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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어른 Jul 11. 2024

500일 세계여행의 가장 큰 선물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집트 로컬 결혼식, 다합, 카이로, 샴엘셰이크,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카이로에서 다합까지 사막 가운데 고속도로를 달린다.


중간중간 쉬며 8시간을 달려 다합에 도착했다. 이스라엘 접경지역 '사나이반도'의 경계가 삼엄하다. Go  bus를 타면 평균 10회의 짐 검사와 신분 확인을 거치지만, 변호사 파레스와 함께 하니 쉽다. 그와 함께라면 어딜 가든 관광객 바가지 없이 저렴하게 물건을 살 수 있다. 파레스가 카이로로 다시 돌아가기엔 늦은 밤이라, 우리랑 함께 머물고 내일 출발하래도 연신 괜찮다며, 다른 숙소를 찾겠단다. 침실 3개의 넓은 숙소임에도 혹여 우리가 불편할까 민폐 끼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게 다합에서의 첫날밤이 지나간다.  


이슬람교의 최대 명절, 이드 알피르드의 시작이다. 옆 집에서 새벽 5시까지 파티를 한다. 시끄러운 음악에 고성방가까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파레스에게 방을 구했냐 물으니 연휴로 다합 전체에 빈 방이 없어, 해변가에 차를 세워두고 쪽잠을 잔단다. 당장 우리 집으로 오라고 한 뒤, 비어있던 옆 방에서 재웠다.

우리에게 신세를 졌으니, 보답하고 싶다며 다음날 가이드를 해주겠단다. 그렇게 이집트인 파레스와 함께하는 여행이 시작됐다. 환상적인 홍해를 원 없이 즐기며, 스노클링과 바다수영을 만끽했다.


바다옆을 걷는 낙타, 피어에서 점프하면 20M 수심의 환상적인 홍해바다, 산호숲이 펼쳐진다.








사모님들이 비서를 왜 두는지 알겠어.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삶이다. 저렴한 물가에 환상적인 자연환경과 안락한 거주공간, 누군가 우리를 지켜주고, 매일 아침 식사와 커피를 사다 주고, 아이를 돌봐주고, 운전을 해준다. 우리 부부는 파레스에게 경제교육과 미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루에 2갑 피우던 담배도 함께 지내며 끊게 된 덕분에 파레스의 부모님도 우리를 더 좋아하게 됐다. 파레스는 정우의 친구이자 다정한 삼촌, 수영, 영어, 아랍어 선생님이며 우리 부부에겐 듬직한 동생이다. 어느샌가 서로에게 소중한 가족이 되었다.


다합에서 일주일을 함께 보낸 뒤 파레스가 추천하는 샴엘셰이크에서 조금 더 머물기로 한 것이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다음 주 누나 결혼식에 초대하고 싶다는 그의 간곡한 요청에 여행비자를 연장하며, Giza에 위치한 파레스 본가에도 머물렀다. 로컬 결혼식에 참여하며 이집트인들의 삶과 문화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다합에서 하루를 함께 보냈던 인연으로 시작해, 파레스와 함께한 여정은 장장 4개월로 이어졌다.    



이집트 청년에게 미국주식에 대해 설명해기도 하고, 별 보러간 밤에 불피워 마쉬멜로우 구이..
숙소 수영장, 바다, 가끔은 투어보트를 타고 라스모하메드 국립공원에도..
온종일 스노클링하다가, 석양 질 시간이면 피어에 앉아 맑은 바다 속 물고기를 구경했다.
정우의 유모역할을 톡톡히 해준 파레스, 정우 태어난 지 2000일에는 깜짝파티까지 준비해줬다. 다정한 파레스.








어느 나라든 젊은이들의 고민은 비슷하다.

