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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디 Feb 14. 2024

겨울이 간다

질척대는 여인의 기록

오두막

앞이야기


지난 연재글에서 유럽을 그리려다 한반도 시골에 머물었던 홍디는 질척대기 대장이다. 지난주 이야기 궁금하시거나 놓치셨던 분들을 위해 좌표 여기 드려요호홍홍.

https://brunch.co.kr/@hongdi/44


작정하고 유러피언 스타일(European Style)을 소개한다. 툭하면 질척거리는 여인은 이래야 직성이 풀리는 걸 어찌할고. 뭐 어쩌나. 슬슬 그림썰 풀어내다 보면 어찌 되겠지. 원하는 게 뭔지 모를 때는 지금 원하는 대로 가보는 거다.


@HONG.D 그리고 찰칵


다짜고짜 짜잔. 오두막 한 채 그려낸 후 터치펜으로 겨울을 끼적이고 한 컷 남겼다. 흰 눈처럼 하얀 문이 달린 나무집이다. 눈꽃 무늬 달고나도 우윳빛으로 골라 붙였다. 실링왁스에 눈꽃 결정체가 또렷이 잘 찍혀 뿌듯하다. 영문 캘리 내 멋대로 마무리하니, 날 것의 유러피언 감성이 고스란히 담겼다. 실력으로 보면 부끄럼 주의. 취향으로 봐주시길 바란다.


취향을 선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실력 없는 솜씨라도, 그림을 볼 줄 몰라도, 미술을 배운 적 없어도 그냥 나는 물드는 홍디다. 이리 그림 그리고 저리 글 쓴다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해야 하는 몫들 틈새에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하루를 바지런히 채워나가는 중일뿐이다.


우리들 모두가 그리 살지 않는가. 살아내기 바빠서 취미 따위는 사치라고 여겼던 날도 있었다. 취미 삼아 붓을 잡고부터는 하루에 일분일초라도 하고픈 일을 꾸역꾸역 끼워 넣는다. 일각의 여유가 일간을 버틸 힘이 되기도 하니까.


도닥도닥 스스로는 위로를, 그대에게는 취향을 선물한다. 이해할 건더기도 없고 느끼는 바 대로 함께 해주시길. 취향이라는 선물에 정성과 애정을 쏟아 담는다. 질척거리는 홍디의 마음이 느껴지시려나.




@HONG.D 그리고 찰칵


오두막

뒷이야기


그리고 싶었던 유럽의 시골마을 오두막 눈 오는 풍경. 겨울이 한껏 무르익을 때, 난방 빵빵하게 틀고 이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공간에 히터가 세게 작동하면 생기는 현상. 기다리고 싶은 마음과 달리 물감이 성급하게 말라버린다. 옷을 두툼하게 입고 난방을 껐다. 그제야 종이와 마음의 속도가 얼추 맞는다. 겁겁해서 얼룩진 부분에 살포시 붓질을 더하여 어루만져주었다. 그림도 인생도 얼마든지 A/S가 된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단계별로 사진을 찍어두어야지 다짐을 해도, 막상 붓질을 시작하면 자꾸 깜빡한다.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 과정을 기억하고 싶은 기록의 의미가 크다. 브런치를 드나드는 작가님들 대부분이 단어나 문장 수집가이시겠지. 글감이 떠올랐을 때 하던 일 멈추고 메모장에 끼적인 적 있나. 꿀 같은 정보나 글귀를 만났을 때 나에게 카톡을 바로 보내놓고도 까먹기 일쑤지 않은가.


글처럼 그림도 기억이 기록을 뒤따라가더라.


Cherish Winter

단계별로 세세한 과정들이 있는데, 폰을 뒤져보니 달랑 요만큼 남아 있는 인증샷. 아쉬운 만큼 더 소중하다. 눈이 오던 겨울날, 밀크 아이스크림을 녹인 듯한 물감색들이 마음에 들게 조합되었었다. 어울리게 실링왁스도 우유색깔로 붙여 본다. 그레이쉬한 하늘도 휘리릭 그려냈었지. 하늘빛과 톤온톤(Tone on tone, 같은 색의 밝기나 선명도를 달리하여 두 가지 이상의 색이 서로 잘 어울리도록 배치하는 것)으로 나무와 영문 캘리 칼라를 맞추어보았다. 이처럼 술렁 잘 그려지는 날이 잘 없는 게 안타깝지만 귀한 경험이다.


비슷한 결과물이라도 사람마다 그려내는 과정은 다르다. 누구는 하늘이나 배경부터 그리고, 누구는 집이나 나무 같은 주제부터 그린다. 과정샷을 보시다시피, 홍디는 주제파이다. 스승님께 그리 배웠다. 주제부터 파악하고 주인공부터 자리 잡아 놓아야 후광을 어찌 비추어낼지 분위기를 알지 않겠나.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하루도, 한 끼도 모두 그러하다. 메인 메뉴에 따라 국색깔도 정해지고, 단무지를 꺼낼지 김치가 나을지 반찬도 궁리를 할 것이니.


이 그림에는 집과 나무가 주연급이다. 주요 캐스팅 요소부터 하늘 배경까지 그려내는 과정을 즐겼다. 작달막한 손가락으로 쓰고 그린다. 겨울을 아끼며 정성껏 기록한다. 기억이 따라오도록.




< Cherish Winter >

겨울이 간다.
하얗게 내린 눈이 녹아
길이 질척대면 어떠리.

이 겨울 마지막 문턱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왜 이리 질척이냐.

겨울아 가지마.
갈 테면 천천히 가줘.
질척거리는 나를 위해

너를 아끼는 만큼
기억 속에 간직할게.
Cherish Winter

@홍디


@HONG.D 그리고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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