일 것이다.


22시간 이동 후, 가장 먼저 만난 카파도키아는 열기구로 가득한 하늘이었다. 몸이 고된 탓인지 나는 깊이 잠들지 못했고, 다음 날 새벽 다섯 시 눈을 떴다. 그리고는 남편 상정을 깨워 숙소 근처 언덕으로 향했다. 공기는 차가웠고, 아직은 깜깜했다. 거리에는 커다란 개들이 무리 지어 다니고 있었다. 휴대폰 유심을 갈아 끼우지 않은 우리는 숙소 와이파이로 저장한 구글 지도를 보며 꼭대기로 향하는 비탈길을 올라갔다.


암흑 같았던 세상이 조금씩 파래지기 시작하면서 형형색색 열기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담긴 바구니를 메단 풍선의 한가운데는 풍선에 더운 공기를 주입하기 위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열기구는 천천히 지면에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면서 둥실둥실 떠다녔는데, 지면에 가까워질 때면 바구니 속 사람들과 지상의 사람들은 서로 손을 흔들며 그곳은 괜찮냐는 듯 안부를 전했다. 서로 물고 핥고 컹컹대며 철 없이 장난치던 거리의 개들도 벌룬이 떠오를 때면 그 광경에 집중하는 듯했고, 심지어 하늘을 향해 컹컹 거리며 짖기도 했다.

오는 길이 사악했던 탓인지, 그동안 겪었던 일들 때문인지 풍선으로 가득한 하늘을 보자 눈물이 났다. 늘 경솔한 편에 속하는 나는 괜히 멋쩍어져 '와 멋지다! 진짜 죽인다! '같은 가볍고 지리멸렬한 감상을 남길 게 분명했기 때문에 상정에게 말 대신 이어폰 한쪽을 건넸다. 오프라인으로 저장돼 있던, 10CM 그라데이션의 '바람을 맞고 빗물에 젖어 나의 색감도 흐려지겠지만 너는 항상 빛에 반짝일 테니까'와 같은 가사를 들으며 남편과 새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화려한 하늘로 시작한 카파도키아 여행은 지하와 동굴 속 은둔의 땅으로 이어졌다.


카파도키아 지역은 화산 폭발로 응회암이 쌓이게 되었는데, 응회암은 단열이 좋고 다른 암석에 비해 채석하거나 건축 주조물로 사용되기 용이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런 자연환경과 로마제국의 초기 기독교 박해라는 사회적 환경이 만나 카파도키아에서는 초기 기독교 인들의 은둔을 위한 동굴 교회, 동굴 마을, 지하 도시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처음에는 장엄하고 신비로운 자연에 놀라게 되지만 이윽고 이 자연을 한 땀 한 땀 파내고 수선한 인간의 근성에 감탄하게 된다. 특히 지하 도시는 철기 시대 히타이트 제국에서 건설했지만, 박해를 피하기 위해 약 지하 85m에 이르기까지 더 깊어졌다고 하는데, 이러한 지하도시가 이곳에서만 약 40개가량 발견되었다고 한다.

동굴 수도원과 교회에는 프레스코 벽화가 남아 있기도 했는데, 신앙을 지키기 위해 동굴 속에 숨어 기도하고 그림을 그렸던 당시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져 속이 상하기도 슬프기도 했다. 숨어 산다는 것은 얼마나 숨이 막힐까. 숨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늘 소망했을 것이다. 무엇을 잘못한지도 모르는 채, 뭔가 오류가 있다는 외부의 판단만으로 존재를 드러낼 수 없는 세상. 하지만 과연 현재도 다를까.

