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 덕후의 중국 누들 먹부림 여행기, 중면총(中麵總)
자쟝멘(炸酱面, 작장면)은 중국 산둥(山东) 지방에서 태어난 대표 면 요리로, 베이징을 포함해 중국 북부에서 사랑받는 국민 국수 중 하나다. ‘작(炸)’은 ‘튀긴’ 또는 ‘볶은’을, ‘장(酱)’은 ‘소스’를 의미하니까, 이름부터 레알 심플하고 직관적이다. 말 그대로 ‘장으로 볶은 소스 국수’다. 중국의 요리 이름은 요리 방법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얘도 그렇다. 참 중국스럽다. 자쟝멘의 기원에는 전설 같은 썰이 많이 전해진다. 16세기 만주의 누르하치가 군량으로 중국식 된장을 물에 풀어 채소와 먹던 습관에서 유래했다는 썰, 서태후가 시안에서 먹어보고 감탄해서 베이징으로 들여왔다는 썰 등등... 썰이라 어떻든 확실한 건, 자쟝멘은 산둥 지역에서 시작된 면 요리가 맞다는 거다.
레시피도 심플하면서 지역마다 개성이 뿜뿜하다. 밀가루 면발 위에 볶은 황두장, 중국 된장, 첨면장 등등의 소스를 얹고, 고기와 파, 마늘로 풍미를 올린다. 그 위에는 오이, 콩나물, 무, 고수, 숙주, 삶은 달걀 등 취향껏 토핑을 쌓는다. 만드는 방법도 한국 짜장면과 비슷하다. 베이징식은 깍둑썬 돼지고기와 오이채가 기본이고, 산둥식은 첨면장만 사용하며, 쓰촨식은 고추기름과 두반장을 써 매콤하게 변형되기도 했다.
산둥 지역에서 시작한 자쟝멘은 중국에서 ‘중국 10대 국수’에 꼽힐 만큼 대중적이며, 저렴하고 간편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면요리라, 중국에서도 한국에서처럼 대표 서민 음식으로 꼽힌다. 그런데 이 면이 어떤 이유로 한국까지 와서 한국인들의 소울푸드가 됐을까?
19세기 말, 산둥에서 건너온 화교 노동자들이 인천항 부두의 인부로 일하면서 짜장면은 시작되었다. 간단히 끼니를 때우기 위해 춘장으로 비빔국수를 만들어 먹던 게 바로 짜장면의 시작이다. 한국에서 짜장면을 처음 팔던 곳은 잘 알려져 있는 대로 인천 차이나타운의 ‘공화춘’이다. 공화춘은 산둥 출신의 화교 우회광(于會光)이라는 사람이 1905년 인천에 차린 중화 요릿집으로, 처음엔 산둥식 자쟝멘 레시피 그대로를 사용했다. 그러다 한국인 입맛을 저격하도록 달달하고 윤기 있게 변신시켰다. ‘짜장면’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탄생했는데, 이후 동흥루, 중화루 등 많은 중국집에서도 짜장면을 팔기 시작하며 짜장면은 대중화되었다. 옛 공화춘은 현재 인천시에서 매입해 ‘짜장면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짜장면의 역사를 알리는 상징적인 장소다.
한국의 처음 짜장면은 짠맛과 구수함이 강한 중국의 자쟝멘 스타일이었지만, 1948년 ‘왕송산’이라는 화교가 설립한 ‘용화장유회사’가 ‘사자표 춘장’을 만들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이 춘장은 중국식 된장인 첨면장(甛麵醬)에 캐러멜색소, MSG 등을 넣어 단맛과 검은색을 증폭시켰다. 원조 격인 산둥식 자쟝멘에는 파, 마늘, 돼지기름이 많이 쓰이지만, 한국 짜장면은 양파, 감자, 돼지고기 등 싸고 구하기 쉬운 재료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특히 1960년대, 양파의 대량생산으로 단맛은 더욱 증폭되었고, 대량으로 풀린 미국 원조 밀가루로 쫄깃한 면발까지 완성되면서, 짜장면은 본격적으로 한국식으로 진화했다.
소스는 색이 더 까매지고 달콤해졌으며, 감칠맛이 강해졌다. 거기에 전분을 넣어 걸쭉하게 변하고, 반드르르한 윤기까지 흐르게 된다. 짜고 뻑뻑한 자쟝멘에서, 부드럽고 풍부하고 촉촉한, 우리가 아는 그 짜장면으로 패치된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경제난과 분식 장려 운동을 거쳐, 짜장면은 ‘특별한 날 외식 1등 메뉴’로 등극하게 된다. 옛날에는 졸업식이나 입학식 땐 무조건 짜장면을 먹었다. 단무지, 양파, 춘장 소스까지 곁들여져 한국 스타일 짜장면의 완성 세트가 된다. 그 뒤 간짜장, 삼선짜장, 유니짜장 등으로 무한 변신하고, 인스턴트 짜장라면까지 대량 생산되면서 짜장면은 이제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국민 음식이 되었다. 이제 짜장면은 ‘중국 음식’이 아니라 ‘한국식 중화요리’로 당당히 독립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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