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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어른 Jul 04. 2024

피라미드와 운명적 만남

이집트의 호갱지수, 기꺼이 호구가 되기로 했다.

2023년 4월, 라마단 기간에 모로코를 여행하며 '굶주림'을 온몸으로 체감하며 수련했다. 다음 행선지는 '사기당하러 가는 나라'로 악명 높은 이집트다. 수천 년 역사 유물과 4대 문명 발상지였던 이집트가 어쩌다 이런 오명을 쓰게 됐는지... 수많은 여행 유튜브 속 택시기사와 싸우고, 바가지와 호객행위로 힘들어하는 영상을 보며 겁도 나지만, 7대 불가사의 피라미드를 직접 보고 싶다. 이집트까지 와서 여행의 본질을 깨고 싶진 않기에, 적당히 호구가 돼가며 마음 편히 여행하기로 했다. 관광객에서 덤터기를 씌우는 그들에겐 생존이기에, 그들의 가정을 도울 수 있다면, 기꺼이 호구가 되기로 한다.








저녁 9시 도착, 택시기사와의 실랑이를 피하기 위해 곱절의 비용이지만 호텔 리셉션에 픽업서비스를 요청했다. 한 시간 연착된 비행기, 긴 줄 서서 도착비자를 발급, 유심카드 직원의 느린 일처리 끝에 공항 밖으로 나선다. 그래도 내 이름 피켓을 들고 환한 미소로 반겨주는 누군가가 있어 반갑고 고맙다. 젊고 훤칠한 픽업기사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를 반긴다.


"Hello, I'm Hong. We are too late. So sorry."
"No problem. Welcome to Egypt~"



키도 크고 늘씬하며 몸매도 좋고 중저음의 목소리까지 좋다. 잘생긴 젊은 남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호텔로 이동하니 어쩐지 황송한 기분이다. 호텔 루프탑에서 보는 기자 대 피라미드의 위용이 엄청나다. 온몸의 전율을 느끼며 피곤한 몸을 침대에 뉘인다. 잘생긴 픽업기사 파레스에게 1일 시내투어를 부탁했다.







호텔 테라스에서 즐기는 기자 대 피라미드
피라미드는 국립공원에 있을 줄 알았는데, 바로 근처에 호텔과 상업 지구가 늘어서 있다.
호텔 루프탑에서 피라미드 전경을 바라보며 즐기는 조식



간밤에 짧게나마 피라미드를 감상하며 탄성을 질렀다. 깜깜한 밤에도 피라미드의 위용은 대단했다. 기자 대 피라미드를 볼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예약한 이 호텔에서 밤새 엄청난 소음으로 한숨도 못 잤다. 더구나 라마단이 끝난 뒤 이슬람 최대의 명절이 시작되었다. 밤새 축제분위기다. 악기와 노랫소리에 자동차 경적소리까지... 온몸이 너덜너덜한 기분이다. 파레스와의 약속시간을 3시간 미루고 눈을 감고 최대한 휴식을 취해본다. 그래도 오늘은 우리를 에스코트해 줄 파레스가 있어 든든하다.



기자 피라미드 근처의 퍼레이드 행렬로 걷기조차 힘들다. 개와 고양이, 낙타와 말, 오토바이와 툭툭이, 자동차들까지 난리가 났다. 넋이 나간 나를 본 파레스의 제안대로 사카라 피라미드부터 일정을 시작한다. 7천 년 전 지어졌다는 피라미드. 부루마블 속에서만 보던 그 피라미드를 눈앞에서 보고 있다. 비현실적인 상황에 감격이 몰려온다. 하나에 2.5톤이 넘는 수만 개의 돌을 어떻게 쌓았을까? 가까이 다가가서 피라미드 표면을 만져본다. 내 키보다 커다란 돌 하나의 크기와 무게를 온몸으로 체감한다.



조세르의 피라미드 앞에서
7천년 전 사용했다는 상용문자. 귀한 유적들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다. @ 사카라 피라미드
유적지든 거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낙타.. 이곳이 이집트로구나.
내 키 169cm. 돌 하나의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모래바람도...








늦잠으로 시작이 늦었기에 시간이 촉박하다. 걸어서 기자 대 피라미드를 돌아볼 시간이 없어, 말이 끄는 마차를 타기로 했다. 1시간에 50달러를 냈다. 피로에 지친 우리에겐 비싼 가격은 중요한 게 아니다. 마차에 몸을 싣고 기자 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감상하며 사진 포인트에서 재미있는 사진을 찍어본다.

