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ngchic Jun 19. 2023

구. 말로만 듣던 것들을 눈으로 보고 난 뒤에

셀축. 인디아나존스가 느끼는 희열일까?

영화 인디아나존스 시리즈의 플롯은 대체로 이렇다.

고고학자인 헨리 박사는, 모종의 이유로 인디는 고문서의 기록이나 전설에 남겨져 있는 흔적을 따라 탐험을 떠나고 그 흔적이 실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문제를 해결한다. 파묵칼레를 가기 전 잠시 방문했던 고대도시 아프로디시아스나 튀르키예 전역 있던 루인스들이 모두 신비함을 자아냈지만, 셀축에서의 여정은 특히나 마치 내가 인디아나존스의 인디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튀르키예의 다양한 지역 중 셀축은 성지순례 장소로 유명한데 성경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의 흔적을 눈으로 확인하고 ‘에베소서’의 배경이 되는 고대도시 에페스를 방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지순례는 보통 단체 여행으로 진행되는데, 단체 여행은 새벽 식간대부터 시작된다. 그러니 조금만 늦장을 부리면 부지런한 여행객들의 뒤통수만 잔뜩 보고 나와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나와 상정은 아침 일찌감치 일어나, 호스텔에서 제공되는 조식을 먹고 채비를 한 뒤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호스텔에서 제공해중었던 조식
예쁜 호스텔 앞 골목

첫 여정 지는 숙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성모 마리아의 집’.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예수의 죽음 뒤, 여생을 보냈다고 알려진 곳이다. 성모 마리아의 집까지 가는 길이 공원처럼 예쁘게 잘 가꿔져 있었고, 집 앞에는 서원을 담은 촛불들이 불타고 있는 케이스가 있었다. 집 내부는 기도를 위한 몇 가지 도구와 소박한 살림들이 놓여 있었다. 모두가 엄숙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성모 마리아의 흔적을 좇고 있었다. 나와 상정도 차분한 행렬을 따라 집 내부를 관람하고 가볍게 기도를 드린 뒤 밖으로 나왔다.

성모 마리아의 집 전경

이어서 고대 도시 에페스를 방문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자 허름한 철창 속 ’누가의 묘‘라고 쓰여 있는 건축물이 보였다. 나와 상정은 눈을 비볐다. 신약 성경 속 ’누가 복음‘의 누가의 무덤이라는 건가? 늘 활자로만 기록으로만 알고 있던 인물의 흔적을 눈으로 확인하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누가의 묘라는 설명은 한글로 기재돼 있었다. 아리송한 기분으로 에페스의 입구로 들어섰다. 거리와 건축물로 가득 찬 고대 도시가 웅장하게 등장했다. 돌로 닦여진 거리 위에는 운동장, 의회, 목욕탕, 고급 아파트먼트, 도서관, 시장, 교회 등 다양한 건물의 흔적들이 꽤 건재하게 남아 있었고, 내리쬐는 햇볕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이곳을 구경하고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누가의 무덤

나와 상정은 위에서 아래로 아래서 위로 에페스의 거리를 왕복하며 그동안 성경에 대해 내가 느꼈던 시간적 위치적 거리감에 조금 균열이 생긴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다. 나는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영향으로 기독교 문화 속에서 성장했고, 따라서 성경 속 이야기는 나에게 마치 전래동화와 같았다. 사이좋은 오누이나 콩쥐 팥쥐와 같은 이야기가 그렇듯 전래동화는 굉장히 친숙하게 느껴지지만 실제와는 거리가 멀게 여겨지곤 하는데 나에게 성경은 마치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나 성경 속 이야기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2D였던 전래동화는 3D 영화로 변신했다. 신앙심이나 믿음과는 별개로 늘 들었던 이야기들이 입체감 있게 전환되는 경험은 짜릿했다. 인디아나 존스의 인디가 성배나 크리스털 해골을 발견하는 희열과 비슷하지 않을까.

에페스의 거리
에페스 전경
도서관
고급 아파트먼트였던 테라스 하우스
원형 극장

에페스 구경을 마치고 세례 요한의 교회를 방문했다. 허물어진 교회터 곳곳을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성지순례 명소답게 방문한 곳마다 신앙심 깊은 기도와 찬송을 들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셀축에서의 여행은 들뜨고 흥분됐던 이전 여행과는 조금은 다른 마음이었던 것 같다. 기독교 관련 명소 외에도 고고학 박물관과 아르테미스 신전터를 방문해 아르테미스 여신을 섬겼던 이곳의 문화를 엿보기도 했고, 예수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슬람 사원인 이사베이 자미에 방문해보기도 했다.

세례 요한의 교회
세례 요한의 교회 복원도
아르테미스 신전 유적
아르테미스 여신상. 풍요와 다산을 상징한다.
아르테미스 신전 복원도. 저 기둥의 일부는 이스탄불 지하수 동굴이나 아야 소피아에도 있다고 한다.
이사베이 자미에서


말로만 듣던 것들을 눈으로 보게 되면 힘이 세진다. 튀르키예에 다녀온 뒤, 이제 더 이상 성경, 오스만튀르크, 히타이트, 술탄, 모스크, 콘스탄티노플 같은 것들이 너무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양한 문화와 종교와 사람들이 있는 지구가 더 재밌어졌다.


덧.

토요일 마다 로컬 마켓이 열린다. 생동감 있는 셀축을 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피데는 꼭 셀축에서. 인생 피데.

양곱창도 꼭 셀축에서.

자두 1kg에 2000원
향긋하고 고소한 셀축의 피데.
다진 양곱창을 빵과 함께 먹는다.



이전 08화 팔. 골목을 여행하는 기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