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ngdan May 15. 2020

짧았던 한 달의 꿈

괜찮아, 다시 가질 수 있어.

서른다섯, 이제 마음의 준비도 됐고 어느 정도 기반도 다져놨다. 둘이서 알콩달콩 사는 것도 이만하면 충분하니 이제 진짜 2세를 준비해볼까 싶었다.


친구에게 이직 제의를 받았다. 회사 업무 강도가 세지 않고 원래 하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도 모두 보장해줄 수 있다고. 임신을 계획하니 안 갈 이유가 없었다. 어느 금요일에 퇴사를 하고 주말 지나 바로 새 회사로 출근을 시작했다.


나는 새로 이직한 회사를 3년을 다녔다. 결과적으로 이직은 임신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최악의 선택이었다. 출산휴가도, 육아휴직도 모두 가능하고 심지어는 대표님 이하 모든 사원이 임신을 장려하고 임산부에 대한 배려가 넘친다. 다만 가장 큰 문제는 업무량과 업무 스트레스였다. 두세 시간은 기본적으로 야근이 따라붙었고 고객을 상대하는 업무다 보니 스트레스가 만만찮았다.


중간에 친정집에 금전적 문제가 있어 금전지원을 하는 바람에 임신을 조금만 더 미뤄야겠다 싶었을 때 결혼 초기에 발견했던 3센티짜리 자궁근종이 약 10센티가 되어 개복으로 제거를 해야 했고 무려 5일이나 휴가를 받을 수 있었지만 병원에서도 전화로 업무지원을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식이었다. 하루를 쉬기 위해 며칠을 업무 준비를 마쳐야 했고 어느 여름휴가에는 노트북을 들고 가서 짬짬이 일을 하고 쉬는 날에도 전화와 메시지는 계속 날아드는 일을 하고 있으니 과연 출산휴가가 무슨 의미이며 육아휴직이 가당키나 한가.


결국 2년 만에 퇴사를 결심했다. 인수인계를 충분히 하고 나가겠다 협의하고 약 3개월이 지났을 때 임신테스트기에 두줄이 떴다. 기쁜 마음에 산부인과를 달려가니 이제 막 아기집이 생긴 상태였고 2주 뒤에 오면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하루하루가 일 년 같던 2주였다. 그 길고 긴 2주간 커피도 줄이고 주변에선 무거운 것도 못 들게 하고 남편은 내가 먹고 싶다고 하는 메뉴에 대해선 일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에어컨 없이 평생을 사셨던 시부모님은 손자를 위해 에어컨을 구매해야겠다고 마음먹으셨단다.


그리고 2주 뒤, 초음파의 아기집은 처음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의사 선생님이 초음파로 보이는 아기집 상태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는데 어?? 싶었다. 베드에서 내려와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아서야 둘러둘러 설명해주시는 유산이라는 말에 그때부터 눈물이 터졌다.


꺼이꺼이 울면서 수납을 하고 병원 화장실에 들어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대성통곡을 하니 남편은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듣고 있기만 했다.


예정일은 그 해가 가기 전 겨울이었다. 그 예정일이었던 기간까지도 퇴사는 내 맘처럼 잘 되지 않았고 그때쯤에는 우울증이 있어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했다.


예정일 그 언저리쯤의 계절에 반은 농담 삼아 '이때쯤이면 초단이를 볼 수 있었겠지'라는 말을 하거나 꼬물꼬물 한 아기를 보고 훌쩍이는 일이 다반사였다. 주변에선 흔하게 겪는 일이라고 했고 실제 내 주변과 남편 주변에도 초기 자연 유산을 경험한 경우가 많았다. 많은 위로를 받았다.


괜찮아, 아직 젊으니까 다시 가질 수 있어.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작가의 이전글 A형 남자, B형 여자. 그 환상의 조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