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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어른 Jun 20. 2024

황당한 사건 속에서도 배움이 있다.

당신은 불법숙소에 묵고 있습니다. 당장 나가세요!

여행 중 전체적인 큰 일정은 남편이 맡았고, 그때그때 상황과 감정에 따라 일정을 정하며 말 그대로 자유여행을 했다. 자유를 만끽하는 중에도 마음 한 구석에 불안감이 존재한다. 반드시 어딘가에 여정을 풀겠지만,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심리적 불안''자유' 사뭇 다르다. '자유'는 내가 주인이 되어 어떠한 간섭 없이 행동하고 결정하는 것이지만, 세상을 돌아다니는 긴 여정 중에는 안정감 있는 하루가 주는 심리적 여유 역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500일을 여행하며 우리를 불안에 떨게 했던 몇 번의 사건이 있었다. 당시는 꽤 괴로웠지만, 그 황망함 속에도 잔잔한 깨달음을 얻었다.












Cindy와 Angela 그리고 에어비앤비

미국 본토에 온 지 보름 지났을 뿐인데, 어느새 다섯 번째 숙소다. 그 어느 때보다 주거의 안정이 절실하다. 긴 여정이기에 한 곳에서 적어도 5일은 머물기로 했는데, 80kg 짐을 2~3일에 한 번씩 옮기는 일은 꽤 지친다. 잦은 이동이 여정 전체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걸 온몸으로 체감한다. 머물게 될 숙소가 어떨지 모르기에, 금액 차이가 없다면 가급적 짧게 예약한 뒤 연장하곤 했다. 간혹 연장이 안 되는 경우도 있고, 예약한 가격보다 비싸지기도 하고, sold out 되는 경우도 있다. 그냥 처음부터 예정된 기간 전체를 예약했어야 하는데...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기저에 깔린 불안함이 여정 전체를 힘들게 했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꼽는다면, 단연코 숙소다. 불편한 숙소에서 머무는 내내 만족감이 없다면, 그 여행지에 대한 인상이 좋기 어렵다. 샌프란시스코의 좋은 추억들이 숙소 때문에 다소 반감되는 것 같아 아쉽다.


LA 다운타운부터 관광지 주변은 비싸도 너무 비싸다. 렌터카도 있으니 굳이 다운타운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며 LA 외곽에 묵기로 했다. 숙소 근처에 도착해서 호스트와 채팅하는데 도무지 대화가 안 된다. 예약한 사람 Hong (나)인데, 호스트 이름과 프로필, 연락처도 맞는데...... 내가 알고 있는 호스트 Angela가 아니다. 호스트와 채팅을 나눌수록 무언가에 홀린 기분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솔뱅과 산타바바라를 거쳐오다 보니, 밤늦은 시간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가 있는 패셔디나 지역은 전형적인 주택가다. 늦은 시간 비슷비슷한 집들이 늘어선 골목에서 숙소를 찾기가 여간 쉽지 않다. 간신히 메신저로 묻곤 있지만, 서로 다른 숙소로 대화하려니 소통이 될 리 없다. 불행 중 다행히 호스트 Cindy가 직접 나타났다. 우리가 제대로 찾아온 건 맞단다. 그제야 Cindy와 함께 에어비앤비 어플을 꼼꼼히 확인한다.


Mrs.Hong! This is not my house. What happened?
(미세스 홍! 이 사진은 내 집이 아니에요. 어떻게 된 거죠?)
 


오늘 예약이 2개다. 뭐지??????

같은 날 다른 숙소가 2개 예약되었다?????!!!!!

Oh my Godness...



오늘부터 2박 3일간 두 군데의 숙소가 예약되었다. 남편과 나의 눈이 동시에 커진다.

“뭐야, 뭐야??!! 이게 뭐야!! 왜 예약이 2개 돼있어??”


