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체육인의 정혈 용품이야기
나는 신체 에너지가 높다.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이 나는 운동을 좋아하고, 그렇게 움직이고 나서야 기분과 마음모두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평일에는 오전 6시에 버스를 타고 회사 근처 헬스장에 가서 1시간 30분 정도 운동을 한 뒤 출근을 하고, 주말에는 5~10km 정도 밖에서 달리거나 실내 수영장에서 1km 정도 수영을 한다. 분기에 한 번씩은 국내외 다이빙 스팟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간다. 가끔 시간이 맞으면 인천항에서 새벽 배를 타고 섬 한 바퀴를 걷는 트래킹을 간다. 산을 오르고, 걷고, 뛰고, 물 위와 물속을 헤엄치고, 쇠질을 하는 생활 체육은 내 삶의 기쁨이자 원동력이다.
매일 한 바가지씩 땀을 흘리며 살아가는 나에게 가장 큰 변수는 바로 '생리(정혈)'다. XX염색체를 가진 여성으로 태어난 탓에 다른 여성들과 같이 나도 한 달에 한 번씩 피를 흘린다. 참 찝찝하고, 아프고, 심지어 여름에는 쪄 죽을 것 같은 정혈은 진짜 너무 짜증 난다. 특히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은 매일 규칙적으로 하는 운동에 지장을 준다는 것이다. 나의 정혈 기간은 보통 5일. 정혈을 한다고 해서 운동을 쉬어버리면 5일이 그냥 날아가버린다. 일 년이면 60일. 대략 일 년의 1/6을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피를 흘리는 데만 써야 한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내가 파악한 나는 신체 에너지를 발산하지 않고 있으면 예민함이 하늘을 찌르고 스트레스에 더욱 취약해진다. 쉽게 말하자면 운동을 하지 않는 나는 꼴통이다. 이 말인즉슨 주변 사람들에게도 민폐를 끼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특히 반려인에게..)
처음에는 나도 별 수 없이 정혈 기간에는 휴식을 취했다. 아랫배와 허리에서 느껴지는 뭉근한 통증을 아세트아미노펜과 이부프로펜으로 참아내며, 정혈 기간 5일을 버텼다. 혹자는 자궁 외벽이 떨어져 나가도록 하는 호르몬이 관절이 약해지도록 만들기 때문에 최대한 몸을 아끼며 쉬라고 조언을 해주었지만, 나에게 정혈 기간은 쉬는 게 아니었다. 양이 많은 날 밤에는 혈이 새어나갈 까봐 편한 자세로 잠들 수도 없었고, 찌뿌둥함과 예민함은 극에 달했다. 그리고 드디어 정혈이 끝나고 체육관에 가면, 그동안 겨우 감을 잡았던 운동 리듬은 모두 초기화 돼 있었다. 매달 반복되는 패턴을 두고만 볼 수 없었던 나는 내 생활 습관과 양식에 맞는 정혈용품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탐폰은 횟수로만 따지면 가장 자주 썼던 체외형 생리대의 대안품이다. 가늘고 긴 원통 모양의 탐폰을 체내에 삽입하면 생리혈을 흡수시켜 줘 생리대보다 상대적으로 쾌적하게 체육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했던 초반에는 정혈 기간 중 헬스를 하거나 수영을 하고 싶을 때는 탐폰을 사용하곤 했다. 체외에서 자유 분방하게 돌아다니거나 접히는 생리대보다는 훨씬 편했다. 그러나 탐폰은 체내에서 흡수하는 방식이라 금방 질 내부가 건조해졌고, 정혈양이 적을 때는 질 내벽이 쓸리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또, 실내에서 운동을 할 때는 교체하기가 그나마 편했지만, 바다 다이빙이나 실외 달리기와 같이 야외활동을 할 때는 교체하기 어려웠다. 더욱이 탐폰은 흡수하는 방식이므로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균이 증식할 수 있어 바로 교체해야 한다. 그리고 가끔씩 잘못 삽입되는 경우, 이물감과 통증이 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생리 팬티는 가장 쉬운 정혈 용품이다. 생리혈 흡습체가 봉제돼 있는 팬티를 입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따로 생리대를 부착할 필요도 없다. 생리혈은 흡습체에 바로 흡수되고 신기하게도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는다. (긴 시간 착용하면 샐 수 있다고 한다.) 대략 6~8시간 정도 착용하고 전용 빨랫비누나 세제로 세탁한 후, 말리고 다시 착용하면 된다. 생리 팬티는 잠을 잘 때 가장 편했다! 내부 흡습체가 엉덩이 끝까지 넓게 분포돼 있어서 뒤척거려도 정혈이 새지 않았다. 요즘 입는 생리대가 잘 팔린다고 하는데, 입는 생리대의 지속 가능한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세 개의 생리 팬티를 구입해 돌려가면서 입었다. 특히 정혈 기간 막바지에 헬스장이나 수영장 탈의실에서 잘 이용했다. 팬티라이너나 생리패드를 부착할 필요가 없이 쓱 입기만 하면 되니까 탈의실에서 옷을 입을 때도 민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출되는 쓰레기가 없었다. 물론 손 세탁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제품 자체가 상대적으로 비싸긴 했지만, 생리대를 구매하고 버리는 비용이 확 줄었기 때문에 감당할만한 단점이었다. 그러나 정혈 기간 중 물속에서 하는 활동에서는 당연히 사용할 수 없었고, 야외 달리기를 할 때도 제품이 두꺼운 편이라 움직이기 불편했다. 여행 중에는 세탁하고 말리는 과정이 어렵기도 했다. 하지만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제품이라 현재도 애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한 정혈 용품은 바로 월경컵이다. 사실 나도 월경컵의 모양이나 크기를 보고 살짝 거부감이 있어 사용을 차일피일 미뤄뒀었다.(저게 내 몸 속에 들어간다고?라고 생각했었음) 하지만 올해 여름 정혈 기간 중 베트남 나트랑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한 경험이 나의 다짐을 굳혀주었다. 당시 나는 탐폰을 착용했는데, 뭐가 잘못됐는지 계속해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불편해서 죽을 것 같았다. 거의 자연 푸세식에 가까운 배 화장실을 보고는 이러지도 못한 채 몇 시간을 버틴 후 '내가 진짜 한국에 가서 월경컵 바로 써본다.'라는 강력한 결심을 얻었다. 그리고 돌아와 약간의 공부와 탐색을 거쳐 월경컵에 입문했다.
