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어른 Aug 15. 2024

500일 세계여행이 가져다준 변화들.

아이와 500일 세계여행 후 우리도 모르는 사이 작은 변화가 생겼다.

500일 세계여행을 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가슴으로 느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작은 변화가 생겨나고 있었다.






갖고 싶은 게 없다.

캐리어 하나로 500일을 보면서,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득한 덕분에 물욕이 사라졌다. 한때는 백화점 아이쇼핑이 낙이던 시절도 있었다. 여행 중에도 가방과 보석을 구경하러 명품관에 가고, 사고 싶어 안달났던 적도 있다. 어느새 물건이 늘어나는 만큼, 삶의 무게가 늘어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에 돌아와 리밸런싱 투자로 꽤 쏠쏠한 수익을 얻고, 남편이 갖고 싶은 거 없어? 에르메스나 샤넬? 보석은 어때? 여러 번 묻지만, 언제나 나의 대답은

"아니, 난 사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어."


시골 바닷가 마을에 살면서 명품을 가져봤자 행복하겠어? 나 혼자 만족하자고? 가끔은 재테크 목적으로 파텍필립이나 오데마피게 시계를 사볼까? 생각해 보지만, 평범한 우리에겐 구매 기회조차 오지 않는 걸. 허허. 또 어떤 날이면 갖고 있던 몇 안 되는 소장품 모두 정리하고 싶다는 욕구가 몰려온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 잘 두었다가 언젠가 소중하게 사용해 보자.


[출처 : Hermes, PATEK PHILIPPE 공식 홈페이지]







덕분에 수억을 아낄 수 있었네.

클래식카 덕후 남편은 늘 페라리, 재규어의 클래식 명카를 꿈꾸며, 본인만의 차고(GARAGE)에 멋진 클래식카를 수집하며, 날씨와 기분에 따라 몰고 싶다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남편을 위해 페라리, 마라넬로 뮤지엄과 벤츠, 포르셰 뮤지엄은 물론 각국의 클래식카 박물관에 들리곤 했다. 500일간 세계를 돌며 기후위기를 온몸으로 체감하며 더 이상 내연기관차를 사면 안 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그는 틈만 나면 보배드림과 클래식카 동호회에 올라온 잘 관리된 클래식카를 구경하며 침을 흘리지만, 더 이상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단다. 덕분에 돈 수천 혹은 수억을 아꼈다. 여행 전 타고 다니던 차 두대를 소중하게 쓰다가, 다음 차량은 테슬라를 구매할 예정이다.


이탈리아 모데나 페라리 뮤지엄, 마라넬로 페라리 뮤지엄에서








지구를 위한 작은 노력.

지구 온난화를 넘어 기후위기, 지구 가열화라는 표현이 적당한 시기가 다가온다. 전 세계에서 목도한 기후변화.. 7개월째 계속되는 시드니의 비, 봄가을에도 46도를 넘어서는 북아프리카, 미국 서부의 Dangerous heat, 석회화로 하얗게 변해버린 바닷속 산호들, 엄청난 모기떼...

세계여행 중 잦은 비행도 엄청난 탄소발자국을 남겼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죄책감이 몰려온다. 지금이라도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플라스틱 쓰레기 줄이기, 일회용품과 물티슈를 쓰지 않고, 대나무 칫솔과 에코백, 텀블러를 쓰지만, 여전히 미진한 느낌이다. 주 1회 채식하려 노력하고 있다. 성장기 아이를 키우기에 채식이 쉽지 않지만, 일주일 하루라도 채식밥상으로 끼니를 해결하면, 몸도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아이의 입학 전에는 환경체와 함께 해변청소 봉사에 참여했다. 맑은 날이면 집게와 봉투를 들고 해변으로 나선다. 정우와 제주 해변을 걸으며 쓰레기를 줍고 나면, 앞으로 플라스틱 장난감 레고를 사면 안 되겠단다. 오염된 해변의 어마어마한 쓰레기를 보며, 아이도 느끼는 바가 있다.


제주 바다 청소하는 봉사단체는 여러곳이나, 우리는 <디프다 제주>의 봉그깅에 참여했다.








성경을 공부했더라면..

500일을 여행하며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방문하게 되고, 유명한 화가들의 명화를 감상할 기회가 많다. 명화의 기원과 배경에는 성경이야기가 많았다. 유명한 정교회와 성당, 교회당을 방문할 때마다, 관련 책자와 가이드, 도슨트의 설명을 들어도 아.... 그때뿐이었다. 가슴에 남는 것은 없었다.

