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늘은 날 찍게 하는지
동갑내기 가수 이지훈이 1996년에 발표한 데뷔 히트곡 <왜 하늘은>의 추억 돋는 멜로디로 한 문장을 써 본다. 셀프 음성지원 되는 사람=옛날 사람 방가방가.
왜 하늘은 날
보게 하는지
왜일까. 그냥? 좋아서? 심심해서? 이러면 초딩 건만이 수준이지. 하늘은 한 게 없다. 그저 하늘다웠을 뿐이다.
왜 아이들이 엄마를 따르고 사랑하고 세상에서 뭐든 다 최고로 잘한다고 생각할까. 그저 엄마다워서 그런 거지. 적어도 사춘기 전까지의 아이들에게 엄마는 어쩌면 하늘이다. 하늘의 맑고 흐림이 집안의 날씨와 온도를 좌우하기도 하니까.
엄마는 하늘 같다지만 사람인지라, 일상 속에서 잠시 숨 돌릴 틈이 있어야 다시 힘을 내어 살아갈 수 있다. 고단하고 힘든 일이 자꾸 생겨도 한숨으로 하루를 가득 채울 수는 없지 않은가. 하루 중에 단 몇 분, 몇 초라도 쉼에 관심을 준다면, 그 하루가 가치를 찾게 된다. 홍디가 아끼고 다시 보는 하늘멍 함께 하실까.
계절이 바뀌던 더운 날, 좀처럼 볼 수 없는 양떼구름을 만났다. 건만이가 스포츠센터에서 축구하는 동안, 바로 옆 공원에서 건순이와 나들이를 하고 있었지. 건순이는 오빠 없이 엄마와 단둘이 즐기는 한 시간을 알토란 같이 채웠다. 미끄럼틀과 뱅뱅이도 타고 스카이콩콩도 뛰다가 엄마와 음료수도 나눠먹었다. 까르르르 알콩달콩 코땀이 맺혀 그녀의 발랄함을 더했다.
건만이에게 처음 엄마 노릇을 할 적에는 이거 해라, 조심하자, 이리 와 봐라, 새들한 틈새도 내어주기 아까웠었나. 지나고 이제야 깨닫는다.
양떼가 몰고 오는 노을빛 멜로디가 귓가에 맴돌던 공원, 건순이에게 두 번째 엄마 구실을 했다. 아이가 앞서는 뒷모습을 그저 따라가며 미소로 바라본다. 가고 싶은 대로, 하자는 대로 손길만 살짝 얹어준다. 건순아, 나이 먹은 애미에게는 네가 막내잖니. 이게 마지막 애미 역할일테니 아쉬워도 아쉬움이 덜 남도록 어디 한 번 흘러가보자.
고적운 (高積雲/ Altocumulus)
중간 정도의 높은 하늘에서 웅장하게 나타나는, 다수의 구름 덩어리들이 모여 이루어진 구름. 높쌘구름, 양떼구름이라고도 한다. 영어에서는 고등어의 비늘 같다는 표현을 즐겨 쓴다. 수직으로 쌓여 올라가는 구름이기는 하나 강수의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
사진상에서는 대체로 대규모로 발생하여 하늘의 절반 이상을 덮는 장관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에서 이 정도 상황은 보기 드물고, 가장 흔한 사례는 고층운의 가장자리 변두리에서 슬그머니 나타났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등의 출현일 듯.
-출처 <나무위키>
몽실몽실 양떼구름은 비가 올 징조라지. 당장은 비를 만들지 않는 구름이다. 몽글몽글하던 구름이 무거워져 아래로 내려오면서 비를 품게 되는 거다.
하늘을 바라보고, 찍어 수집하고, 그리며 곱씹고, 그날을 기억하는 움직임들이 당장의 골치 아픔을 해결할 수는 없다. 고민거리를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잠시 하늘멍하는 동안 맛보았던 치유가 그림에 물들기를. 드로잉멍을 하는 여러분의 시간이 일각의 충전이 되기를. 모자란 솜씨 부린 그림에 하늘에너지를 담아 선물로 툭 건넨다.
하늘이 하늘답고 엄마가 엄마답듯, 서랍 속의 기억들은 지금의 우리에게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는다. 물론 대가도 바라지 않고. 어쩌면 우리가 힘들 때, 위로가 고플 때 단비를 내려주리라. 내가 좋아라 내놓은 그림 이야기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살피도록 돕기를 바란다.
하늘수집가 홍디는 폰 사진첩에 <그릴 하늘>이라는 폴더를 가지고 있다. 돈도 안 되는 하늘 부자다. 셀 수 없이 많은 하늘 사진 중에서도 꼭 그리고 싶은 이야기들을 품고 산다. 하늘 퍼즐에서 조각 하나씩 뜯어내어 붓으로 풀어낼 날들을 기다리며.
+덧마디.
봄으로 달려가는 길에 물보라 치는 수요일이네요. 그대여, 수물수매에 스멀스멀 물들고 있으려나요. 나름 물맛 나는 선물이 되었기를 바라요. 관심, 응원, 질투, 댓글로 저에게 힘과 용기를 주셔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