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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디 Feb 07. 2024

아날로그의 치명적인 매력

손수 장작을 패라

“얘들아, 모두 그 앞에 서봐. 한 장 찍자.”

“여기 봐야지. 여기. 웃어보자.”

“마스크 잠깐만 벗을까? 으이그, 왜 그런 표정을 지어.”

“멋진 포즈. 브이. 좋다 좋아.”


인증샷

[+]


우리는 왜 인증샷을 찍는가.

그 사람이 그 날, 그 시간, 그 곳에 있었다는 증거. 

꼭 SNS에 자랑하지 않더라도 함께 한 이들과 사진을 나누기도 하고, 잠 안 오는 밤 사진첩을 뒤지며 그리워하기도 한다. 오래도록 간직하며 보고 또 보면서 기억이 잊히지 않고 추억으로 머물게 될 확률이 훅 오른다. 하여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다는 국룰은 시대와 세대가 바뀌어도 깨질 리 없다.


우리네 엄마들이 팽팽한 얼굴에 뽀글 머리를 얹었던 그 시절을 어찌 짐작할까. 45도 각도로 겹겹이, 나란히 그대의 어깨에 손을 얹었던 엄마들의 젊음은 기념사진 덕분에 어림잡을 수 있는 거다. 사진 속 세상에서 내 나이보다 어린 엄마들은 촌스러워도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웃고 있더라.


6년 남짓 인생살이 건순이는 어릴 적 이야기가 담긴 성장앨범 보기를 즐기는데, 툭하면 이런다.

“아, 맞아, 맞아, 나 이때 기억나. “

하다못해 엄마 뱃속에 있었던 시절도 기억이 난단다. 그래. 초음파 사진부터 찍힌 너희들은 추억의 샘이 깊고 깊겠구나. 참말로 기억하는가는 몰라도, 샘물이 달달하기를 바랄 뿐이다.


3년 차 초딩 건만이 책상에는 폴라로이드 사진이 두 장 붙어있는데, 한 장은 우리 가족 사진, 한 장은 같은 반이었던 친구와 찍은 사진이다. 지난해 할로윈에 아파트에서 할로윈 장식을 꾸며놓고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는 행사를 했었는데, 거기에서 우연히 1학년 때 친구를 만났다. 평소에 연락을 하거나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아님에도, 그 사진이 그리 특별한가 보다. 아이에게 너 이 친구랑 별로 안 친하잖냐고 물어볼 수는 없고 슬쩍 마음을 엿본다.

”건만아, 이 사진 소중해? 눈앞에 붙여 놓았네 “

“응, 폴라로이드 사진은 이 세상에 단 한 장 밖에 없잖아. “

그래. 엄마도 그 마음 잘 안다. 너는 그 감성을 벌써 아는 거니.


라떼시절 홍디 스무 남은 적에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늘 메고 다니며 즐겨 찍었다. 얼마나 아꼈으면 고장 난 카메라를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고치는 것보다 새로 사는 게 더 쌀 것 같은 쓸모없는 고물인데 말이다. 날짜와 장소를 매직으로 메모해 둔 사진들도 앨범에 여직 간직하고 있다. V라인 탱글탱글하던 시절이 고맙게도 네모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빛도 바래지 않고 그대로.




@HONG.D 그리고 쓰고 찰칵



닮은꼴

[=]


폴라로이드 감성이 좋다. 손으로 그리는 수채화 그림들에 그 느낌을 담고 싶다. 홍디가 애정하는 폴라로이드와 핸드메이드 수채엽서의 닮은 꼴을 헤아려 본다.


하나. 세상에 단 한 장뿐이다. 소중지수+10000
두울. 인원수대로 찍고/만들고 나누어 가져야 한다.
세엣. 비스무리한 분위기로 찍고/만들어도 오묘하게 다르다.
네엣. 찍고 나서/그리고 나서 발색이 되기까지 기다림이 필요하다.
다섯. 찍을 때/그릴 때 조심스럽게 정성을 다한다.
여섯. 마무리로 한마디 손글씨를 더하고 싶다.


폴라로이드의 장당 단가도 무시 못하기에 찰칵 찍을 때 조심스러워진다. 차차차차찰칵 찍자마자 바로 확인하고 고를 수 있는 디지털의 연사촬영과는 결이 다르다. 손으로 그리는 붓질에 빠지고 보면, 디지털 드로잉과는 비할 수 없는 손맛이 매력적이다. 몇 초만에 복붙 하는 인쇄물과는 소중함의 정도를 어찌 비교하리오.


20년 넘는 세월 동안 실무자로 옷을 디자인해오다 보니, 아날로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도구와 방법의 변화를 몸소 체험했다. 과도기를 거쳐 이제 현장에서는 대부분의 패션디자인 업무를 컴퓨터로 해결한다. 2000년대 초반, 패션 잡지를 가위로 오려 맵을 만들고 손으로 종이 작업지시서를 그리던 막내 시절의 핸드메이드 감성이 그립기도 하다.



@HONG.D 그리고 찰칵


올겨울에 눈이 자주 왔지. 소박하지만 유럽의 시골 마을의 눈 오는 겨울을 그려보고 싶었다. 목재로 지은 집과 쌓인 눈, 밤하늘의 고요함에 잔잔한 피아노 선율 정도를 떠올렸다. 마무리로 한 마디 손글씨를 적고 싶어 자리를 비워두었다.



마무리

[-]


빈자리에 무얼 채울까. 이 즈음 새로이 한글캘리를 배우고 있어서 떠오르는 대로 끼적여보았다. 공들여 그린 그림을 망칠까 봐 연습 삼아 한 번 적어보았네. 이렇게.


@HONG.D 그리고 쓰고 찰칵


오우. 한글캘리만 따서 그림에 얹어볼까? 능숙한 복붙창작의 손놀림으로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오가며 그림과 글씨를 조합해 보았다. 크크, 미소 지으며 ‘이렇게 하면 다음엔 이 그림에 다른 글귀도 적을 수 있으려나’ 꾀를 내어보기까지. 허나 초와 분이 흐를수록 올라가있던 입꼬리가 팔자 주름을 기분 나쁘게 생성하고 있었다.


왜냐?
싫었다.


원하는 감성이 아니었다. 붓질을 하던 기분마저 망칠 뻔했다. 꾀를 낸 디자이너가 잘못했다. 홍디가 깨우쳤다. 몸소 경험을 해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거다. 결국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미소를 장착했지.


실력보다 취향대로 끼적이는
나의 디자인이다.
그림을 망칠지언정
나를 속일 수는 없다.


다시 그려도 똑같이는 그리지 못 할, 세상에 단 한 장 뿐인 그림이다. 지금 그린 감정을 더하여 손수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 엽서의 빈 공간을 한글 손글씨로 채웠다. 그리하여, 산골마을 아담한 집 한 채의 GPS만 한반도로 바뀌었네. 유럽은 다음 기회에.


손수 그리고 쓰고 찰칵 @HONG.D


손수 장작을 패라.
이중으로 따뜻해진다.

-헨리 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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