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덟 살의 퇴사,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

퇴사까지 걸린 시간 1년

by hongdan

퇴사까지 1년이 걸렸다. 나와 근 1년을 같이 일하고 나보다 먼저 퇴사했던 동료를 만나서 그 회사에 대한, 우리의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면 그 친구도 나도 인정하는 사실이 있다. 정말 더럽게 힘들었고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들은 그 회사에 있을 때 일어났다. 그러면 과연 나에게 힘든 일이 많았기 때문에 덩달아 회사를 힘들게 다녔다고 기억하는 게 아니냐 한다면 그건 정말로 아니다.


일단은 자궁근종으로 인한 개복수술을 하며 신체적으로 힘들었고 곧이어 사랑니를 뽑아 얼굴 절반이 부은 상태로 회사를 다녔었다. 쌍커풀 수술을 했는데 휴가 일정이 틀어져 수술 이틀 후 실밥이 덕지덕지 붙은 눈에 선글라스를 쓴 채 이틀을 출근해서 일을 했다. 임신을 했다가 유산을 하고서도 쉬는 날 없이 바로 출근해서 회사에서 제일 먼저 한 말이 '죄송합니다'였다. 고객을 상담하는 업무다 보니 내 상황이야 얼마나 거지 같든 간에 쓴소리 던지려 전화를 한 고객들의 화를 달래고 죄송하다 비는 게 내 일이었다. 전 회사에 대해서 말을 꺼내자면 할 말이 넘쳐날 지경이다.


그러니 나는 안 되겠다, 퇴사를 해야겠다 마음을 먹었는데 퇴사조차 내 맘대로 되지 않아 1년이 넘게 걸렸다. 퇴사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에 대해서 나도 어느 정도는 동의를 했던 차였다. 처음부터 날짜를 정해놓지 않고 충분한 인수인계를 하고 가겠다 하기도 했었고 실제로 하루 왔다가 가는 사람, 출근하기로 해놓고 나오지 않은 사람, 면접조차 나오지 않고 약속을 펑크 내는 사람 등. 한 명 면접을 보고 출근하라 해서 인수인계를 시작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2-3주라고 치면 그런 사람들로 인해 허비한 시간이 반년이었다. 고객상담을 하는 일이니 마땅한 사람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종내는 신입을 구하려고도 했는데 끝끝내 내가 퇴사하는 날까지 사람은 구해지지 않았다.


퇴사까지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그냥 나와'였다. 보통은 퇴사 이야기를 꺼내고 2-3개월이 지나고 나면 회사에 대한 예의는 충분히 지켰으니 이쯤 되면 그냥 나오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럴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 회사는 지인을 통해서 지인과 함께 다니던 회사였고 나는 회사 내 사람들을 충분히 좋아했다. 사람 간의 트러블이 없는 회사였다. 각자의 일로 이미 충분히 벅차고 힘든 사람들에게 무책임하게 내 일을 떠넘기고 싶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사람을 구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시간을 들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나도 퇴사하는 날까지는 내 역할을 충실히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다만, 그러기에 1년은 지나치게 긴 시간이었고 그 사이의 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도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어서 끝내는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했다. 이해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걸 버티기에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없는 상태였다. 남편의 '빨리 나와'라는 말은 사무실에 출근하는 것보다 더 듣기 싫었고 그 당연한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싫었다. 남을 생각하다 내가 죽을 판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결국 정신과 상담과 함께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았고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회사에 퇴사 일자를 확정해놓고 싶다고 제안을 했다. 날짜는 정해졌고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을 받고 신경안정제를 먹으면서야 겨우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던 퇴사 날은 어느 순간 코앞에 성큼 다가와있었고 퇴사 직전에 정신과 상담을 하던 날 선생님은 드디어 끝이라며 축하해주셨다. 그동안은 스트레스로 임신도 안됐을 수 있으니 이제 다시 준비해보라고. 그랬다. 그런 시간들 사이에서 아무리 임신을 계획한다 한들 될 리 없었다. 빨리 다시 임신을 해서 그걸 핑계로 회사를 퇴사하고 싶었던 조급함도 분명히 있었다. 남편은 도피하는 식으로 임신을 하는 건 옳지 않다고 했고 퇴사한 다음에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준비를 하자고 오랜 시간 나를 설득하고 납득시켜왔었다. 퇴사를 일주일 앞뒀던 때부터는 매일 먹던 약도 이틀, 삼일에 한번 복용으로 바꿨다. 원하면 언제든지 약을 끊어도 된다고 했고 임신을 준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했다.


남편은 나보다 2개월 앞서 퇴사했다. 나만 못했지 남들은 잘들 하는 퇴사더라. 사직서를 내놓고 겨우 1개월 만에 수리되는 퇴사라니. 나는 1년 동안 대체 뭘 한 거지?


우리는 여행을 계획했다. 퇴사를 못해서 생긴 건 우울증 뿐 아니라 강박증, 수면장애, 약물의존증까지 나를 좀먹어가는 자잘하고 묵직한, 정말 사람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게 1도 없는 것들이었다. 과연 퇴사를 하면 모든 게 괜찮아지겠느냐, 정신병이라는 건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니 다 털고 잠시 떠나자는 게 남편의 의견이었다.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치유나 힐링의 목적 이외에도 회사의 문의전화를 차단하려는 남편의 큰 그림이 었었다. 마지막까지 사람을 구하지 못했으니 도와달라며 연락이 오지 않을까, 업무에 대해 물어보려고 전화가 오지 않을까 등등 퇴사 이후의 상황까지 눈앞에 그려졌다던 남편은 이참에 해외로 장기간 떠나서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환경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당장 퇴사만 눈앞에 두고 있던 나는 퇴사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던 멍청이였다.


그리고 대망의 퇴사일. 나는 퇴사하는 날까지 야근이었고 남편은 바리바리 싸놓은 3년간의 내 큰 짐들과 나를 데리러 회사 앞까지 차를 끌고 왔다. 차에 올라타 내뱉은 첫마디가 '끝났다!!!!!!'였다. 드디어 끝. 길고 긴 지옥 같은 시간의 끝. 앞으로 재취업의 문제나 가계생활의 문제가 남아있지만 그건 일단 그 이후의 일이고 당장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여행, 그래 우리는 여행을 떠나야지. 재 충전 후 다시 시작해야지.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퇴사 후 해외여행, 퇴직금 탈탈 털어 떠나는 한 달간의 유럽여행.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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