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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디 Jun 26. 2024

그녀만의 화장실 사용법

Lemon tree


서울을 떠나 한반도의 남쪽을 누비다 왔다. 샌드위치 연휴가 시작되던 현충일, 하행선 고속도로가 얼마나 들썩였는지 말도 마시라. 오전 9시경 휴게소에 우동이 품절되어 매운 라면을 비싸게 먹었다. 모닝 우동 먹겠다고 새벽 6시에 집을 나섰는데 말이다. 보드랍게 우동 면발을 꿈꾸던 첫 끼니의 미각은 고추기름 코팅된 라면에 알알해졌다. 차 천장까지 꽉 채워 실은 5박의 캠핑짐에도 라면이 한 자리 차지하고 있으니, 5천5백 원 이상으로 부아가 났다. 나이 먹고도 먹는 걸로 골이 오르더라. 짐 속에서 라면 한 봉지 꺼내 쌩으로 아그작 씹으면 노여움도 부숴지려나 싶었다.


가족 넷이 되고 해외여행 한 번 못 가본 우리에게 집 떠나 여기저기 방랑하는 6일은 길디 길었다. 고흥에서부터 거제까지 다섯 도시를 거치며 이곳저곳에서 먹고 자고 쌌네. 

“자, 출발 전 화장실 다녀오자. ”

“나 아까 싸서 안 마려운데. ”

“엄마도 그런데 이따가 마려울까 봐 미리 가는 거야. ”

이동이 많았던 만큼 어디든 출발 전 전원 화장실이 진리. 여정이 더해갈수록 엉덩이를 까고 앉았다 일어나는 행위는 몸에 익어갔다.




마지막 여행지인 거제의 몽돌해수욕장 근처에서 해물뚝배기와 낙지볶음을 한 상 해치웠다. 점심을 먹고 바닷가 산책 전에 건순이와 애미, 여성팀이 먼저 화장실에 다녀올 참이다.


친절한 안내문. 이조차 추억 @HONG.D


꽤 난이도가 있었다. 어른인 나도 움찔했지만 부러 티를 내지는 않았다. 심화 수준의 화장실 컨디션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건순이가 애미 눈에 기특했다. 이제 우리 딸과 함께 전국 팔도 유랑도 할 만하겠네.

계산을 마치고 화장실로 향하는 애비와 건만이에게 화장실 문제의 힌트를 날려주었다.

“남성팀도 잘 극복해 봐요. ”




긴 여행을 다녀오고 각양각색의 화장실을 경험하였더니 달라진 게 있었다. 건순이가 화장실에서 엄마에게 자주 하던 질문이 사라진 것이다.

“엄마, 휴지 퐁당해? “

여행 초반까지 이 귀여운 말을 들었던가 가물하다. 화장실을 연거푸 다녔더니 하수 생태계에 능숙해졌나. 안내문을 읽고 이해하는 초딩언니가 되었나.


난독증 유발중 @HONG.D



식당 앞의 고난이도 화장실에서 용감하게 맞서는 건순이에게 물었다.

“건순아, 어느 화장실에서는 휴지를 절대 넣지 말라 하고 어디는 변기에 화장지 넣으라 하잖아. 엄마는 헷갈리던데 건순이는 참 잘하네. “

“엄마, 뭘 그렇게 고민해요. 칸에 딱! 들어가서 휴지통이 있으면? 휴지통에 넣고, 없으면? 변기에 넣으면 되지요. ”

“아, 건순이만의 특별한 요령이 있었구나? 몰랐네 ”

“하나 더 알려줘요? ”

“너만의 비밀수법이 또 있어? ”

“아까 숙소 화장실 기억해요? 휴지통이 있는데, 여기저기 둘러봐도 아무 말이 없다 하면? 그땐 퐁당해도 안전해요. 내가 많이 해봐서 알아요. ”



아이들의 반짝이는 생각에 어른이 배운다. 이만큼 또 자랐구나.

건순이는 아직 볼 일을 도와달라 하고 엄마와 화장실 한 칸에 비집고 들어간다. 이제는 조금 컸다고 기다리지 않고 자기가 먼저 해결하고는 쏙 나가 버린다. 엄마까지 덧대어 변기를 사용하고 한 번에 물을 내린다. 지구의 물부족을 걱정하며 뿌듯하다는 아이.

자주 가는 쇼핑몰이나 도서관 화장실은 익숙해서, 엄마의 옆 칸에 홀로 들어가기도 한다. 입장부터 퇴장까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물을 내리고 상봉을 하지. 이 조차 소중하고 유한한 일상이다.


“엄마, 그런데 나 아직 생일 안 지나서 만 나이 여섯 살이거든요. 나도 이제 퐁당, 안 퐁당 알아요. 엄마는 오래 살아서 아는 줄 알았더니 아리송한가? 그럼 이제 엄마도 내 법칙대로 따라 해봐요. ”


그래, 애미는 어른인데 말이다. 너와 나누는 대화에서 미처 알아채지 못한 일상을 배우고 너를 알아간다. 늘상 걱정이 교차하는 애미에게 길을 안내해 주는 내 새끼. 네 애미여서 행복해.

오늘도 햇살 쨍쨍한 길을 그늘 따라 퐁당퐁당 함께 가보자.




+덧이야기

@HONG.D 그리고 찰칵


더 새롭게 더 예쁘게
나의 맘을 상큼하게 할 거야
내 꿈에 숨겨온 노란 빛깔 Lemon Tree

나 약속할게 언제나
기분 좋은 상쾌함에 웃을래
환하게 반기는 노란 빛깔 Lemon Tree


<Lemon Tree> 박혜경 (2008)


TALK 수준의 화장실 이야기에 왜 이 노래가 떠올랐는지. Fool’s garden 풀스 가든 원곡의 슬픔을 상큼 발랄하게 리메이크한 박혜경 가수. 어린 홍디가 콘서트도 두어 번 갔을 만큼 정감이 가는 싱어다.

건순이 기저귀 입던 시절에 동네 축제에 방문한 박혜경 언니의 공연을 가족 넷이 본 적도 있지. 건순이가 큰 일을 치른 줄도 모르고 엉덩이 무르도록 들썩였던 추억도 있구나. 글 여기저기에 퍼진 화장실 향기를 레몬 그림으로 샤라락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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