Rania의 결혼식은 6월 10일이지만, 우리나라의 혼인신고처럼 법적으로 부부가 되는 서약식이 있다. 보통 모스크 사원에서 이뤄지나, 본가에서 진행된다. 친지와 지인들이 모이고, 아름다운 의상을 입은 커플이 손을 마주 잡고 아름다운 장식이 된 하얀 천을 올린다. 무슬림 주교의 기도와 함께 전통 의식을 치른다. Mama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딸 결혼시키는 엄마의 심정이 어떨까?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순 없지만, 내 눈가도 촉촉이 젖어든다. 이집트 중년여성들이 행복할 때 내는 특유의 소리가 있다. 새나 동물소리 같은 괴성을 내며 기쁨을 표현한다. 사람 사는 건 비슷하지만, 고유의 문화가 조금씩 다른 걸 접할 때마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가운데 안경 쓰신 분이 무슬람 주교님, 혼인서약 서류를 작성한다.
새신랑 마하무드와 파레스의 누나 라니아. 미소가 아름다운 커플.


영어를 곧잘 하는 새 신랑 마하무드와 다양한 주제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한국의 젊은이와 다를 바가 없다. 힘든 직장생활, 나라의 경제 상황, 앞으로의 불투명한 미래... 어느 나라든 국적을 떠나 젊은이들의 고민은 비슷하다. 오늘 행사에 모인 남자들이 거실에서 담배를 피워댄다. 대한민국의 1980년대 모습 그대로다. 실내에서 흡연하는 모습이 너무나 생경하게 느껴진다. 정우가 숨 막힌다며 코를 막고 그만 피우라는 시늉을 한다. 아이를 데리고 방 안으로 피신했다. 어린아이 앞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 우리 어릴 적에도 아버지는 안방에서 담배를 피우셨고, 버스 안에서도 흡연이 가능했던 시절이 있다.

프랑스 기차에서 아기를 안은채 유모차를 끌며 흡연석에서 담배를 피우던 젊은 엄마가 생각난다. 일본만 해도 아직까지 실내흡연이 가능한 국가다. 한국에서는 실내 흡연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습인데, 격세지감을 느낀다. 선진국으로 발전하려는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의 모습을 보여 생각한다. 경제발전의 성과만큼 시민의식과 성숙한 문화가 발전했다. 대한민국에 대해 자랑스러운 마음이 든다.








이집트의 결혼식은 보통 3일간 진행한다. 신랑 신부 집에서 각자 파티를 하고, 다 함께 모이는 웨딩데이는 다들 멋지게 차려입고 축하파티를 벌인다. 아침부터 다들 분주하다. 남편은 오랜만에 안경을 꺼내고, 파레스 옷장에서 입을만한 셔츠와 구두를 찾는다. 정말 가족이 된 걸까? 이걸 입어도 되는지 물어볼 생각조차 없다. 그 정도로 파레스와 가족들이 편해졌다. 화사한 플라워 셔츠가 남편에게 잘 어울린다. 그간 열심히 수영한 까닭에 군살이 빠져 날씬하다. 어젯밤 파레스의 단골 미용실에서 깔끔하게 이발도 했다. 정우는 아가티를 완전히 벗었다. 선이 짙어지며 구릿빛 피부까지... 건강하게 잘 커가는 것 같아 뿌듯하다. 나도 하나뿐인 원피스와 Rania의 구두를 빌려 신고, 정우도 새로 산 셔츠와 반바지를 입으며 멋을 냈다. 

파레스는 본인이 결혼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며칠을 고민하며 슈트와 번쩍번쩍한 구두로 멋을 냈다. 카이로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라 할 정도로 잘생겼고 훤칠하다. 늘씬한 근육질 몸매에 슈트핏이 멋지다. 인스타그램에 여자들이 바글바글하다. 밝게 빛나는 25살 청년에게 남편은 인생의 선배로서 '여자가 인생을 흥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한다.'며 비즈니스 세계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파레스는 남편을 인생의 멘토이자 선생님이라며 잘 따른다.



여행 중 처음으로 마스카라를 바르고, 구두를 신어본다. 멋지게 꾸민 파레스와 정우.








이집트인의 생소한 결혼식 문화

얼떨결에 웨딩케이크를 옮기게 되어 결혼식 시간보다 1시간 40분 늦게 식장에 도착했다. 오는 내내 웨딩케이크가 늦어 어쩌나 안절부절못했지만, 도착해 보니 야외 수영장이 딸려있는 예쁜 정원에서 진행되는 '결혼 파티'같은 자유로운 분위기다. 오는 길에 걱정하지 말라던 파레스의 말이 이해된다.