톨레도 대성당에서 한국 단체 관광객들과 함께 성당투어 할 기회가 있었다. 스무 명 남짓되는 무리 중 유달리 눈에 띄는 모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보이는 그들의 눈은 반짝였고, 걸으며 짧은 기도를 올렸다. 예수의 부활에 관한 명화를 감상하며, 도슨트를 들으며 그리스도의 메시지라도 받은 양 두 모녀는 충만해 보였다. 은혜로움으로 가득했다. 나도 하나님을 믿었다면, 혹은 성경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면 지금 이 대성당에서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한국에 돌아온 후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영어와 한국어 번역본이 함께 있는 성경을 보며 성경과 영어공부를 함께 하고 있다. 두 번째 세계여행을 하게 된다면, 풍부한 배경지식으로 조금 더 충만하게 느끼고 싶다.


독실한 크리스천 친구 연경이 선물해 준 <쉬운 성경 NLT>








민간 외교 사절단이 돼 볼까.

500일 세계여행 중 다양한 사람들에게 도움 받았던 감사한 기억이 많다. 한국에 돌아가면 작은 친절을 베풀며 선한 영향력을 펼치리라 다짐했는데, 다행히 서귀포 시골 마을까지 찾아주는 외국인들이 꽤 있다.


해변 앞 롯데리아에서 미국, 호주인 아저씨를 만났다. 세계여행 중이고 두 분 다 이름이 Steve란다. 호주인 Steve가 1994년에 미 서부로 여행 갔을 때, 미국인 Steve와 관광가이드로 만난 인연이 30년째 이어져 함께 전 세계를 여행 중이다. 연세가 있어 본국에 돌아갔다가 다시 또 만나서 여행을 하신단다. 장발 미국인 Steve는 74세, 호주 steve는 66세.. (원래 백인들 빨리 늙는 거 아니었나..;) 놀라울 만큼 정정하고 건강한 두 백인 할아버지들과 햄버거를 먹으며 스몰토크를 나누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우리 집 거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고, 동네 숙소 예약까지 도와드렸다.


서귀포 시골에서 영어 통하는 이를 만나니 반가운 모양이다. 날씨가 환상적이던 5월의 주말, 비치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도민에게 유명한 생고기 식당에 갔다. 어메이징 한 맛과 가격이라며 환상적인 저녁식사라는 찬사를 들었다. 석가탄신일에는 근처 작은 절에 방문해서 한국의 문화를 소개했고, 해녀들을 보여주며 제주 문화를 소개하고, 성산일출봉에 올랐다. 해녀식당에서 갓 잡은 소라와 전복, 멍게, 해물라면과 소맥을 함께 마셨다. 그들은 2주 간의 한국 일정에서 우리 가족을 만난 게 가장 인상 깊다고 했다. 한국 입시제도와 수능에 대한 이야기, 출산율, 선거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며 두 백인 아저씨들의 인생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또 어떤 날에는 제주 민속촌에서 만난 모로코인 hinda, 독일인 momo 부부에게 사진을 찍어주다가, 어제 공부한 영어표현을 써먹고 싶어 이런저런 대화를 시작했다. (예전엔 외국인이 말 걸면 어떻게 하지? 고개 숙이고 지나갔는데, 지금은 한마디라도 걸어보고 싶어서 막 들이댄다. 이젠 정말 아줌마가 됐다.)

그들은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사는데, 우리가 여행할 때 스튯에 방문했다니 정말 좋아하더라. 대부분 뮌헨만 알지, 슈투트가르트를 모른다며 반가워했다. 칸슈탄트 비어페스티벌, 벤츠&포르셰 뮤지엄 등 여행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며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다음에 독일에 여행 오면 자기네 집에서 머무르라는 다정한 부부를 집에 초대해 함께 차를 마시고, 중국집에서 식사했다. Hinda는 한국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짜장면이란다. 비건부부를 위해 고기 없는 간짜장, 마파두부를 만들어주신 대우반점 사장님께 감사드린다.



Hinda 부부와는 SNS를 통해 지금까지도 안부를 묻고 있다. 호주 Steve 아저씨께 이메일을 보냈지만, 바쁘신지 아직 답장이 없지만, 그래도 한국을 찾은 외국인에게 제주도에서 만난 한국인 가족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줬음에 만족한다. SNS에 에피소드를 올렸더니, 댓글로 '홍어른님이 민간 외교관이네요.' 란다. 뿌듯하고 기분 좋은 칭찬이다.


전 세계의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건 즐거운 일이다. 어쩌면 조금은 적적할 수 있는 제주의 삶에 작은 활력소랄까. 앞으로 만나게 될 다양한 사람들과 건강하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가고 싶다. 더불어 영어 말하기를 많이 잊은 정우와 내게 제법 환기가 된다. 우리와의 만남이 그 외국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더 아름답게 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500일 세계여행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과 사고에 작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 변화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저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옳다고 믿는 수밖에. 매일매일 건강하고 행복하게, 그리고 순간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 아이의 여름방학으로 차분하게 글 쓸 시간이 없어, 무려 3주간 발행하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