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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어른 Sep 05. 2024

어쩌면 우리는, 영원한 여행자.

다시 길 위에 서는 그날까지. 500일 세계여행이 남긴 것들 마지막

2023년 11월 7일, 세계여행을 시작한 지 500일이 되는 날이다. 


간이 너무 빠르다며, "여기가 (여정 첫 번째 도시) 나트랑이면 좋겠어요. 세계여행 계속하면 좋을 텐데..."라는 아이의 투정이 며칠 째 이어졌다. 

긴 여정이 드디어 끝난다는 생각에, 간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근새근 잠든 아이의 볼을 비비며, 새벽녘이 돼서야 겨우 눈을 감는다. 오전 7시 40분 기차를 타려면, 서둘러야 한다. 그나마 기차역 1분 거리 숙소라 수월하다. 교토 기차 박물관에서 봤던 라피트 열차를 타고, 간사이 공항으로 간다. 500일 동안 어떻게 이 무거운 짐을 끌고 다녔나 싶다. 라피트의 통창 너머 오사카의 가을 하늘은 오늘도 청명하다. 


500일 간 수십 번의 비행과 공항에 왔지만.. 오늘은 어쩐지 기분이 남다르다. 며칠 뒤 여섯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정우의 생일선물을 사주기로 약속했다. 여행 중에는 부피 큰 장난감을 살 수 없기에, 마지막 도시에서 커다란 레고를 사주기로 약속했는데... 공항 레고 매장에서 정우가 고른 건 작은 상자다. 이제까지 여행하느라 돈 많이 썼으니까, 너무 큰 장난감을 살 수 없단다. 여행 짐도 많은데 한국 도착해서 이동할 때 힘들단다. 

자식, 언제 이렇게 컸을까.. 그런 걱정하지 말고 원하는 걸 고르라니까, 나중에 열다섯 살 되면 콩코드 비행기 레고를 사달란다. (41만 원짜리다... 아들아.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









2022년 6월 27일 ~ 2023년 11월 7일


2022년 6월 27일, 길 위에 선 세 사람.

많은 분들의 응원과 염려 속에 안전하게 500일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500일 동안 세계 각지에서 만난 고마운 인연들과 배려로 행복한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국경과 세대를 넘나들며 친구가 돼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부모 잘못(?) 만나, 매일 2만 보씩 걸으며, 배낭 메고 캐리어 끌며 개고생 한 5살 아들 정우와 신경질 세계 2위 와이프의 짜증을 다 받아준 다정한 남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한국에 돌아가서 차근차근 소식 전할게요. 다들 보고 싶어요. 

라는 메시지를 SNS에 올렸다. 그동안 여행에서 만났던 분들과 한국에서 응원하던 많은 지인들의 격려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인생인가.  










언제나 여행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다. 
파울로 코엘류 - <알레프>




여행 떠나기 전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던가, 여정 시작 후에도 포기하고 싶던 날이 정말 많았다. 힘들어서, 아파서 울던 밤, 남편과 다퉈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고 나 혼자 한국으로 돌아갈까? 하던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위기를 버텨냈고, 행복했고, 많은 날 셋이서 부둥켜안았다. 그리고 함께 웃었다. 500일 긴 여행 중 초심을 잃지 않으려 가슴속에 새겨뒀던 문장 하나를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긴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동안에도 세계여행을 꿈꾸며 계획했고 '용기'를 냈기에, 그 바람이 이뤄졌다. 앞으로의 삶에서도 500일 여정이 가르쳐 준 삶의 지혜를 잊지 말고 살아갈 것이다. 

다음 여행지는 '한국'이라는 남편의 말에 웃으며 손을 맞잡는다. 








그렇게 세 사람의 한국 여행이 시작됐다. 대구 할머니댁을 거쳐, 인천 할머니댁 그리고 마침내 너무도 아늑한 제주 우리 집에 머물고 있다. 우리 가족의 모든 의사결정은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있는가? 그리고 오랫동안 지속할 있는가?'를 전제로 한다. 500일 여행에서처럼 로컬의 제철 식재료와 주어진 그날의 환상적인 날씨와 자연환경을 만끽하며 하루를 보낸다


500일 세계여행이 가르쳐준 진리 '눈앞의 미래가 아닌, 건강이 허락하는 한 40~50년 미래'염두하며 우리의 삶을 설계한다. 때로는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한다. 후회하는 날도 있다. 여전히 남편과 다투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이 모든 시간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을. 물론 여행 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그저 스쳐 지나던 생각과 감정들이 내 안의 평안을 만든다. 그리고 꿈꾸게 한다. 다시 길 위에 서는 그날을. 


어쩌면 우리는 영원한 여행자다. 

인생은 한 편의 영화이면서도 여행이니까. 






그동안 500일 세계여행이 남긴 것들을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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