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을 보고 돌아오니 외숙모가 계셨고 장기요양등급 심사원이 방문한 얘기를 들려주셨다. 외숙모와 할머니는 심사원과 각각 인터뷰 형식의 심사를 받았다고 했다. 외숙모는 할머니께서 어떤 약을 먹는지, 일상생활 수준은 어느 정도 되는지, 치매 이외의 다른 지병이 있는지 등 간단하고 형식적인 심사를 하셨고 할머니께는 외숙모보다 조금 더 직접적으로 인지기능을 평가받았다.
장기요양등급 심사원 : 할머니 사시는 주소는 어디예요?
할머니 : 백합아파트... 백합... 아! 백합 아니라 풍림아파트다. 여기 지갑 위에 동이랑 호수 쓰여 있지? 여기야. 나 여기 살아.
장기요양등급 심사원 : 그러면 할머니, 집에 가는 길을 잃어버렸을 때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할머니 : 나 핸드폰 있고 번호가 다 저장되어 있는데, 모르면 지나가는 사람 붙잡아서 자식들한테 전화 걸어 달라고 부탁하지 뭐.
지금까지 생활하면서 시종일관 모른다고 대답하던 할머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치매가 걸렸다고 심사원에게 말하지 않았으면 치매인지 모를 만큼 정확하게 대답하는 할머니를 보며 허탈했다. 주소며 출생 연도며 어느 것 하나 모르는 게 없었다. 요양병원 간호사로 일하시는 어머니께 나중에서야 들은 이야기지만, 치매 어르신들은 모르는 사람이 오면 긴장이 돼 평소보다 정신이 또렷해지신다고 했다. 심사원이 돌아가고부터 할머니는 피곤하다며 낮잠을 주무셨다. 그리고 일어나서는 내가 아는 할머니로 돌아와 있었다.
나 : 할머니 오늘 시험 잘 보셨다면서요?
할머니 : 몰라. 오늘 누가 왔냐?
가족들끼리 전화로 '인터뷰를 너무 잘하셔서 등급이 낮게 나와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며 서로를 위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