의료용 실리콘으로 제작된 월경컵은 보통 종모양으로 생겼으며, 눌러 접어서 부피를 줄인 뒤 체내에 삽입한 뒤, 펼쳐서 포궁을 밀폐하는 방식으로 사용한다. 쉽게 말하자면 정혈을 질 내에서 받아내는 방식이다. 초반 착용 및 적응 난이도는 높은 편이다. (이게 실링이 된 건지, 몸속으로 들어가서 안 빠지면 어떡하면 되는지 혼돈의 카오스) 나도 첫 착용 때 화장실에서 거진 30분을 보낸 것 같다. 그러나 밀폐가 완료되면 놀랍게도 아무 느낌이 나지 않는다. 잘 때도 다양한 자세를 구사하며 편안히 잘 수 있다. 특히 흡수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물속에서 하는 활동을 할 때 오래 착용하고 있어도 괜찮다. 야외에서 달리기를 해도 내가 정혈 기간인지 아닌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편안했다. 생리 팬티와 마찬가지로 쓰레기가 전혀 생기지 않고 부피도 작아서 만족도가 아주 높았다.
번거로운 점은 교체와 소독인데, 소독은 최초 착용 시와 마지막 착용 후에만 뜨거운 물로 열탕 소독을 해주면 된다. 교체는 사실 생리대만큼 편하지 않다. 그러나 외부에서 교체해 본 경험을 공유하자면 월경컵이 들어갈 정도의 작은 용기에 물을 한 컵 받은 후 월경컵에 받아진 정혈을 변기에 버리고 용기에 월경컵을 넣어 세차게 흔들어 닦은 뒤 다시 착용하면 된다. 살짝 불편하긴 하지만 교체 주기가 생리대만큼 짧지 않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고, 이런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착용감이 우수하다.
이번 추석 가족들과 다낭 여행을 다녀왔는데, 베트남과 나는 무슨 원수가 졌는지 또 나의 정혈기간이 겹쳐버렸다. 지난 나트랑 여행에서는 캐리어 반쪽을 다 채울 만큼 생리대와 탐폰을 한가득 챙겼는데, 이번에는 간편하게 월경컵과 소독용 실리콘 용기, 생리 팬티만 챙겨서 떠났고, 이른 아침 호이안 투몬강 달리기, 참섬 호핑 투어를 아주 수월하게 즐겼다. 특히 마사지를 받을 때도 걸리는 게 없어서 편안했다.
월경컵은 한국에서는 2017년부터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 판매가 되었다고 한다. 년수로 따지면 7년의 성숙기를 거친 정혈 용품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월경 디스크라는 명칭의 또 다른 용품이 등장했고, 월경컵에 적응하지 못했던 여성들에게 또 다른 기회가 생겼다. 초경 후, 월경 용품을 주로 생리대로만 배웠던 우리 한국 여성들은 몸속에 무엇인가를 삽입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과 두려움이 클 수 있다. 나 역시도 그랬고, 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보니 또 다른 길이 있었다. 이제는 정혈 기간이 두렵지 않고, 정혈 기간과 여행 기간, 운동이 겹친다고 해도 '그래서 뭐. 나는 그래도 잘 뛰어놀건대?'라는 담담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여성의 생식기는 생각보다 강하고 복원력도 높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다른 몸을 가지고 있으므로, 나와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는 넓은 마음과 내 몸을 알아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도전한다면, 일 년의 1/6에 해당하는 정혈 기간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나의 작은 체험기가 도움이되길 바라며!
당신은 아름답고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