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쉬. 아름답고 광활하며 두려운 자연을 느끼며 나의 작은 존재를 사랑하기
우리는 쿨럭이는 자동차를 세 시간 정도 운전해 안탈리아에서 약 190km 떨어진 카쉬에 도착했다.
카쉬까지의 드라이빙은 정말 즐거웠다. 튀르키예는 법으로 자동차 선팅을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작열하는 태양에 얼굴과 몸이 익어버렸지만, 화창한 날씨 덕분에 지중해는 더욱 파랗고 선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냈고 반짝이는 윤슬에 우리의 마음도 함께 설레기 시작했다.
숙소는 주방 거실, 침실로 구성된 깨끗하고 아담한 아파트먼트. 드디어 한국에서 이고 지고 온 라면이 빛을 발할 차례다. 튀르키예의 음식은 정말 모두 모두 맛있었다. 일조량이 풍부한 땅에서 자란 채소들은 모두 싱싱했고, 음식에 진심인 튀르키예 사람들의 정성이 곁들여져 길 가다 들어간 아무 식당에서도 감탄사를 연발하며 맛 좋은 음식들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얼큰한 고춧가루 국물이 일상인 한국인들에게 라면은 음식 그 이상의 것. 이제 한 번 속을 지져줄 차례가 되었다.
한국인의 뿌리를 자극하는 매콤한 라면 국물은 지친 심신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이후 우리는 카쉬에서 머무는 동안 숙소의 주방을 활용해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납작하고 뾰족한 쌀로 냄비밥과 계란 간장밥을 해먹기도 했고, 라면에 토마토를 넣어 끓여 먹기도 했다. 근처 레스토랑에서 해물 요리를 맛있게 먹기도 했지만, 초간단 집밥은 여행 중반 큰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한적한 해안 마을 카쉬를 기점으로 나와 상정은 3박 4일 간 신나게 지중해를 즐겼다.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고대 시메나의 유적지를 보트로 탐방하며 물놀이를 즐기는 케코바 투어는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어떨결에 사전 예약 없이 당일 아침 보트 업체에 들러 티켓을 끊고 출발하게 되었다. 바로 직전까지 숙소에서 시미트(터키빵)를 아침으로 먹으며 '오늘 혹시 갈 수 있을까? 아님 예약이라도 해둘까?'라고 얘기하던 중 충동적으로 뛰쳐나가 순식간에 바다로 향하는 보트에 탑승하게 된 터라 좀 어리둥절했지만 곧 화창한 날씨와 잔잔한 파도를 선물로 받은 기쁜 마음이 되었다.(그러나 수영복은 꼼꼼히 잘 챙겨 입었다.)
우리는 중년의 튀르키예 아저씨 삼총사와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는데, 아저씨들은 본인들이 간식으로 가져온 피스타치오를 권하며 생김새가 다른 우리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튀아-튀르키예 아저씨 / 나상-나와 상정)
튀아: 어디 나라 사람인가?
나상: 한국
튀아: 노쓰인가 사우쓰인가.
나상: 사우쓰
튀아: 우리 할아버지가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 우린 형제!
나상: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우린 형제!
튀아: 그래서 2002년에 한국 정부가 초대해 줘서 한국에 갔었다. 서울, 부산. 좋은데 매우 비쌌다.
나상: 동의한다. 한국은 정말 비싸다.
튀아: 아이가 있는가?
나상: 없다
튀아: 오.. 인샬라!(측은한 눈빛으로) ㅎㅎㅎㅎ
아는 영어를 다 쓰고 난 뒤, 아저씨들은 구글 번역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상정이 자신의 휴대폰으로 다음과 같이 작성한 글을 삼총사에게 보여준 이후부터였다.
상정은 "튀르키예 사람들도 축구를 좋아하는가?"라고 구글 번역기에 입력했고, 그걸 본 아저씨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히딩크를 닮은 아저씨가 본인은 '김민재가 있었던 가장 크고 훌륭한 페네르바체의 팬'이라며 페네르바체 찬양을 하기 시작했고, 옆에 있던 아저씨는 도저히 못 들어주겠다는 표정으로 '진짜 실력을 가진 팀은 바로 트라브존'이라며 응수하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말이 없던 세 번째 아저씨는 지긋 지긋 하다는 표정으로 줄곧 앞에 놓인 피스타치오만 까먹었다. 축구 팬들의 혼란한 자기 팀 어필 시간 속에서 우리는 트라브존 형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트라브존 파이팅!'을 튀르키예어로 외치는 영상을 촬영하게 됐고, (마치 설날 외국인이 TV에 나와 아리랑을 부르는 느낌으로...) 나는 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상정과 상정의 구글 번역기를 쳐다봤다.