지하도시
동굴 속 프레스코화

어릴 적 장봉도라는 인천 근교의 서해의 섬으로 몇 해 간 피서를 간 적이 있었다. 이모의 시댁이 그 섬에 있어서 우리 가족도 함께 갔었는데, 당시 장봉도는 거주민이 몇 안 되는 적적한 섬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곳에서 나는 혜림원이라는 기관의 아이들과 마주쳤다. 다운증후군이나 지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 그들은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나와 발야구 같은 것을 하며 노는 나와 사촌들을 구경했었다. 그 아이들에게 장봉도는 어떤 곳이었을까. 그 아이들은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었을까. 어쩌면 이 땅에서 수많은 이가 품었던 자유롭고 싶다는 소망이 매일 아침 카파도키아 하늘의 풍선으로 두둥실 떠오르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상정은 카파도키아에서 꽉 찬 3일을 보냈다. 호텔에서 소개해준 덕분에 영어 가이드가 진행하는 근교 투어를 다녀오기도 했고, 이른 새벽 부유하는 벌룬에 직접 탑승하기도 했다. 벌룬 투어 업체에서 서비스로 제공해주는 로즈밸리 트레킹에도 참여했고, 따로 차를 빌려 근처 괴레메 기준으로 근처 우치히사르나 아바노스 같은 이웃 도시를 방문하고 스머프 마을로 유명한 파샤바, 낙타 바위 같은 자연 지형을 꼼꼼히 관찰해보기도 했다. 관광특구라 다른 지역보다 모든 물가가 비싸다는 것 빼고는 전부 다 만족스럽고 즐거운 여정이었다. 첫날 위협적으로 여겨지던 무리 지어 다니는 거리의 개들도 마지막 날에는 꽤 재기 발랄한 강아지로 보였다.

 

열기구 탑승
로즈밸리 정상 위 노천 카페

카파도키아에 꽤 오랜 기간을 머문 탓에 중간중간 비어 있는 시간이 생겼는데, 뭔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다. 사진첩에 사진이 비워 있으면 꽤 비용이 들인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그에 반해 상정은 잘 쉬고 잘 자는 편이었는데, 함께 온 아내의 강박이 심하니 덩달아 불안해지는 것 같았다.


그날도 잠시 비는 시간이 있어 어디 짧게라도 구경할 곳이 있는지 구글 지도를 뒤적이는 중이었다. 흥미로운 곳이 딱히 없어, 숙소 기준으로 지도를 확대하고 확대하다 물담배 바를 발견했다. 15  이태원의 잔디밭이 있는 술집에서 가부좌를 틀고 물담배를 피우던 외국인의 온화하고 평화로워 보였던 얼굴이 문뜩 떠올랐다. 10 시절, 야자를 튀고 미스터 피자를 가는 것과 같은 가벼운 비행을 저지르기 전의 긴장과 짜릿함이 느껴져 살짝 몸을 떨었다. 나와 상정은 생애  흡연에 긴장하며 물담배 (시샤 ) 향했고, 난생처음 마셔보는 향긋하고 매운 연기와 함께 굳어 있던 척추와 어깨를 이완하며 릴랙스   있었다. 친절한 사장님은 원하는 음악을 틀어주겠다고 하셨고, 퀸의 히트곡을 신청하자 스피커에서는 바로 'I was born to love you' 흘러나왔다.

 hang out 바에서 시샤

더할 나위 없었다.


덧.

1. 카파도키아에서 먹은 것

- 항아리 케밥: 아바노스에 있는 식당에서 먹은 것이 가장 맛있었다.

- 올리비아 케이브 호텔의 아침 카흐발트: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튀르키예 채소와 고소하고 향긋한 시미트 (빵), 신선한 꿀과 수제로 만든 잼 때문에 두 그릇씩 먹었다. 그 덕분에 점심을 못 먹었다.

- 보만티, 에페스 맥주: 튀르키예는 이슬람 영향을 많이 받은 국가라 음주에 엄격하다. 맥주는 비싸고 상대적으로 찾기 어렵지만 마음먹으면 또 마실 수 있다.

- 튀르키예 커피: 커피 가루와 물을 뜨거운 모래에 끓여서 먹는 방식. 가루까지 마시면 안 된다고 한다. 가루로는 점을 친다는데 해보진 못했다.