세찬 모래 바람이 불어온다. 5시간의 비행과 시차, 밤새 이어진 소음으로 지친 우리에게 그 어떤 장면도 커다란 감동을 주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파레스가 있어 여러모로 의지가 된다. 온 사방에서 호구가 되고 있는 우리를 지켜준다.


(나중에 파레스에게 들은 얘기지만, 우리가 탔던 마차업체로부터 커미션을 받았다고 했다. 으악...)

 

기자 대 피라미드 마차 투어





<이집트의 호갱 지수 참고>

내가 혼자 산 맥주 500ml 1캔에 120파운드 (5,200원)
 파레스와 함께 간 리큐어 숍에선 42파운드 (1,800원)

모든 관광지와 식당, 마트와 길거리 행상이며 티켓 매표소 어디든 로컬 가격과 관광객 가격이 다르다. 보통 3~4배에서 많게는 10배까지 비싸게 받는다. 기자 피라미드 입장료는 관광객 400파운드(16,800원) , 로컬 100파운드(4,200원)이다. 하다못해 생수를 한 병 구매하더라도, 파레스는 6파운드, 내가 사면 30파운드다. 이쯤 되면 호구가 되는 것을 즐겨야 한다.


파레스가 없었다면 매일매일 호갱력을 갱신했을 것이다. 택시 기사와의 입씨름을 안 해도 되니 마음이 정말 편하다.








파레스에게 깨끗하고 합리적인 가격의 현지 식당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관광객은 한 명도 없는 현지인 식당이지만, 쾌적한 분위기에 케밥을 닮은  'Shawrma meal 샤웨르마'가 입에 잘 맞는다. 달콤한 당근과, 저렴하지만 환상적인 과일주스까지... 지친 정우가 잠들어서 나일강 크루즈를 타진 못했지만, 잠시 들러 야경을 즐겼다. 짧았지만 즐거운 하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말해서 '너무너무 정신없이 복잡하고 지저분한' 카이로를 벗어나고 싶다. 

귀에서 경적이 들리는 느낌이다. 고속도로 중간으로 사람들이 걸어 다닌다. 모든 거리에서 쓰레기가 나뒹군다. 으악.... 이집션 박물관도 미라 박물관도 못 봤지만 괜찮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이 모든 게 특별한 경험이다.







이제 배낭여행자들의 무덤 다합으로 간다. 시골 바닷가 작은 마을이지만, 한국 사람들에겐 스쿠버다이빙의 성지로 알려져 유명한 곳이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저렴한 물가, 맛있는 음식과 친절한 사람들 때문에 많은 한국 사람들이 다합 한 달 살기, 일 년 살기를 도전한다. 스노클링을 좋아하는 나로선 다이빙에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카이로에서 다합까지 직항 비행기가 없다. 샴엘셰이크까지 비행 뒤 택시로 1시간을 가야 한다. 물론 '고 버스'를 타면 저렴한 가격에 갈 수 있지만, 최소 11시간이 걸린다. 디스크가 있는 내가 좁은 버스에서 오랜 시간 버틸 수가 없다. 여러모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파레스와 함께 자동차로 이동하는 게 낫을 것 같다. 차로 가면 6시간이 걸리지만 중간중간 쉬어갈 수 있고, 짐을 이끌고 택시로 공항 가서 비행기 1시간 반 타고 내려서 다시 택시 타고 다합으로 이동하는 일련의 과정이 힘겹다. 같은 돈이라도 항공사에 주는 것보다 이집트 젊은이에게 주는 게 낫다.


무엇보다 파레스라는 친구가 너무 좋은 사람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대인 카이로 대학 법대 졸업, 변호사 자격까지 갖추었고, 어머님도 변호사, 아버지는 수학 선생님 소위 말하는 엄친아다. 외모까지 훌륭하다. 변호사 인턴 급여가 낮아서, 가이드를 하면서 돈을 모으고 있단다. 25살밖에 안된 어린 나이지만, 열심히 산다. 우리를 케어해 주는 마음 씀씀이와 행동들이 다정해서 마음이 간다. 가정교육을 잘 받은 티가 난다. 정우가 파레스 삼촌을 너무 좋아한다. 그와 함께 다합으로 이동한다.



아이를 좋아하는 파레스



이때만 해도 알 수 없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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