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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디 Mar 14. 2024

물감이 마르고 닳도록

하늘이 보우하사

물감이

마르고

닳도록


먼저 밝히고 본다. <수요일마다 물드는 수채화의 매력=수물수매>의 연재는 오늘 발행하는 10화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나 홀로 아쉽나? 아니길 바라며, 연재를 시작하던 마음부터 지금까지를 돌이켜본다.


쓸 새 없이 못 쓰던 시간도 쓸모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연재를 하기 전에는 개인사로 글 한 줄 못 쓰는 자신을 채찍질하고 뜨거운 기세로 잘 나가는 주위에 시새움도 일었지. 허나 이제는 시선이 다르다. 지난주 둘째 딸 건순이의 입학으로 현생이 고단해 휴재를 하였음에도, 조바심이나 죄책감보다 가치를 헤아린다는 그럴싸한 핑계를 대었다.


수채화글을 연재하는 동안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스스로 단단해짐을 배워가고 있다. 독자 여러분께서 주신 라이킷 응원과 댓글 에너지는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아, 홍디를 쓰고 그리게 할 것이다. 붓질하는 길은 수십만의 인기글과는 다른 경로임을 인정해 간다. 물론 부러움도 인정해요호홍홍. 다만 귀엽라도 터지는 조회수를 경험해 보니, 찰나의 쾌락은 지날수록 흐릿해지더라.


시간이 흐를수록 진하게 남는
'색'이 있는 자리가 되고 싶다.


(왼)팔레트를 사고 처음 물감을 짰던 날과 (오)하늘 그리던 어느 날


고유한 색을 찾아가는 여정은 얼룩덜룩하겠지. 팔레트는 때로 물들고, 붓끝은 휘어진다. 모자라지만 고이 그려낸 손바닥 만한 그림들을 용기 내어 여러분께 건넨다. 오늘 하루를 부단히 살아하는 ‘그대’들을 위하여. 그대에는 ‘나’ 또한 포함이다. 나 자신이 처음이자 마지막 독자이니까. 지금 또는 훗날에 홍디의 그림을 보고 글을 읽는 모든 이가 그대이기에 아끼고 위하는 바이다. 삶을 사는 사람을 아낀다. 아끼는 것은 기억이 되고, 기억하면서 아끼는 것이다.


앞길이 막막한 100세 인생 다리의 절반 즈음에 서서, 아찔하거나 출렁거리더라도 발을 떼며 나아가본다. 나 혼자 겁날까? 혼자가 아니길 바라며, 자신을 찾아가는 여로에 만난 인연들에게 손바닥만 한 위로가 되길 바란다.




하늘이

보우하사


자칭 하늘바라기, 하늘앓이, 하늘전도사, 하늘수집가, 하늘부자 홍디가 나다. 10화를 연재하는 동안 셀프 하늘 타령은 있는 대로 얼씨구절씨구 했다. 아등바등 일상과 다르게 다소 우아한 척도 해보고.


수채화에 물들어주셨던 분들께 보답하는 의미와 수물수매 점포정리 차원으로 하늘 그림들 모아 소개해본다. 연재하는 동안 소개했던 엽서들도 있고 처음 보여드리는 그림도 있겠다.


언제든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빛'이 있는 공간이 되고 싶다.


1. <겨울, 밤하늘의 별> 시리즈
<겨울, 밤하늘의 별> 시리즈 @HOND.D 그리고 찰칵


연재 1,2화에서 소개했던 <겨울, 밤하늘의 별> 시리즈는 22년 크리스마스 즈음 그렸다. 수채화를 배운 지 몇 개월 안 되었을 때인데, 작은 꽃잎과 나뭇잎 그림을 배우던 새내기는 성탄절을 맞아 하늘을 그릴 수 있는 기쁨이 어마어마했다. 처음으로 두툼한 붓을 사용해보기도 하고, 밤하늘을 진하게 물들이고 마르기를 기다리던 기분이 생생하다. 흰색 물감 머금은 붓을 툭툭 쳐서 우연히 떨어지는 별빛들이 가슴에서도 콩닥콩닥 반짝였다.


어느 겨울날 오후에 따사롭게 지는 해가 책상으로 드리워졌을 때, 이때다 싶어 빛나게 찰칵거렸다. 그리던 추억과 그림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기억이 별빛이다.  




2. <너와 함께한 하늘 위로> 시리즈
<너와 함께한 하늘 위로> 시리즈 @HOND.D 그리고 찰칵


<너와 함께한 하늘 위로> 그림들은 앞으로가 더 무궁무진하다. 가장 애정하는 하늘들이면서 아직은 다듬어지지 못한 날 것들이랄까.

8화 <하늘 수집가>에서 소개했듯이, 홍디 폰 사진첩에는 ‘그릴 하늘’들이 줄지어 기다리는데, 실력과 시간이 따라가지를 못하고 있다. 민망하게 망한 하늘 엽서도 많다. 하긴 망한 들 어떠하리. 하늘은 그 자리에 늘 공짜로 있어준다. 위로가 되는 하늘멍은 늘 한결같을 것이고, 하늘이 하늘답듯, 홍디도 홍디다운 길로 나아갈 것이다. 놀멍 쉴멍 살아내며. 하늘 하나마다 담긴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늘은 위로이기에.


아끼는 하늘을 들여다보면 기억이 재생된다. 누구나 좋아라 하는 것을 자기 방식으로 기록하고 재생하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나가길 바란다. 여행을 가고 이벤트가 있어야만 인증하는가. 다시 안 올 삶의 찰나들을 휘리릭 흘려보낸다면 아쉽게도 재생의 기회는 사라진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내는 노력들은 일상에서 가치를 찾고 고유의 색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그대여, 분주하고 고단할수록 잠시 하늘도 한 번 훑어보시라. 자신의 가치를 올려보고 위로받으시길.