낮에 들린 산타바바라 비치에서 급하게 숙소를 찾던 중, 남편도 모르게 예약버튼을 눌렀을 수 있고, 정우가 열려있던 아빠 핸드폰을 만지다가 예약버튼을 눌렀을 수도 있다. 어쨌든 모든 건 어른(남편)의 불찰이다. 사건은 터졌고, 중복예약된 이틀 치는 환불받지 못했다. 하필 중복 예약된 숙소 호스트 Angela는 지난달 호스팅을 시작한 초보라 취소하는 방법을 모른단다. 첫날은 안돼도 둘째 날은 환불 가능하지만, 우리에게 시간 맞춰 예약취소버튼을 누르지 않았기에 환불이 안된단다. Cindy도 둘째 날 비용은 호스트가 직접 환불해 줄 수 있는 데 이해가 안 된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정아. 우리 그냥 잊자. 500일 여행하면서 이런 일 한 번쯤 생길 수 있겠다 상상했어. 그런데 진짜 발생했네.”

“오빠, 2박 3일간 싼 숙소를 예약해 둔 게, 천만다행이야. 비싼 숙소를 길게 예약했으면 어쩔 거야. 좋게 생각하자.”


이렇게 돈이 의미 없이 사라지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지만, 애써 좋게 생각하려 한다. 190달러(한화 29만 원)가 공중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커다란 교훈을 다시금 얻는다.

정말 상상하면 이루어진다. 지금껏 그래왔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즐거운 일, 진정 원하는 미래에 대한 상상만 하면 된다. 물론 모두 다 이뤄질 순 없을 테고 항상 좋은 상상만 하는 일도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나쁜 상상이 모두 이뤄지면 더더욱 안될 일이다. 여러 번 생각하고 간절함을 더하는 상상들은 지금껏 이뤄져 왔고, 그렇기에 우리가 이 여정을 떠나올 수 있었다. 190달러에 얻은 가르침에 비하면 가성비가 높다. 꼭 기억하자. 상상의 힘을 믿자.





2022년 9월 14일~16일까지 2박 3일 숙소가 두 곳 예약되다니?


우리가 예약한 LA의 Cindy네 숙소와 언제 예약되었는지 지금도 미스테리인 Angela의 숙소


우리 상황을 인지한 에어비앤비 고객센터에서 둘째 날 비용의 일부를 환불해 주었다. 190달러를 날렸다고 낙담했는데, 생각지 못한 70달러가 생겼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다.














당신은 불법 숙소에 머물고 있습니다. 당장 나가세요!

오랜만에 맛보는 환상적인 커피와 크루아상, 그리고 온화한 날씨까지 완벽한 이스탄불 여정 시작이다. 집 근처 마트에서 일주일 치 식재료를 잔뜩 샀다. 평소처럼 아이와 오전 공부 후 외출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오후에는 할비쉬, 무스타파 커플을 만나기로 했다. 세 달 만에 만나는 터키 부부와의 만남이 기대된다. 남편은 중요한 통화 하러 잠시 나갔고, 여느 때처럼 평온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갑자기 현관문 벨이 울린다. 쾅쾅쾅!! 다소 거친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웬 남성 세 명이 섰다. 경찰과 공무원이라며 신분증을 보여준다. 그들은 서툰 영어로 질문 세례를 시작했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했는지, 며칠 예약했는지, 얼마를 지불했는지 물었다. 그리고는 우리 여권 정보를 확인해 갔다. 아이와 둘만 있는 집에 시커먼 사내 셋이 들이닥치니 불안한 마음에 서둘러 남편을 데려왔다. 영어가 서툰 그들과 번역기를 총동원해 가며 대화를 했다.

 

터키 법 상 3주 미만 단기 렌트는 불법이란다. 정식 허가받은 호텔에서 묵어야 한다고 했다.

