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짜리 이란비자를 받고 이란을 어떻게 헤집고 다닐까 공항에서 잠시 생각하다가 곧 잊어버리고 만다. 나는 계획 없이 여행하는 대책 없는 방랑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처음 이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인천-무스카트(오만)행 편도 비행기표 달랑 하나만 있었을 뿐, 테헤란까지 올 줄은 몰랐다. 아부다비(UAE)에서 낙타를 타고 놀다가 갑자기 이란에 가고 싶어져 테헤란 비행기표를 질렀다. 영화 <기생충>에선 이런 말이 나온다.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나에게는 계획이 없는 게 계획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움직이는 게 내 계획이므로.
(스포일링을 좀 하면, 나중엔 이란의 제주도라는 케숨(Qushm) 섬까지 다녀왔다. 그 이후론 아제르바이잔과 튀르키예를 거쳐 요르단까지 흘러가게 됐다.)
테헤란에 온 게 벌써 세 번째다. 그래서 이번엔 테헤란은 경유만 하고, 그동안 못 가보던 다른 도시로 여정을 확장하고 싶다. 그런데, 첫날 정찰 차원에서 테헤란 시내를 어슬렁 거리다가 테헤란에 또 푹 빠져 골목골목을 하염없이 쏘다닌다. 결국 게스트하우스 1박을 늘린다.
두바이에 있던 어제까진 감기기운으로 골골댔는데, 이란에 오니 감기기운도 뚝 떨어진 데다 마음이 참 편하고 좋다. 이쪽 동네 공부를 오래 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편하고 익숙하고 애잔하고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혼합되어 있다. 나는 전생에 이쪽 동네와 연관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오만 무스카트는 10월인데도 40도를 육박했다. 너무 더워서 현지 사람들도 낮에는 저글링 버로우를 하고 있다가 해가 져서야 버로우를 풀고 나다닌다. 테헤란은 가을날씨다. 비까지 살짝 와서 약간 썰렁하지만, 하염없이 쏘다니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다.
이란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뜨거운 사막만 펼쳐지는 연중 더운 날씨를 연상한다. 하지만 이란은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다. 물론 한여름은 참 뜨겁다. 사막은 50도가 넘을 때도 많다. 더운 게 아니라 바삭바삭하게 구워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뜨겁고 건조하다. 페르세폴리스가 있는 시라즈(Shiraz) 같은 지역에선 한 여름, 활주로 과열로 인하여 비행기 바퀴가 터질 수도 있어 비행기 딜레이가 흔한 일이다. 하지만 겨울에는 눈도 펑펑 온다. 테헤란 북쪽의 토찰산(Mt. Tochal)에는 꽤 규모가 큰 스키장도 있다. 10월은 가을이기에 테헤란 사람들은 경량 패딩을 입고 있다.
아무 계획이 없이 떠나온 이유로, 가져온 옷이 모두 여름옷뿐이다. 이란에서는 내외국인 모두, 여성들이 반소매 착용이 도덕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반소매에 청자켓만 걸치고 나갔더니 좀 추워, 길거리에서 스웨터를 하나 사입고 다시 어슬렁거리기를 시작.
게스트하우스 근처 Baharestan Square에서 아무 데나 들어간 패스트푸드점. 여느 소시지처럼 보이지만 돼지고기가 아니라 모두 소, 닭, 양고기 베이스다.
크기가 30cm 정도 되는데 180,000리얄(1500원?). 서브웨* 홀브레드 샌드위치보다 길고 빵빵하고 맛도 더 좋다.
지나가다 빵집을 만난다. 화덕에서 갓구우면 정말 맛있다. 이란도 밀이 좋아 튀르키예처럼 빵이 맛있는 편.
Masoudieh Palace 옆문. 이란의 흔한 아라베스크 무늬. 그린 것이 아니라 조각 타일을 모자이크로 맞춰 놓았다.
Masoudieh Palace. 복원 중이라 정비도 안되고 못 들어가는 곳도 많지만, 분위기가 있다. 이란의 거의 모든 궁전은 멋진 정원과 중앙 분수를 내는 건축양식이다.
Masoudieh Palace는 유명하지 않은 궁전인데도 세심하게 신경 써서 조각을 새겼다.
좀 춥기도 하고 맛있는 차이가 마시고 싶어 후미진 골목에 있는 허름한 찻집에 쑥 들어간다. 계산하려니까 돈을 안 받으신다. 차이를 마시니 훈훈해져서 또 힘내서 쏘다닌다.
유리박물관 입구. 전에 왔었지만 걷다 보니 가깝고, 페르시아의 끝내주는 유리 공예가 다시 보고 싶어져서 재방문.
1층 유리 유물관
유리박물관은 유물도 좋지만, 건물과 인테리어가 정말 예쁘다. 2층 세라믹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너무 예뻐서 예쁜 드레스 질질 끌며 올라가고 싶어진다.
유리박물관은 레자 샤(Reza Shah) 시절에 공관으로 쓰였던 건물이라 꽤 럭셔리.
2000년 전 유리가 어떻게 이렇게 완벽할 수 있을까??
페르시아는 고대부터 뛰어난 유리 제작 기술로 유명했다. 비교적 후반인 12세기 유리라 저 정도쯤이다. 지금 봐도 디자인과 색깔이 완벽하다.
13세기 유리병. 신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봉수병(왼쪽 상단)과 같은 형태. 한국에서 출토된 고대 유리 유물들은 이미 페르시아 지역으로부터 건너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 세계에서 이란 석류를 가장 상급으로 쳐준다. 석류 제철이 오고 있어 길거리 생석류주스 가게가 즐비하다. 물 한 방울 안 섞고 스퀴져로 그냥 쭉 짜서 순도 100%의 고농도.
길에서 흔히 만나는 작은 동네 모스크. 전형적인 페르시아 스타일. 이 스타일은 고대 페르시아 영토 지역에 영향을 주어 비슷한 건축양식이 전 세계에 많다.
식빵 굽고 있는 테헤란 고양이들.
지도도 안 보고 무작정 걷다가 찾은 레자 그레이트 바자르. 이런 곳에선 길을 잃어도 좋다,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걸을 뿐.
페르시아 전문가 '온군'이 이란 당근주스가 맛있대서 사 먹어 봤는데... 그냥 당근맛이잖니!! 이거 다 먹고 배불러서 정작 석류주스를 못 사 먹었다.
바자르 기념품 가게. 모두 핸드메이드인데 가격이 너무 착하다. 돈을 남겨서 테헤란에 다시 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
그랜드바자르 입구. 이런 올드한 시장통을 너무 좋아라 한다.♡
뙇! 들어가면 이런 돛대기 시장 모습이다. 옛날 바자르 건물을 그냥 사용하는 중이라 천장이 저런 양식.
한국 수세미가 이란 시장에까지 진출했다. 이란에서도 한류는 오래전부터 꽤 뜨거운 편.
구리 가게부터 도자기, 유리, 패브릭 등 온갖 걸 다 판다. 우리나라 남대문시장 느낌.
향신료와 차 가게. 이란 향신료는 품질이 좋고, 희귀한 향신료들이 많은 데다가 저렴하기까지 하다. 집으로 돌아올 때 배낭의 반이 향료와 향신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