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 시내를 하루 돌아다녀보니 확실히 오만이나 UAE보다 이란 여성들의 대한 위치가 생각보다 높은 것 같다. 전공이 문화인류학 중에서도 페르시아 지역학이라, 이란에서 여성들의 위상이 알려진 것보다 높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더 그런 듯하다. 이란은 여자들을 마구 억압하고 팔아먹고 그런 나라가 아니다.
이란은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여성들에게 차도르(히잡)을 법적으로 강요하는 나라다. 신정 정치가 기반이 된 나라이기 때문에 종교적으로 히잡 착용을 의무화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차도르'로 알려진 길고 치렁치렁한 까만 천 = 테러리스트란 이미지를 지울 수 없나 보다. 내가 이란에 간다고 하면 다들 무사히 살아 돌아오라고 한다. 벌써 세 번째 이란행인데도 불구하고.
테헤란 길거리의 흔한 풍경, 테헤란은 검고 긴 차도르 여성들과 아슬아슬하게 스카프를 머리에 걸친 여성들이 공존하는 곳
확실한 것은 차도르를 쓰게 할지언정 이란 사회 분위기는 여성들을 막 팔아먹고, 교육을 못 받게 하고, 억압과 착취 환경에 있지 않다. 실제로는 대한민국보다 여성 정치 참정률도 높고, 여성들에게 불리한 정책이 하나라도 나오면 여성들이 대대적으로 시위하는 게 다반사인 사회다.
물론 아직도 여성들에 대한 억압이 심하긴 하다. 2022년 9월 촉발된 대규모 이란 시위는 히잡을 쓰지 않은 스물두 살의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경찰에 체포된 이후 의문사 한 사건에서 촉발되었다. 이후 여성의 히잡 의무 착용에 대한 반감이 시위로 이어졌고, 경제난과 식량난, 에너지난에 대한 반정부 분위기와시너지를 내며 전 국민 대규모 시위로 번진 것이다.
2022년 이란의 반정부 대규모 시위, 사진출처 : 틴보그 https://www.teenvogue.com/story/iran-protests-teen-deaths-oct
이 촉발은 이란 여성들의 사회적 위치가 바닥은 치지 않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프가니스탄의 무시무시한 여성 탄압이 대규모 시위로 이어진 적이 있었나? 강남역에서의 묻지마 살해사건은 어디까지 목소리가 퍼졌을까? 우리는, 아프간의 그들은 얼만큼 여성 악압과 차별에 동감하거나 동조하고 있을까? 등등에 역질문을 해보면 조금은 알 것 같다.
신정일치라는 제도 때문에 히잡의 의무적 착용과 같은 여성 억압이 짙은 사회이긴 하지만, 그래서 이거 하나만으로도 여성 억압이라는 아젠다로 묶기도 충분하지만, 이란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란 여성들도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과 같이 바닥을 치는 위치라고 생각한다. 검은 차도르가 이란 여성들 정체성의 전부라고 여긴다. 그러나 이란 여성들은 까만 차도르와 히잡 안에만 갇혀있지 않다. 이란 여성들에 대한 편견과 왜곡에 반격을 시도하겠다.
이번 말고 직전에 이란에 온 게 2013년이었다. 그 와중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듯하다.
길거리에서 연인들은 손을 잡고 다니고, 메트로 내에서 스킨십도 한다. 뺨을 서로 부비부비 하거나 가벼운 입맞춤을 하는 연인들도 많이 봤다. 실제로 이란은 혼전동거라는 개념의 '시게'도 만연하다.'시게'는 최근에 생긴 문화가 아니다.
테헤란 시내 쇼핑몰의 여성들. 컬러풀한 스카프와 패셔너블한 옷을 입는다.