슈퍼 호스트였던 우리 호스트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며, 변호사인 할비쉬와 무스타파도 문제없다 했지만, 결국 숙소는 폐쇄 조치 명령이 내려지고, 우리는 강제 퇴실했다. 당연히 하루치를 제외한 모든 비용은 환불받았다. 이스탄불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에어비앤비를 이용하지만, 어디에도 단기 렌트가 불법이라는 말은 없다. 경찰도 당신 잘못이 아니라, 호스트의 문제라며 미안하다고 했다.

탈세 집중조사기간 같은데, 왜 하필 우리 숙소인가??!! 일주일 치 식재료 장을 봐둔 탓에 어마어마한 짐을 이끌고 길거리에 나앉을 뻔한 우리를 위해 할비쉬와 무스타파 커플이 달려와줬다. 황당한 일을 겪었지만,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짐은 무스타파 차에 실어두고, 일단 밥부터 먹기로 했다.


아래는 할비쉬, 무스타파부부의 단골 케밥집이다. 로컬이 좋아하는 찐 이스탄불 맛집이다. 맛있는 케밥으로 배를 채우고, 친구들이 이끄는 데로 따라다닌다. 어디로 갈지 목적지를 검색하지 않아도 되고, 지도 볼 필요도 없이 그저 할비쉬와 무스타파 뒤만 졸졸 따라다니면 되니까 정말 편하다. 이스탄불이 아름다운 도시인 줄 몰랐는데, 걷는 내내 감탄할 만큼 아름답다.



이스탄불 첫 날 여정, 숙소 근처 멋진 유럽풍의 노천카페. 여유로운 오전을 만끽했을뿐인데...
숙소에서 쫓겨난 뒤 먹으러 갔던 로컬 케밥 맛집. 오갈데 없는 신세지만, 케밥은 정말 맛있었다!
할비쉬, 무스타파 커플과 함께 하는 하루. 그래도 친구들이 있어 든든하다.


오늘 밤은 무스타파와 할비쉬 신혼집 거실에 묵기로 했다. 한사코 거절했지만, 하루라도 함께 보내자는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로컬 가정집에서 머물게 됐다. 이집트 Giza 이후, 두 번째 로컬 하우스 방문이다. 수개월 전 이집트 라스 모하메드 보트 투어에서 만난 우리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집에 초대해 주는 따뜻한 사람들... 어느새 400일이 넘어선 우리 여정은 정말 버라이어티 하다. 신혼집 근처 모스크에서 새벽 5시부터 울려 퍼지는 기도 시간을 알리는 노랫소리에 잠을 깼다. 소파베드에서 셋이 나란히 누워서 자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다. 이렇게 황당한 상황에도 좋은 사람이 있어 다행이다. 500일 세계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고, 따뜻한 배려를 받았다.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고마운 이들에게 어떻게 다 보답해야 할까....?











깊은 산속 도로 중간에서 내리라고요? 

조지아 카즈베기에서 환상적인 트래킹을 마치고, 고도 2,000m 구다우리 산속에서 푹 쉬었다. 트빌리시 공항에서 인연이 된 도곡동 이모님 부부와 함께다. 예정된 조지아의 2박 3일은 트빌리시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우리는 가급적 한번 맺은 인연과 계속 거래하는 편으로, 주타 트래킹과 카즈베기 일정에서 함께 했던 택시기사에게 트빌리시까지 이동을 요청했다. 그가 바쁘다며 친구를 보낸다고 할 때부터 괜스레 불안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구다우리에서 트빌리시까지는 차로 1시간 40분 정도로 가까운 거리인데, 1시간 남짓 달렸을 때 사건은 벌어졌다.

택시기사가 전화 한 통을 받고,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짧은 영어와 조지아어, 러시아어를 총동원하며 말한다.


