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과 난임 그 사이에서

1년 열두 번의 기회

by hongdan

브런치에는 임신이라는 키워드가 없었다. 글을 쓰자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키워드였는데 임신과 출산을 건너뛰고 바로 육아의 키워드만 있었다. 임신과 출산은 아마 단기간 잠깐 거쳐가는 선택형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내가 임신이라는 난제에 부딪히고 보니 과연 이 키워드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단순성밖에 없는 것인가 싶다.


제목이 다소 자극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내가 노산이고 난임인가는 잘 모르겠다. 물론 노산일 수는 있지만 아직 어느 곳에서도 난임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건 아니다. 아직 30대이고 아직 자연적으로 충분히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1년에 12번 찾아오는 기회를 몇 번 놓치고 나니 어쩌면 내 나이가, 혹은 환경이나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현실에 부딪혀 '그런가?' 하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얼마 전엔 처음으로 배란일 테스트기를 구매했다.


결혼 초부터 아이를 갖고 싶어 하던 아는 부부가 난임센터를 다니며 아직도 쓴웃음을 짓는 걸 보면 난임은 감히 내가 입에 담을 단어는 아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볼 수 없는 종류의 문제이지만 주변의 상황과 경험을 빗대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불과 1년 2개월 전 나는 병원에서 임신확인서를 발급받았었고 임산부 배지를 가방에 넣고 다니기도 했다. 다만 채 한 달이 안되어 고사난자로 유산을 했지만 어쨌든 가능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1년이 넘도록 그 이후에 원하던 대로 임신이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나는 내 나이를, 건강을, 환경을 생각 안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유산을 했을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해준 말이 있었다.

'흔한 일이야, 괜찮아. 다시 가질 수 있어.'

사실 확인도 안 되고 근거도 없는 흔한 위로지만 그 순간엔 그 위로밖에 기댈 데가 없었고, 따지고 보면 나도 누군가에게 동일한 말밖에 해줄 수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의 친구들 3명이 같은 경험을 했고 그들은 현재 하나 이상씩 아들딸을 낳아 육아에 힘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경험자인 그들도 남편에게 똑같은 위로를 해주고 있었다.


우습게도 처음에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씩 삭제되어가고 있었다. 기왕이면 딸이었으면 좋겠다거나 겨울에 태어나는 아이였으면 좋겠다거나 내 나이 마흔 이전에는 낳았으면 좋겠다거나 했던 생각들. 계획임신을 하면 그런 사소한 조건들은 내 마음대로 될 줄 알았는데 결혼 초 어른들이 해주던 조언들이 단순한 잔소리가 아님을 이제 깨닫는다. 나이를 먹으면 마음먹은 대로 생기지 않을 수 있다고. 20대에서 30대가 되었을 때도 나이를 먹었다는 실감이 없었고, 서른 중반을 넘어도 나는 몇 년 전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았는데 착실하게 신체 나이는 하나둘씩 늘어가고 있었나 보다.


'도전'이라는 주제로 공모전이 떴을 때 가장 당면한 주제였던 이 이야기가 맴돌았다. 겨우 나의 개인적인 주제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나만의 이야기는 아닌 주제이기도 하다. 함께 계속 도전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많은 고민과 아픔 속에서 같은 도전을 하고 있는 부부에게, 한 줄짜리 테스트기를 내밀면 나를 다정하게 안아주는 남편에게.

며칠 전 한 줄짜리 임신테스트기를 보고 남편과 함께 허허 웃으며 어디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올까 우리 운동을 좀 해볼까, 부풀었던 기대를 내려놓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한 달 중 4분의 1은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잠시 기대감을 가지고 살게 된다. 마음을 내려놓으라는데 내 맘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지나치게 낙담하지만 않는다면 이 정도 희망을 가지고 사는 건 괜찮은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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