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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총총 Jun 04. 2023

[이런, 이란!] 이란 전통 뷔페에서 거한 솔로 만찬을

페르시아 솔로 방랑기

페르시아 맛, 페르시아 분위기, 페르시아 이야기가 가득했던 이란 전통 음식 디지(Dizi) 뷔페



이란 서부도시 하마단(Hamedan)의 호스텔 주인 누신(Nooshin)씨는 아침마다 조식을 참 정성스럽게 차려낸다. 하나하나 공들인 손길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에서는 쳐다도 안 보던 아침을 여기서는 꼬박꼬박 챙겨 먹게 된다. 맛도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식탐도 생긴다. 본의 아니게 과식.


호스텔에서 아침마다 차려주던 맛있는 이란 가정식 아침


조식을 너무 거나하게 먹은 지라 오후 늦게까지 너무 배가 불러, 저녁은 늦게 먹으리라 생각하고 있던 찰나... 가고 싶던 식당이 4시 45분에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마감시간 한 시간을 채 남기지 않고 서둘러 찾아간다. 샌드위치 같은 것 말고 이란 전통 음식이 먹고 싶었는데 드디어 찾았다. 구글맵에도 나오고, 지나가가다 '식당 참 이쁘네...' 생각하던 곳이 바로 그곳이다.


어제 밤마실을 행했더니 변변한 식당을 못 찾고 샌드위치 나부랭이를 먹은 이유가 있었다. 하마단의 괜찮은 식당들은 거의 4~5시경에 문을 닫는단다. 이란 방문 세 번째이긴 하지만 일 때문에 너무 바빠, 이렇게 느긋하게 쏘다닐 겨를이 없어 놓치고 있었는데, 이란의 상점들은 아침 7시경 일찍 문을 열었다가 12시경 문을 닫고, 다시 오후 5시경 문을 열어 밤늦게까지 영업을 하는 곳이 많다. 식당은 딱 한 때만 열고 가차 없이 닫아버린다.

덥고 건조하여 바삭바삭하게 구워지는 여름의 기후가 이런 문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문 장식이 참 전통적인 아리아에니얀 식당


찾아간 곳은 'Aryaeiyan Traditional Restaurant'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어떻게 읽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아리아에이얀?? 아리아인 어쩌고 뜻인 것 같다. 이란 사람들은 아리안족의 후손이다.


레스토랑 내부는 '여기는 빼박캔트 이란이올시다' 분위기로 꾸며놓았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부터 벽장식까지 수공예품과 카펫으로 장식해 놓아 잠시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타일에, 조각에... 레스토랑을 온통 페르시아 스타일로 꾸몄다.


평상엔 술탄들이 앉았을 법한 보료가 깔려 있었지만, 신발 벗기 성가셔서 그냥 테이블로...!!


레스토랑을 장식하고 있는 이란 소품들


어떻게 먹는 건지 몰라 식당을 서성거리고 있으니 다행히 영어를 매우 잘하는 오너가 직접 나와 설명을 해준다. 이 식당은 이란 전통음식 '디지(Dizi)'라는 메뉴 딱 한 가지이고, 나머지는 뷔페처럼 마음껏 가져다 먹는 방식이라고 한다. 디지가 뭔가 당최 모르겠다. 이름은 또 왜 이런 건데...?디지게 맛있는 건가...?


레스토랑 사장이 일단 저기에 있는 반찬(?)을 떠 오라고 한다. 먹고 싶은 대로 마음껏 담으라고도 한다. 그런데... 뭐가 뭔지 모르겠어서 또 설명을 부탁한다. 결국 추천받은 대로 여섯 가지 사이드 메뉴를 가져온다.


여기는 반찬(?) 같은 찬 음식 코너로 샐러드, 절임, 소스, 가지볶음, 이란 고추 같은걸 뷔페식으로 가져다 먹는 거란다.


추천을 받아 가져온 여섯 가지 사이드 메뉴


추천받은 대로 가져오니 대략 저런 모습이다. 목록은 다음과 같다.

오이&토마토 샐러드 : 일반적인 이란식 샐러드

가지볶음 : 향신료를 잔뜩 넣고 국물 있게 볶은 건데 짭조름하니 맛있음

마늘장아찌 : 아삭거리지 않고 좀 무른 데다 엄청나게 짜서 나는 별로

요구르트 소스 : 여기도 튀르키예처럼 요구르트에 딜이 잔뜩 들어감

이란 고추 : 병아리 방귀만큼 미세하게 매운데 그래서 오히려 이 매운맛이 한국인인 나에겐 위로가 됨

생강 뭐시깽이 쨈 : 식후에 먹는 거래는데 생강맛만 나고 뭔 맛인지 당최 모르겠음

일단 온갖 향신료 도가니다. 나는 향신료 덕후이고 나름 향신료 고렙이라고 자부하는데, 나조차도 좀 힘든 반찬이 있다. ㅠㅠ


반찬을 가져오니 빵과 디지(Dizi)와 방망이, 주걱 등 온갖 요상한 도구들이 같이 서빙된다.