보트는 시메나 유적지가 있는 곳곳을 들렀다. 보트가 닻을 내리는 곳은 보통 지중해 한가운데. 체감 수심 5m 이상.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은 깊은 물속으로 서슴없이 물을 던졌다. 두 살이나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도 수수깡이라고 불리는 래프팅 스틱 하나만 쥐어진 채 자기 신장의 몇 십배가 넘는 수심의 바다에 동동 띄워졌다. 물속에 몸을 담근 사람들은 내리쬐는 환한 햇빛보다 더 밝은 표정으로 속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바다와 아름다운 풍경을 즐겼다. 나와 상정도 서둘러 오리발과 스노클을 챙겨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물속에서는 옛 고대 시메나의 사람들이 살았던 집의 계단이나 창문들을 볼 수 있었다. 누군가의 손이 닿았을 그 건축물들은 이제 사람이 아닌 얼룩무늬 곰치의 집이 되어 있었다. 내가 떠 있는 물 위가 하늘이 되어 버린고대 도시를 바라보며, 영원과 순간에 대해 생각했다. 이 서로 대조되는 개념은 모두가 존재할 때 완성된다. 영원은 순간으로, 순간은 영원으로. 영원도 없고 순간도 없다면, 혹은 모든 것들이 영원하거나 순간적이라면, 과연 우리는 무슨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나갈 수 있을까. 순간에 충실하면서도 영원을 꿈꾸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생명을 부여받은 인간이 계속해서 고민하고 이행해나가야 하는 의무일지도 모른다.
보트 부엌에서 요리한 따뜻한 생선구이를 점심으로 맛있게 먹고, 시메나성이 있는 케코바섬까지 들른 뒤, 늦은 오후 다시 카쉬의 항구에 도착했다. 우리는 축구 팬 아저씨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잠시 짐을 챙기느라 꾸물거린 사이 삼총사를 놓치고 말았다. 늘 어디에 계시든 모든 일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친절한 아저씨들. 인샬라! 마샬라!
그다음 날에는 구글에서 검색한 수상레저 업체에 들러 패들보드를 대여했다. 카쉬 인근 조그마한 해변에서 패들보드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까지 노를 저어 나갔다. 보드 위에서는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을 때와는 다른 자연의 광활함을 느낄 수 있다. 눈앞에 펼쳐진 산맥과 절벽 그리고 깊고 맑은 바다. 보드 위에 서서 자연을 향한 아름다움과 경외심, 두려움을 충만하게 느끼고 두 팔로 노를 저어 다시 육지로 돌아왔다. 이렇게 멀리까지 나왔지만 다시 씩씩하게 돌아갈 수 있는 나의 신체에 감사함을 느꼈고, 새삼 나의 물리적인 물성인 내 몸이 사랑스럽게 여겨졌다.
지중해의 기운을 한가득 받으며 자연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던 카쉬. 바닷속으로 한순간에 이동한 고대 도시에서. 크고 넓은 자연물 사이의 먼지 같은 나의 존재에서. 인간과 우주, 그리고 순간과 영원의 상호작용에 대해 고찰해 볼 수 있었다. 인간이 이룬 것들은 영원하지 않지만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작고 작은 우주의 먼지에 불과하지만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 작은 나의 신체에서 끊임없이 하고 있는 전기 작용들을 소중히 여기며, 무한에 가까운 우주를 숭배해야지.
덧.
인샬라 뜻: 신의 뜻대로
마샬라 뜻: 신이 지켜주길
튀르키예를 다녀온 뒤, 나와 상정은 인샬라 마샬라를 서로 차례대로 주고받으며 놀았다. 이런 식이다.
상정: 나 살쪘어.
나: 인샬라.
상정: 마샬라.
우리 집 유행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