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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디 Jan 31. 2024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서태지 말고 하늘 가라사대

태지

가라사대


1992,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수록곡

여기 [수물수매]수채화브런치북 맞다. 난데없는 서태지와 아이들 등장에 아이러니한 분위기. 잠깐 그림 보며 우아하게 쉬러 왔는데 이게 뭔가 싶은가. 님아 잘 찾아오셨으니 들어봐 봐요. 여기에 홍디가 좋아하는 걸 막 밝힙니다. 결국 물맛 나는 수채화도 보시고 갈 수 있어요. 특별히 애정하는 그림을 소개하지요. 속닥속닥. 작가가 직접 들려주는 그림이야기로 함께 내려가볼까요호홍홍.


오늘 그림의 글거리는
‘기억’이다


기억나니. 문화대통령 서태지 <ㄱ나니> (2000, 서태지 6집 수록곡). 먼저 밝히고 보자면 중딩 홍디는 서태지를 ‘태지오빠’라고 불렀다. 학창 시절 누구나 좋아했던 스타가 있지 않은가. 마음에 담아 둔 스타가 가수든, 농구선수든, 교생선생님이든 간에.


라떼시절의 덕질은 지금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태지보이즈의 첫 번째 콘서트 티켓은 잠실 롯데월드몰 1층부터 몇 시간을 줄 서서 3층인가에 있던 악기점에서 샀다. 다음 앨범 공연부터는 제일은행에서 티켓판매를 했는데, 앞자리를 얻기 위해 9시 오픈 전부터 내려진 셔터 앞에서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 교복 입고 있던 소녀들은 학교에 갔겠지. 태지오빠 소식을 듣기 위해, 팬클럽 회장이 남기는 음성사서함의 비밀번호 2580을 꼬박꼬박 눌렀다. 비 오는 날 고작 서태지와 아이들 ‘사진만‘ 전시하는 야외 공원에서, 내 머리숱보다 액자가 젖는 것을 걱정하며 우산을 기울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한 이후에도 서태지와 아이들 기념사업회, 일명 ‘서기회’의 일원이었다. 사회단체 설립 신고를 하고 태지 정신을 기념하는 박물관을 세우는 게 목표였던 고차원적인 팬덤이었다. 가물한 머리를 쥐어 짜내 쓰는 팬심의 기억들이다.

 

대중에게는 ’서태지‘하면 강렬하게 기억된 음악 프로그램이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무대. 1992년 4월 11일 MBC <특종 TV 연예>다. 당시 네 명의 심사위원으로부터 10점 만점에 7.8점이라는 낮은 점수와 혹평을 받았던 장면을 잊지 못한다. 안방에서 드러누워 TV를 보던 중1 홍디는 그 무대에 몸도 마음도 벌떡 나동그라졌다. 다음 날 학교에서 만나 “어제 특종 봤어?” 하며 까르르 불타오르던 사춘기 소녀들의 감정은 몸과 마음에 고이 간직되고 있다. 아줌마로 살아가는 지금까지도.


아끼는 것은 기억이 되고
기억하면서 아끼는 것이다




하늘

가라사대


유치원 하원시간, 건순이가 엄마를 반기며 이야기를 건넨다.

“엄마, 엄마! ‘그거 아세요’ 하는 노래 알아?”

“무슨 노래? “

“제목이 ‘엄마아빠께’ 던가 그런데 몰라요? “

“응, 엄마는 처음 들어보는데? “

”유치원 졸업식에 발표하려고 오늘 배운 노래인데, 비밀이지만 엄마에게는 말해주고 싶어요. 엄마가 좋아하는 하늘이 나오거든. “

“아, 그래? 궁금하다. 건순이가 불러줄래? ”

“가사를 다 못 외웠어. 나 연습도 할 거야. 유튜브 틀어줘 봐요.”

영상을 따라 또박또박 반복 부르기를 하는 건순이 모습을 보니, 다음 달 있을 유치원 졸업식의 눈물바다가 벌써 파도쳤다.


그림아님. 사진임. @HONG.D 찰칵


건순이 추천곡을 품은 하늘 사진. 나의 보물=나의 가족들과 함께 했던 이 하늘을 뚜렷이 기억한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인증하며 찰칵하고, 그 사진을 오래 두고 보면서 잊지 않고 추억으로 머물게 한다. 하늘 즐기기 제철이던 그날, 그 시간, 그곳에 우리가 있었다.


“꼬마야 꼬마야 만세를 불러라. 꼬마야 꼬마야 땅을 짚어라. 잘 가거라.”

’그래그래, 잘 좀 가거라. 너희들끼리 놀아 보거라. 애미 잠시 하늘 보며 쉬자 ‘ 하며 찰칵거렸었지. 말은 이렇게 해도 우리 보물들만 오롯이 뛰고있는 광장에서 애미애비의 쓸쓸한 대화는 행복이었다.

“우리 애들 많이 컸다. 우리는 이렇게 늙었고.”




육퇴 후 잠이 안 오던 어느 밤, 사진첩을 보며 추억놀이에 빠져있다가 하늘의 기억이 떠올랐다. 주섬주섬 팔레트를 꺼내고 붓을 들었다.


기억이 추억이되고 회억하는 순간 @HONG.D


아끼는 기억을 그림으로도 남겨두고 싶었다. 그리는 동안은 그 순간을 그리워하며 추억에 잠긴다. 손안에 쥔 하나뿐인 그림을 고이 간직하며 소중한 날을 회억 한다. 그리는 시간은 또다시 회상할 수 있는 기록이 되고, 이는 ‘나’를 아끼는 일이다. ‘삶’을 살아하는 ‘사람’을 말이다.


좋아하는 것을 좋다고 드러내보자.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말자.
자신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일이다.


내꺼 아끼는 손길. @HONG.D 그리고 찰칵


이 글에 아끼는 것들을 담뿍 담았다. 소녀 홍디는 서태지를 좋아했다고, 줌마 홍디는 하늘과 그림을 좋아한다고 드러내 보았다. 이 하늘 그림은 묘하게 진한 애정이 간다. 수채화 연재브런치북 표지로 이 그림을 택했다. 취미 삼아하는 붓질에 대표작 같은 게 있을 리 없지만, 첫 연재북 커버의 배경으로 선택한 건 작가의 애정표현이다. 어떠한가. 애정 전선이 보이는가.


좋다고 속내를 드러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나조차 이 글을 쓰는데 질척이고 버벅거렸다. 지적하기가 쉬운 현실 안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티를 팍팍 내보자. 아이들처럼. 어른이 된 우리는 꽤나 노력이 필요하다. 각자의 방식으로 좋은 걸 꼭 기억하고 기록해 보라. [수물수매] 어떠한가. ‘볼매’지 아니한가.





[수물수매] 수요일마다 물드는 수채화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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