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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디 Aug 30. 2024

탕후루를 이제야 처음 맛본 초등 남매

달콤한 경험에 대하여

#1. 건만이와 도서관


사서선생님: “어머니, 안녕하세요. 아이가 초등학생인가요?”

홍디: “네.”

사서선생님: “학생, 설문조사 부탁드릴게요."

건만이: "네."


종이 한 장을 받아 든 건만이가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성의 없이 V표시를 한다. 뭐길래 초4춘기 헐렁한 자태가 나오나 싶어 쓱 눈길을 주었다.


Q : 탕후루를 먹어 본 적이 있나요?
A : 아니오

Q : ‘아니요’를 선택했다면 왜 탕후루를 먹어 본 적이 없나요?
A : 부모님이 못 먹게 하셔서

Q : 탕후루나 마라탕을 알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A : 친구 권유로


그래. 건만이, 건순이는 마라탕, 탕후루 둘 다 아직 안 먹어봤다. 유행이라도 해도 관심 없으면 꿈쩍도 하지 않는 가족이긴 하다. 굳이 아이들이 사달라는 말을 한 적이 없고 말이다.

헌데, 탕후루를 먹어 본 적 없는 이유가 '부모님이 못 먹게 하셔서' 라니. 신성한 도서관에서 어찌 이런 마라탕후루 같은 설문조사를 하는가. 오래간만에 사이좋게 책 빌리러 온 아들과 애미 사이에 불씨를 던지네.  


"네가 탕후루 먹고 싶은데 엄마가 못 먹게 했었어?"

"아닌가."

"그래, 뭐든 다 엄마 탓이다."

"..."

말없이 어린이 도서존으로 만화책 찾으러 간 건만이. 그가 엎어놓고 간 설문지를 들춰보니 어느새 고쳐져 있다. 괘씸한데 눈치는 재빠르구먼.


Q : ‘아니요’를 선택했다면 왜 탕후루를 먹어 본 적이 없나요?
A : 부모님이 못 먹게 하셔서  →  먹어볼 기회가 없어서


도서관의 설문조사 @HONG.D




#2. 건순이와 탕후루 가게


건순이는 요령 없는 오빠와는 달리 기회가 생기면 놓치지 않고 본인이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특기가 있다. 생일이 있던 한 달을 통으로 ‘탄생월간’을 누렸던 그녀의 마지막 버킷리스트가 '탕후루 먹어보기'였다.


"엄마, 나 오늘 태권도 다녀오면 탕후루 꼭 사주는 거예요!"

"응, 이따 같이 가자."

태권도 차를 탈 때에도 함박웃음이었는데, 하차하는 건순이는 이미 양 볼에 한 알씩 탕후루를 물고 있는 듯했다. 엄마와 손을 흔들며 탕후루 가게가 있는 지하철 역 쪽으로 걸으면서 재잘재잘 벌써 당이 올라간다.


"엄마, 태권도 선생님한테 탕후루 먹으러 간다고 자랑했어요. 선생님도 저번에 먹어봤는데, 너무 달고 이빨에 끈적하게 붙어서 한 번 먹고 안 먹고 싶대요. 하하하. 나는 오늘 먹고 나서 또 먹고 싶을 것 같은데요. "

"건순이가 탕후루 먹었다고 하면 오빠랑 아빠도 먹고 싶을 텐데 어쩌지?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포장해도 되려나?"

"포장하면 돼요. 우리는 바로 먹고, 남성팀 것은 포장해서 냉동실에 넣었다가 미리 꺼내 놓고 먹으면 딱 맞아요. 내가 궁금하고 먹고 싶어서 엄마 몰래 유튜브에서 봤어요."

"이야, 건순이는 먹어보기도 전에 탕후루 박사네."


탕후루가 뭐길래


탕후루 영접 @HONG.D


고민 끝에 믹스딸기 탕후루를 고른 딸내미는 알알이 반짝이는 꼬치를 받아 들고 잠시 한숨을 고르더라. 존귀한 대상을 영접했을 때 나도 모르게 우러나오는 의식 같았다. 종교 없음에 기도아님 주의.


원하는 바를 쟁취하고야 마는 건순이를 또 한 번 다시 보았다. 평소에는 묻히고 흘리고 떨어뜨리는 마이너스의 손을 가진 그녀는 탕후루를 처음 맛보면서 전혀 초보티 나지 않게 금손 같은 베테랑 솜씨를 보여주었다.


@HONG.D 그리고 찰칵


무엇이든 경험은 달콤하다.


아빠와 오빠가 먹을 탕후루를 포장해서 직접 손에 들고 집으로 향하는 건순이의 발걸음은 달콤 발랄했다. 몸에 좋지 않기로는 탕후루 까짓것 보다 더한 불량간식을 무한 제공하는 애미는 아이의 반짝이 이빨이 늘어날까 두려웠던 걸까.

어쩌다 여태껏 맛 보여 주지 않아서, 탕후루가 아이에게 선망과 도전의 대상이 되었나.


결과와 상관없이 무엇이든 행하는 경험은 성장이 따라온다. 어쩌면 하고 싶은 걸 해보지 못한 것 자체가 유일한 실패이자, 두려움과 핑계이다.





#3. 건순이 친구들과 하교 후 물놀이터


탕탕 후루후루, 탕탕탕 후루루루루. 하교 후 그대로 물에 빠져 노는 아이들이 마라탕후루 노래에 춤을 춘다.

“얘들아, 너희 탕후루 먹어봤어?”

“응! 응! 먹어봤지!”

“너는 탕후루 몇 번 먹어봤어?”

“나는 한 번!”

“나는 열 번도 넘어!”


그래, 경험이 중하구나. 막바지 불타는 여름 더위에 너희들의 웃음과 대화에 미소가 지어진다.


건순이는 ‘탕후루를 아직 못 먹어본 아이’에서 ‘한 번 먹어본 아이’가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알알이 끈적이는 하루하루가 달콤하다.

체리 고이 담은 그림멍하시고 그대의 오늘이 달달하길 바라요홍홍.


@HONG.D 그리고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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