 '친구 자동차가 고장 났대. 지금 당장 내가 친구에게 가야 돼. '



그럼 우리는??? 다른 차를 구해줄 테니 타고 가란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고객과의 약속이 먼저였으니, 트빌리시에 데려다준 뒤 친구에게 가면 어떻겠느냐 이야기해봐도,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다. 어딘지 모를 산속 시골길에 차를 세우더니, 다른 택시가 오기를 기다린다. 친구 문제로 고객을 길에 버려두고 가는 게 정상인가? 한국인 정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반드시 본인이 가야 한다는 택시기사 때문에 산속 시골길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발이 묶였다. 새로운 기사가 올 때까지 차에서 절대로 내리지 않겠다 다짐하고 기다렸다. 한참 뒤 새로운 차가 왔으나, 차가 작다. 캐리어 4개에 성인 4명, 어린이 1명이라 7인승 승합차를 예약했으나, 5인승 suv에 기사까지 6명이 끼여 타란다. 더구나 짐 실을 공간도 없다. 황당하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영어 못하는 조지아의 두 택시기사와 구글 번역기와 바디랭귀지를 총동원하여 협상에 나선다.



카즈베기 산맥의 환상적인 풍광 @조지아 zuta
5인승 suv에 자리가 없어, 결국 차 위에 매달고 가야한다.



감사하게도 차 위에 올려둔 캐리어는 떨어지지 않고 안전하게 도착했고, 뒷자리에 앉은 이모님과 우리 셋도 비좁긴 했지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겁게 왔다. 아무런 사고도 벌어지지 않음에 감사할 뿐이다. 혹시 새로운 택시 기사와 비용 문제가 생길까 걱정했지만, 걱정했던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500일이라는 초장기 여행을 하면서 이런저런 다양한 경험을 하지만, 산속 시골길 중간에 버려질 뻔한 경험은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남편과 선생님이 머리를 맞대고 예약한 트빌리시 숙소가 아늑하다. 발코니에서 성삼위일체 성당의 아름다운 모습을 언제든 감상할 수 있다. 오늘도 감사하는 하루다. 




숙소 발코니에서 보는 성삼위일체 성당










당황스러웠던 사건들을 겪으며 조금씩 단단해져 다.  

여행 중 황당하고 당혹스러운 사건사고를 여러 번 경험했다. 숙소비용을 날리기도 하고, 타국만리에서 갑자기 쫓겨나기도 하고, 길 중간에 버려질 뻔하기도 하고... 바다 급류에 휩쓸려서 구조대원에게 구조되기도 하고, 잘 곳이 없어 노상과 다름없는 모래 위 천막에서 모기와 씨름하며 밤을 새운 날도 있었다. 티켓값을 날린 적도 여러 번이다. 짜증내며 좌절할 때도 있었지만, 길 위에 선 우리 셋은 어떻게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해결하려 했고 어떻게든 상황은 무난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감사해 할 수 있었다. 마침내 계획했던 500일 여정을 마칠 수 있었다.

예민한 성격인 나는 작은 일에도 쉽게 짜증내고 포기해버리곤 했다. 500일 여정 중 극한의 상황을 경험하며,  큰 상황이 벌어지지 않음에 감사할 수 있는 여유가 어느샌가 생겨났다. 언제나 상황을 보다 긍정적으로 보려 한다. 남편과의 다툼도 여행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줄었다. 어린이 정우의 성장은 어른보다 눈부셨다. 불편한 상황을 참고 인내하,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어린 나이임에도 본인이 작은 도움이 될 거라 믿으며, 고사리 같은 힘을 보태려 노력하는 모습을 볼 때면 우리 여정이 가족의 성장에 자양분이 되었다고 믿는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살아가며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숱하게 만날 것이다. 그때마다 굴하지 않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해결하려 한다면 무난하게 흘러갈 것이다. 간절히 상상하면 이뤄졌던 것처럼 언제나 행복하고 즐거운 상상을 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여전히 당황스럽고, 힘들고 두려운 일을 숱하게 만나지만, 적어도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라는 바보 같은 상상은 하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될 것이다. 남편의 오랜 상상이었던 세계여행이 이뤄진 것처럼 밝고 행복한 미래를 그려본다. 오늘도 감사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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