뭐에다 쓰는 물건이고? 방망이와 주걱 등 온갖 연장들이 함께 나온다.


디지(Dizi)의 원래 이름은 아브구슈트(Abgoosht)로 일종의 양고기 스튜다. 고대 페르시아에서 기원한 음식이라고 한다. 고대 페르시아라면 당시 이 지역을 제패하던 거대 제국이었으니 당연히 주변 국가에까지 음식문화가 전파되었을 것이고, 그래서 디지의 설명을 듣자마자 아제르바이잔에서 먹었던 '피티(Piti)'가 생각난다. 비슷하게 항아리 고기 스튜와 연장들이 서빙된다.


'디지'는 이란 국민 음식 중에 하나로 양고기를 병아리콩, 흰 강낭콩, 양파, 감자, 토마토, 건라임 등과 함께 '디지(Dizi)'라는 토기에 푹 삶아 낸 음식이다. 그러니까 디지는 그냥 냄비 혹은 조리도구를 말하는 음식인 거다. 여기에 온갖 향신료를 첨가한다. 계피나 강황가루, 후추, 고춧가루 등을 쓰기도 한단다.


연장들이 함께 딸려온 이유는 디지 그릇 안에 있는 국물을 따라내고, 건더기를 따로 으깨서 먹는 방식 때문이다. 나는 '저 연장으로 나를 때리고 돈을 뺏어가면 어떡하나' 잠시 이상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지하 식당이었던 데다 좀 어두워 사진이 이상하게 나왔지만, 토기 항아리 안에 야채와 양고기가 담겨 있다.


반찬들은 향신료 도가니라 확실히 호불호가 갈리는 상황이고, 으깬 디지는 꽤 맛있다. 고기와 야채를 푹 고았으니 식감도 보들보들하다. 사정없이 으깨진 디지를 그냥 떠먹고, 헝겊 같이 생긴 빵에 찍어먹거나 말아먹기도 하고, 따로 담아둔 디지 국물도 홀짝여본다.

아랍에미리트 음식은 좀 짜서 먹기가 힘든 적이 많았는데, 이란은 오히려 간이 슴슴해서 나 같은 경우는 소금을 쳐야 한다. 그래서 많이 먹는 듯하다. 나도 모르게 대식가가 되어 간다.


국물을 따라내고 항아리 안에 있는 것들을 꺼내서 방망이로 으깬다. 나를 때리는 도구가 아니었구나.. 다행.


함께 서빙된 음료는 '둑(Duk)' 요구르트를 물과 민트 등을 섞어 만든 음료다. 튀르키예의 '아이란'을 떠올리면 된다. 그런데 이 집 둑은 발효를 시키나 보다. 청량하지 않고 시큼한 막걸리 맛이 나서 이 음료는 슬그머니 옆쪽으로 밀어둔다.


사실 으깬 디지의 비주얼은 좀 개죽 같다. 사진을 올리면서도 좀 민망하다. 하지만 정말 맛있다. 게다가 이 식당은 하마단에서 손꼽히는 디지 맛집이라고 한다. 내가 좀 늦게 도착해서 그렇지 주말 점심께에는 1~2시간씩 기다리는 게 보통이라고 한다. 가격도 참 착하다. 한 사람당 4달러 정도(당시 환율).


맛있게 다 먹고 나니 차이까지 디저트로 제공된다. 완벽한 풀코스다. 이란에 오니 식욕이 팔팔하게 살아나, 3개월 중국여행 때처럼 항상 배부르게 다니는 것 같다.


마무리는 깔끔한 차이. 컵 속에 담긴 건 과자가 아니라 막대 설탕이다. 이란은 차이에 엄청난 양의 설탕을 넣어 먹는 게 일반적이다.


맛도 있었지만 문 닫을 시간까지 내내 이어진 수다로 즐거웠던 이란 전통 만찬


레스토랑 사장은 내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먹는 방법을 알려주고, 이란의 음식문화까지 섬세한 설명을 뱉어낸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문 닫을 시간을 넘기고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로 이어진다. 내 여행 이야기, 사장이 다녔던 나라들의 이야기, 한국 음식 이야기도 하고, 이란 정부 욕도 좀 한다.


학문병이 도져 틈만 나면 나는 이렇게 깊은 수다를 떤다. 살아가는 문화이야기를, 시시콜콜해 보일지언정 대화에 숨겨진 엄청난 뉘앙스를, 그들의 생각을 나누는 즐거움을 잘 알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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