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내 글을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장녀와 차남의 주제로 글을 쓰란다

by hongdan

나는 원래 판타지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다. 현실도피 격으로 판타지 세상 속에 나 같은 주인공을 풀어놓고 원 없이 세상을 누비는 이야기를 썼는데 지난 회사를 다니면서 간간히 쓰던 소설마저 뚝 끊겨버렸다. 몸이 힘들고 정신적으로 지치니 조금이라도 시간이 날 때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퇴사하면 써야지, 퇴사하면 이런 거 저런 거 다시 써야지 했었던 꿈들은 이렇게 브런치에 내 이야기를 늘어놓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몇 년 전에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가 대차게 쓴맛을 한 번 봤던 이후로 나는 소설이나 쓰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작가다 공모전에 도전해보고 싶어 다시 신청했다. 뜻밖에도 두 번 만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그 메일을 받고서 하루 종일 흐뭇해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엄청 흐뭇해 보인다'라고 했다. 그럼, 흐뭇하지. 좋지. 아직 죽지 않았다는 뜻 아닌가?


브런치에서 쓰고 싶었던 이야기의 가장 큰 틀은 결혼이었다. 판타지 소재를 제외하고 나니 남는 소재였다.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니 당연히 남편의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고, 얼마 전 도대체 뭘 쓰냐며 남편이 화면을 들여다봤을 때 A형 남자 B형 여자에 대해서 쓰고 있을 때였다.

"나야?? 내 이야기야?? 내가 주접떠는 이야기야??"라며 지대한 관심을 갖더니 내가 글을 쓰지 않을 때는 어떤 주접을 떨어줘야 소재거리가 될까 하며 설레발을 떨었다. 어... 비슷한데 그건 아니야.


결혼 전이든 후든 두 사람이 만나서 사는데 가장 중요한 건 성격의 차이다. 남편과 나는 사실 성격으로 치면 극과 극을 달린다 할 수 있었다. 앞서 썼던 글에서처럼 남편은 A형 서울남자에 나는 B형 전라도 여자다. 그리고 나는 1남 2녀의 장녀, 남편은 아들 둘 집의 차남이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굳이 전편을 혈액형 편 따로, 지역 편 따로 나눌 필요가 있었나 싶다. 조금만 생각하고 신중히 쓸걸.


어쨌든 B형에 장녀에 전라도 사람인 나는 20대 때까지만 해도 지금 말로 핵인싸였고 상당히 활발한 인간이었으며 성격이 드세고 고집이 센 편이었다. 동생이 아래로 둘이나 있으니 심부름을 시키고 부려먹는 것이 익숙한 나와 다르게 A형에 서울을 벗어난 적이 없고 차남인 남편은 다소 내성적이고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 아웃사이더 형이다. 아마 20대 때 사회생활을 하며 만났었다면 우리는 연애를 시작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교복을 입고 다 똑같은 생활을 하는 울타리 속에 있었으니 첫사랑이었지.


이렇게 타입이 다른데도 어떻게 연애를 하고 어떻게 결혼을 하고 어떻게 10년을 사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우리의 조합만 보면 천상 남자 등골을 후려치는 못된 심술쟁이 마누라에 기 한번 못 펴고 눈치나 보면서 사는 소심한 남편으로 그려질 테지만 사실 사람의 성격은 단순하게 혈액형이나 출신 따위가 전부는 아닌 좀 더 복잡한 뭔가 있다. 그렇게 달라도 같이 있으면 편안한 상태가 유지될 수 있다던가 하는 그런 것들.


이를테면 대화가 끊어지지 않게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나, 둘 다 게임을 좋아해서 같은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 좋아하는 영화 취향이 비슷해서 영화를 고를 때 어렵지 않고 함께 여행을 가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아 불편함이 덜하다는 점들. 성격이 다르다고 해서 좋아하는 게 다른 건 아니라는 거다.


포켓밖에 몰랐던 나는 남편에게 4구를 배워 노래방 말고도 데이트할 곳이 생겼고 스노보드를 배워 겨울이 되면 스키장으로도 놀러 다녔다. 집에 컴퓨터 두대를 나란히 놓고 한때는 디아블로를, 또 한때는 와우 클래식을 밤새 즐겼고 넷플릭스 계정으로 SF 드라마를 두세 편씩 보고 잠드는 취미도 생겼다. 한 가지 주제를 놓고 서로 반박하며 토론하는 것도 즐겁다. 다행이랄지 정치 취향은 같다. 최근에 결혼한 지인들이나 연애를 하고 있는 지인들과 만날 때마다 나오는 성격차이에 대한 나의 견해는 대충 이렇다. 같이 노는데 성격이 다른 건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 결국 사람은 살다 보면 앞에 닥쳐있는 문제를 치워내며 살아야 하는데 그걸 니 방식으로 치우건 내 방식으로 치우건 결론은 치우기만 하면 된다는 것 아닌가?


남편이 지금 어떤 글을 쓰고 있는지 묻기에 간략하게 설명해줬다. 크게는 결혼, 나의 경험과 앞으로의 계획, 우리의 2세에 대한 꿈 등등.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나 너에 대한 이야기라고. 지금도 앞에 마주 앉아 함께 커피를 마시며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남편이 묻는다.

"내 덕분에 좋은 글발이 떠올랐지??"

아.... 그 뭐랄까, 비슷한데 정말 그건 아니야.... :)


가급적 내 글은 남편에게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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