3단 웨딩케이크를 커버도 없이 자동차로 옮긴다고? 운동신경 좋은 남편이 1시간 거리를 들고 옮겼다.


결혼식장에 들어서자 미리 귀띔해 준 것처럼, 모든 하객의 시선이 집중된다. 갑자기 나타난 한국인 하객은 이방인을 넘어 동물원 원숭이를 보듯 신기한 표정들이다. Giza 골목을 걸을 때도 모든 이집션의 시선이 쏟아진다. 이집트에 온 지 50일이 넘어가니, 이런 시선에서 조금은 의연해졌다.  


야외 결혼식장에 조명이 켜지자 정말 아름다웠다. 중앙 꽃길 앞에 드디어 신랑신부가 섰다. 백년해로를 앞둔 커플이 행진한다. 놀라우리만큼 아무도 손뼉 치거나, 환호하지 않는다. 신랑신부의 행진이 고요하게 끝났다. 오늘의 주인공에게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상황이 당황스럽다. 갑자기 DJ가 신나는 음악을 선곡한다. 중앙 무대에서 신랑신부가 음악에 맞춰 춤추기 시작하고, 젊은 하객들이 무대로 나와 함께 춤을 춘다. 시간이 흐를수록 춤사위가 과격해진다. 신부대기실에서 얌전히 앉아 방긋거리며 사진 찍는 한국의 신부와 달리, 음악에 한껏 심취해 춤추며 하객들과 함께 즐기는 진정한 의미의 '파티'다.


신랑 신부 곁으로 남녀 그룹을 구분하여 춤을 춘다. 이슬람 국가이기에 남녀가 유별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생경한 풍경이다. 한국이라면 어느 정도 취해야 저렇게 춤을 출 텐데.. 맨 정신에 다들 대단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웨딩파티의 저녁식사가 제공되지 않는다. 간단한 케이크와 음료가 전부다. 남편이 1시간 동안 힘들게 옮겨온 3단 웨딩케이크는 신랑신부의 커팅과 동시에 퇴장했다. 두 시간 넘는 댄스타임 후 결혼식이 끝났다. 정우는 공주님 같은 라니아에게 반한 표정으로 내내 그녀의 곁을 맴돈다. 라니아도 정우가 귀여운 지 사랑스럽게 안아주었다. 새 신부의 미소가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다.


남동생 마하메드, 바바, 라니아, 마하무드, 마마, 파레스. 그리운 이집트 가족들..
파레스의 사촌동생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앤 해서웨이를 닮은 아름다운 새신부.


이집트 결혼식 문화








광란의 질주 시작

웨딩파티가 끝나고 집으로 가려는데, 끝이 아니란다. 혼전순결을 중요시하는 무슬림은 초야를 맞이할 새 커플을 응원과 방해 겸 '카 퍼레이드'가 있다. 파레스 절친의 차 뒷자리에 타라는 말에 탑승한다. 신혼집까지 지인들의 차량이 줄줄이 뒤따른다. 운전대를 잡은 미고는

 "Don't worry, It's OK."


뭘 걱정하지 말라는 걸까?


신랑신부를 태운 차가 출발하자, 하객들의 차들이 뒤쫓는다. 모든 차량이 경적을 울리며, 음악을 크게 틀고 환호성을 지르며 폭주족처럼 광란의 질주가 시작된다. 조수석에 탄 남동생 마하메드는 창문을 열고, 상체를 밖으로 뺀 채 폭죽에 불을 붙인다. 그 와중에 광란의 질주는 계속되고, 주변의 친구들도 비슷한 분위기다. 파레스의 차를 타고 가시던 마미가 창문을 열어 "조심해라" 말씀하시고는 가신다. 차들이 1차선부터 3차선까지 대각선으로 움직인다. 귀가 터질 것 같은 음악소리에, 다들 미친 것 같다. 어린아이를 채운 차량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다들 창문밖으로 몸을 절반쯤 내밀고 소리 지르며 폭죽 터트리고 광란의 파티다. 처음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재밌었지만, 곡예사처럼 질주하는 게 무서워서 손잡이를 양손으로 부여잡고


  "Please, Safety driving!!!"을 외쳤다.