메트로엔 여성전용칸이 있다. 여성 전용 칸엔 여성들과 어린 남자아이만 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칸엔 남성들과 여성들 모두 탈 수 있다. 가족과 연인은 이 칸에 탄다. 메트로 안에서 서로 뺨을 부빈다. 나도 혼자 남성쪽 칸에 타본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여성 전용 칸은 따로 있지만, 메트로 내 잡상인 남성들은 남성칸 여성칸을 마구 넘나드는 상황.뭐라고 하지도 않고, 저쪽에서 건너온 남자들에게 아무렇지도않게 물건을 사는 일상다반사.
이번 여행에서 내가 제일 놀란 건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 혼슉이 가능하다는 거다.(이건 비공식이라 약간의 고의적인 오타를 내겠다.) 남녀가 유별한데...? 이란에서 도미토리 혼슉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물론 묵었던 게스트하우스가 외국인들에게 유명한 곳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테헤란에서 혼슉이라니...!!!이틑날 이후로도 이런 상황은 간혹 있었다.
4인실 도미토리. 남녀 혼슉으로 사용. 내 옆 베드엔 자전거 여행 중인 스위스 남자가 묵었다.
이란에서 여성들은 내국인, 외국인을 불문하고 머리 스카프를 법적으로 꼭 써야 하고 공식적으론 반소매를 입을 수 없다. (남성들이 반바지를 안입는 것도 참고삼아 적어두겠다) 하지만 테헤란의 경우 히잡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여성들의 히잡 스타일은 정말 기괴하다. 이마와 머리 앞쪽 머리카락은 물론 정수리 부근까지 노출하는 건 흔한 일이다. 그냥 살짝 걸친 수준이다.수많은 이슬람 국가들을 가봤지만, 중앙아시아를 제외하고는 거의 노출 수준이 탑급인 것 같다.
옷도 알록달록 컬러풀한 색이다. 스키니를 입은 여성들도 있다. 물론 까만 차도르를 모조리 칭칭 감은 여성들도 많지만, 여성들이 그러고 다니는 걸 보니, 어쩌면 테헤란에 한정할 수도 있겠지만, 이란에 급진적으로 변화가 불고 있다는 건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테헤란 바하레스탄 메트로 개찰구. 스키니에 야상을 걸친 이란 여성이 눈에 띈다.
시골로 갈수록, 이슬람 색채가 짙은 지역일수록 까만 차도르는 많아진다. 하지만 테헤란의 여성들은 확실히 옷차림도 가볍고 몸짓도 2013년 보다는 더 자유로운 느낌이다. 강제적인 것과 그렇지 않고의 기제를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인류학자인 나의 인식을 깨버리는 파격적 장면은 잠 쉽게 목격된다.
오만에서는 눈만 내놓고 전신을 몽땅 가린 긴 아바야 여성들 뿐이다. 이 아바야는 치맛자락이 땅에 질질 끌린다. 하지만 오만은 부드러운' 이바디 무슬림 국가'이기에 외국인 여성들에게는 매우 관대하여 나는 히잡을 쓰지 않고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그래도 좀 답답했다. 무언가 자유롭지 않다는 느낌 때문에 2주 여행 계획을 대폭 줄여, 나는 일주일만에 오만을 떠나버렸다.
오만에서의 이야기를 나중에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살랄라에서 무스카트로 오는 12시간에 버스 안에서 아기를 안은 전신 차도르의 여성과 그의 가족으로 추정되는 (남편인지, 친정 아버지인지 모르겠는) 상황의 미장센을 보고, 갑자기 모든 것이 짜증이 나서 나는 서둘러 Oman을 떠났었다.
오만 무스카트의 여성 부티크. 까만색의 치렁치렁한 아바야 일색. 씨스루 아바야는 가장 겉에 입는 악세서리 같은 개념이다. 저걸 입으면 오만에서 날라리 소리를 들을지도??
나는 사실 이란에 자유로운 바람이 불긴 원한다. 이란 여성들이 더 이상 히잡을 쓰지 않고 그들의 아름답고 풍성한 머릿결을 바람에 흩날리게 하길 원한다. 더 많은 목소리와 몸짓을 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이란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이유 중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편견을 조금이나마 깼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다. 한 달 동안의 이란 방랑기를 살금살금 풀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