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노인정에서 일찍 돌아오자 또 다른 현실적 문제가 생겼다. 낮에 하루 종일 낮잠을 자고 자정이 다되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새벽에는 잠을 안 주무시는 것이다. 이렇게 할머니가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면 나에게도 영향이 왔다. 밤늦게까지 자기소개서를 쓰고 나서 새벽 1-2시쯤 겨우 잠을 청하면 어김없이 2시 50분에 방문을 활짝 열고 날 깨웠다.
할머니 : 아침 10신데 왜 아직 자니?
아침이라고 하기엔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새벽 2시 50분. 할머니는 긴 바늘이 10을 가리켜 10시로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당시의 나는 하루 종일 자기소개서 문항과 나의 삶에 피로감을 느껴 베개에 머리를 누이자마자 깊이 잠들었는데, 깊은 잠에서 갑자기 일어나려니 심장 박동 수가 빠르게 뛰며 식은땀이 죽죽 났다.
나 : 할머니 무슨 소리야?
할머니 : 아니. 왜 아침부터 이렇게 자고 있느냐고?
나 : 지금 주변이 밝아? 왜 그래? 좀 있으면 새벽 3시야. 빨리 다시 가서 자요.
할머니가 이해되도록 5번 정도 설명하고, 할머니를 방에 데려다 드리고 이불을 덮어주고 나왔다. 할머니를 이해시키고 방에 모셔다 드리고 나면 새벽 3시 40분. 잠이 달아나 5시 30분까지 피곤한 채로 깨어있었다. 새벽 내내 깨어있는 동안 피곤함이 풀리지 않아 침대에 누워 동이 틀 때까지 잠에 들지 못했다. 아무래도 할머니가 노인정에서 집으로 빨리 돌아와 하루 종일 낮잠만 자서 밤낮이 바뀌어 그런 듯싶었다. 그렇게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기도 하고, 어깨를 흔들기도 하고, 불을 켜기도 하며 매일 같이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에 날 깨웠다. 유난히 새벽이 되면 밤과 낮을 구분하는 인지능력이 더 떨어지는 것 같았다.
새벽녘 깨우는 게 일주일이 지나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잠을 긴장하며 자서 수면의 질이 떨어지기도 하고, 수면시간이 짧아지다 보니 낮 시간 동안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족들에게 긴 장문의 메시지로 계속 깨우시는 할머니를 설명하며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도와달라'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