30분가량의 퍼레이드가 끝나고, 신혼집에 도착했다. 고요한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경적을 울리고, 폭죽소리가 들리자, 하나 둘 아파트 창문이 열린다. 다들 즐거운 표정으로 축하한다는 인사와 박수를 보낸다. 광기 어린 질주가 이집트의 피로연 문화란다. 어쩐지 오징어 가면을 쓰고 함 지게를 맨 신랑 친구들의 짓궂은 장난과 술상이 이어지는 한국의 '함 사세요~' 문화가 떠오른다. 여름날 시끄러운 소란에도 누구 하나 불편해하지 않으며 축하해 준다. 신혼집 하늘 위로 수놓아지는 형형색색의 불꽃놀이가 새 부부의 앞날을 밝게 빛내주는 느낌이다.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구나 생각을 한다.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며, 또 하나의 걸출한 경험담이 생겼다. 아름다운 새 신부 Rania의 결혼을 축하하며 앞 날에 축복만이 가득하길 인샬라.


공포에 질린 나, 신혼집 앞에서 새 신부.








누군가 "500일 세계여행이 남긴 최고의 선물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이집트에서 운명처럼 만난 한 젊은이 "파레스"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치 해외 유학 보낸 아들 같은 애정이 있다. 함께 지내는 동안 그는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정우와 둘이서 자고, 같이 샤워하고, 넷이서 오순도순 먹고, 요리 대결을 하고, 드라마를 보고, 맥주도 마시고... 한 번은 남편과 심하게 다투고 파레스가 카이로로 돌아가겠다며 짐 싸서 나간 적도 있다. 진짜 가족처럼 때로는 소리 지르며 싸우고, 또 화해하고 웃고 울었다. 허리가 아픈 나의 밤산책 동무였고, 때로는 연애상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연애상담 덕분에 나의 영어말하기 실력도 나날이 늘었다.)  


우리를 자식처럼 챙겨주신 다정한 MAMA와 BABA 덕분에 카이로 본가에서 머무는 동안에도 편안하고 행복했다. 매일 차려주시는 맛있는 음식과 디저트, 서툰 영어로 나눈 대화와 포옹.. 마치 친정집에 와있는 것처럼 편했고, 팔레스 없이 마마, 바바와 나일강 밤마실 갈 정도로 우리는 한 가족이 되었다.


서로 sns를 보며 근황을 확인하고 자주 메시지를 나눈다. 한 번씩 자신의 여자친구 사진들과 함께 남녀 관계를 거침없이 묻기도 한다.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을 때도 있고, 언쟁을 벌이기도 하고, 가끔 연락하지 말자고 한다. 진짜 가족처럼 지낸다. 그렇게 냉랭할 때마저도 파레스가 잘 지내는지 걱정되고 뭐라도 보내주고 싶어 진다. 500일 동안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멋진 랜드마크 앞에 찍은 사진도, 다시 한번 가서 먹고 싶은 맛집들도 즐비하지만 그 모든 걸 다 지우더라도 다른 국적의 우리 가족인 "파레스"와는 절대 바꿀 수 없다. 세계 여행은 가고 싶은 곳을 가보는 여정이라기보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운명적인 만남'을 기다리는 여정이다. 500일 세계여행의 기억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 건 그랜드 캐년의 장엄함도 , 리스본의 에그 타르트도 아니다. 바로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그들'이다. 그들이 우리 인생에 남아 있다. 파레스가 보고 싶다...



한국 매운 라면을 좋아하는 이집트 청년, 정우의 껌딱지.  
프리다이빙 천재 누나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파레스 지인 찬스로 Giza zoo 휴일에 프라이빗 투어도 했다.  
요리는 내가 주로 했지만, 가끔 파레스가 솜씨를 발휘하고, 정우의 가정교사가 되주었다.
한국드라마 <킹더랜드>에 빠져 매일밤 정우를 재워두고 정주행, 매일 수영, 다이빙, 스노클링.
mama, baba와 함께 나일강 밤마실
mama의 화려한 음식솜씨가 휘몰아치는 매일매일 식탁.
샴엘셰이크 공항에서 그렇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헤어졌다. 아직도 서로를 그리워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 제목처럼,

우리는 반드시 다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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