- 차: 튀르키예 사람들은 루이보스 차를 물처럼 마신다. 전용 차 머신이 있는데, 위에 있는 주전자에서 차를 따라낸다음 아래에 있는 온수 레버에서 따뜻한 물을 섞어 마시면 된다. 각설탕 두 개 넣는 것을 추천.

- 돈두르마 (아이스크림): 쫀득쫀득하다. 나는 본래 아이스크림을 즐겨하지 않아 전체 여행 중 두 번 정도만 사 먹었다. 공장제라 고하니 맛은 어딜 가나 비슷하고, 대신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이렇게 매일 두 접시
레몬맛 돈두르마
2. 카파도키아에서 유심칩 구하기

괴레메 오토가르에서 네브쉐히르로 가는 마을버스를 탄다. 네브쉐히르로 간다고 차장에게 말하고 돈을 지불하면 내릴 때 알려주신다. 20분 소요. 버스 요금 되게 쌌음. 돌아올 때는 내린 곳 맞은편 버스 정류장에서 같은 버스를 타면 된다. 내려서 근처 툭셀이나 투르크 텔레콤 매장에 들어가서 적당한 플랜을 선택해 구매하면 된다. 여권 필수. 괴레메에서 산다면 약 3배 정도 더 비싸게 살 수 있음. 도착한 날이 일요일이라면 오전 11시까지는 기다려야 문 여는 매장을 찾을 수 있다. 본인은 9시에 도착해서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며 슬퍼하다가 간식 먹고 만보정도 걷고 나니 모든 가게가 문을 열어서 놀란 경험이 있다.


2-1. 네브쉐히르 구경하기

네브쉐히르는 주거지역이라 돌아다니면 한류스타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모두가 나에게 집중하는 기분을 즐기고 싶다면, 네브쉐히르 강력 추천. 길을 걷다가 터키쉬 치즈 페스츄리라는 것을 먹었는데 아주 맛있고 사장님이 너무 친절했다. 영어는 못하시지만 유심칩을 구했으니 구글 번역기를 쓰면 된다. 시내에는 꽤 규모 있는 쇼핑센터가 있다. 지하 일층에 오락실이 있는데, 농구공 던지는 게임을 할 수 있다. 한 판에 500원 정도.


내친김에 네브쉐히르 박물관에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시내에서 걸어갈 수 있다. 정말 박물관 입구 인가? 의심이 들면 잘 찾아간 것이다. 아무도 없는 박물관에 경비원 선생님이 2층을 보라며 불을 켜주시고 다 보고 내려오면 이제 1층을 보라며 2층 불을 끄고 1층 불을 켜주신다. 유목 생활 당시 전통 의복이나 베틀, 활 모양의 전쟁용 칼 같은 것들을 보며 신나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고,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있다. (아무도 없으므로)

구글 번역기 필수 치즈 페스츄리
네브쉐히르 박물관. 노래 한 곡 하고 올걸 그랬다.
3. 카펫 쇼핑하기

괴레메 시내에서 길을 걷다가 어떤 아저씨가 한국사람이냐? 나 모르냐?라고 해서 모른다고 했더니 멋쩍게 웃으며 가셨는데 알고 보니 유튜버 영일남에 나오는 카펫 장인 아저씨였다. 본인은 정보가 부족해 이스탄불 그랜드 바가지 (아,, 그랜드 바자르)에서 수제도 아닌 공장제 발매트를 비싸게 사왔지만, 혹여나 튀르키예에서 카펫 쇼핑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영일남 유튜브를 확인하고, 이 사장님한테 가보면 좋겠다. 엄마인지 할머니인지 가족이 만들어 물려준 카펫을 가보처럼 여기는 분이고 한국사람이고 유튜브 보고 왔다고 하면 바가지는 없을 듯.

카페트 계의 스티브잡스

영일남 유튜브 링크: https://youtu.be/n4Mx51ADVc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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