3. <오두막의 겨울> 시리즈
<오두막의 겨울> 시리즈 @HOND.D 그리고 찰칵


우리 가족은 EBS 다큐멘터리 <건축탐구 집>을 즐겨본다. 도시의 정형화된 아파트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 우리만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집을 짓는 꿈을 꾼다. 온 가족이 한마음으로 진심이지. 아이들의 학교 생활과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이 불가피한 현재로서는 야무진 꿈이지만, 지금과는 결이 다른 행복을 품고 살아간다.

“내가 크면 아빠, 엄마 집 지어주고 그 옆에 살 거야”

“엄마! 드디어 세컨드하우스 도면을 완성했어! 나는 박공지붕이 좋은데, 엄마는 어때요? ”

그래, 엄마도 좋아. 기왕이면 건순이와 건만이의 귀엽게 흘러가는 말들도 여기 담아본다. 스스로 취향을 알아가는 녀석들이 대견하다.


6화, 7화에 소개했던 그림들에는 <오두막의 겨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막연히 바라는 ‘여유로운 공간‘ 을 담았다.

북유럽 어느 시골 마을에 고요하고 어여쁘게 눈이 내린다면 어떠할까. 아늑한 공간에서 소소한 일상을 마음껏 누리고 계절의 변화를 즐기며 독서와 산책을 하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어스름하게 밤이 되어가는 시간, 별빛같이 반짝이는 하얀 눈, 숲 속 작은 집 창가에서 바라볼 자연, 그레이 하지만 우울하기보다 차분한 색. 이 시리즈에는 홍디 취향을 담뿍 담았다.


4. <선물하는 하늘> 시리즈
<선물하는 하늘> 시리즈 @HOND.D 그리고 찰칵


이 하늘 시리즈를 <선물하는 하늘>이라 이름 지은 것은 말 그대로 선물하던 기억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3화 연재글 <하늘을 선물하는 법>에서 엽서선물을 그려내는 과정을 담았었다.

사진 속 그림들은 모두 선물해서 지금은 내 손에 없다. 다이어리에 꽂혀있든, 책갈피로 쓰든 받은 분의 자유다. 품을 떠난 내 새끼들이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너희들은 여전히 소중하다. 오그라든 하늘 엽서를 받아주신 귀한 인연들도 무소식이 희소식으로 잘 지내고 계시리라 믿는다. 보고 싶다.




5. <하늘길> 시리즈
<하늘길> 시리즈 @HOND.D 그리고 찰칵


<하늘길> 시리즈는 풍경드로잉을 배우면서 그린 그림들이다. 자연을 좋아하는 일인으로 풍경과 하늘을 함께 그려보는 경험은 흥이 난다. 신기한 점은 나무 한 그루를 그려도, 같은 물감으로 그려도 각자의 색이 나온다는 거다. 홍디는 어쩌다 보면 늘 쨍하지 않게 다운된 톤온톤이 그려진다. 우울하게 보이지 않기를 바랄 뿐.


길(STREET)이라는 단어를 좋아라 해서 자주 쓴다.  브런치스토리의 <일상을 가는 길=STREET DESOGN> 매거진은 살아가는 일상의 방향을 담고 싶은 공간이다. 글거리는 많은데 가만히 앉아 쓸 여유가 부족한 게 안타깝지 뭐.


<하늘길> 시리즈는 하늘과 길의 조합이니 나에게는 꿀이다. 달달한 그림 한 장 손에 들고 날 좋은 날 하늘을 향해 팔을 뻗어본다. 눈은 부시고 허리는 꺾이고 각이 잘 안 나오지. 이조차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기리라. 할미홍이 되어서도 하늘 향해 등허리를 젖히려면 체력도 키워야겠다.




7. <하늘의 들판> 시리즈
<하늘의 들판> 시리즈 @HOND.D 그리고 찰칵


<하늘의 들판> 시리즈의 왼쪽은 해바라기, 오른쪽은 산수국 그림이다. 계절마다 꽃이 개화하는 시기에 맞추어 축제들이 많지. 실은 해바라기 축제, 수국축제 이런 데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사람 많은 곳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일까. 꾸미지 않은 자연의 손길을 좋아해서일까.


작년 초여름 즈음에 집 주변에 산수국이 예쁘게 피는 걸 장 보러 오다가다 바라보며 찍고 그렸던 기억이 난다. 그림을 한 장씩 꺼내 볼 때마다 기억이 재생되는 시간이 소중하다. 올해도 이런 저런 꽃이 피면 하늘과 함께 폴라로이드 감성으로 몇 장 끼적여보련다.




마음을 소중히 들여다보는
‘창’을 그리고 싶다.


‘창’ 너머로 하늘이 보이고, ‘빛’이 드리우는 테이블에서, ‘색’이 있는 작업을 하고 있는 홍디를 꿈꾼다. 손바닥 만한 엽서 한 장에 하늘에 담긴 마음들을 그려낸다. 성에 차지는 않는다. 글그림솜씨는 모자라도 진심과 애정은 통하리라 기대해 본다.


브런치에 BGM이 없어 아쉽네. 자체적으로 음성지원 바란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다시 만나요.




+덧마디.

<수요일마다 물드는 수채화의 매력=수물수매> 연재북에 관심 가져주신 모든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 다르게 물맛 나는 수채화 이야기로 다시 만나요.

수요일은 또 올거니까요호홍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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