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냥 이래 끄적이기 있지
오늘 떠올린 글거리는 ‘찌끄래기’다. 찌끄래기는 ‘찌꺼기’의 방언으로, 사전상 ‘쓸 만하거나 값어치가 있는 것을 골라낸 나머지’를 뜻한다. 우아하게 배운 수채화는 아니라도, 그림 이야기에 찌꺼기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어딘가 탐탁지 않았다. 한 번 더 내려먹을까 싶은 커피 향만 나면 다행인데, 찡그려지는 음식 냄새도 풍겨서 찌꺼기는 끌리지가 않네. 결이 같은 처지가 느껴진달까 정감이 가서 ‘찌끄래기‘라는 사투리가 마음과 마침맞았다. 크리에이터 배지도 없는데 뭐, 마음대로 기냥 이래 끄적이기 있지? 부제에 뭣이 숨어있을까요호홍홍.
틈새 없는 하루들이 고단해 애증이 깊어져 가고 있었다. 감정이 지나치게 많아질 땐 계속 매달릴 수 없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급히 일상의 서울을 벗어나 한반도의 아래로 내달렸다. 쏟아지는 눈을 헤치며 고속도로를 나아가는 길, 두 가지 문구가 휘리릭 눈길을 끌었다.
하나. 노면결빙주의
두울. 속도회복하세요
그래. 제설차가 함께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노면결빙에 주의해야지. 얼어붙고 깨지기 직전인 심정도 주의하고 싶다. 전광판의 경고 문구가 운전대를 잡은 신랑보다 보조석에 앉은 나에게 꽂혔다.
그러다 터널을 빠져나와서인가, 오르막 차로가 끝날 때 즈음인가 눈에 스친 안내판. ‘속도회복하세요’. 교통안전을 위한 문구가 어찌 이리도 와닿을까.
그렇다. 어떤 일은 급히 서둘렀고 따라오지 않는 결과나 주변 인물들을 답답해했다. 다른 일은 느려터져서 허우적대고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길 지경이었다. 의식하지 못한 채 집착이 생기고 있었다. 살면서 누구나 집착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의 터널을 달리면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어렵지, 어려워.
우습지 아니한가. 그렇게 달려 도착한 곳은 허탈했다. 친절한 안내판 덕분에 어떤 광경이 있는 줄 알면서도 뿌연 안개에 둘러싸여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이 또한 경험이리라.
전망대의 포토스팟이 무안할 정도이면 티켓팅할 때 안내를 해주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갑갑한 속마음을 토해낸 듯 어찌 이리도 막막한가.
꾸역꾸역 감사거리를 찾아본다.
하나. 케이블카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며 안개도 통과해 보고 정상에서 못 볼 풍경을 보아서 감사하다.
두울. 합승 없이 한가롭게 우리 가족만의 케이블카 공간에서 오붓한 추억을 남겨 고맙다.
세엣. 맑은 날, 다음 기회에 재방문할 수 있는 핑계가 좋다.
네엣. 무엇보다 신랑과 함께 두고두고 곱씹을 64,000원짜리 안주거리가 생겼다. 가성비는 떨어졌어도 평생 씹어먹을 가심비 안개 안주.
에잇. 어찌하든 찌끄래기 심정이 함께 하는구나.
자, 이제 수채화 물맛 나는 이야기를 해본다. 홍디의 그림 찌끄래기는 이거다(오른쪽 사진).
수채화를 처음 배우게 되면 스승님의 견본처럼 색상표(왼쪽 사진)를 만드는 게 좋다. 색상명이 동일하더라도 브랜드마다 색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팔레트에 짜놓은 물감색만으로는 발색을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각 칼라별로 물과 물감의 농도를 조절하여 진한 5단계부터 연한 1단계까지의 그라데이션으로 표를 만든다.
자신만의 색상표를 만드는 일은 수고스럽지만 귀한 재산이 될 일이다. 처음 수채화를 배우러 온 수강생들에게 스승님께서는 꼭 색상표를 만들어보라고 추천하시곤 했다. 허나 딴따라 피가 흐르는 홍디는 곱게 말도 안 듣는다. 핑계를 댄다면 색상표를 공들여 만들어도 살펴볼 인물이 아니다. 매사에 미리 계획하는 J여사이지만 그림 그릴 때만큼은 그날 기분에 따라 조색하는 P가 흐르는 홍디다.
색상표를 대신한 애정의 찌끄래기들. 마음에 드는 칼라를 찾기 위해 붓을 꾹 찍어보기도 하고, 기법을 미리 한 번 연습해보기도 했다. 빈 종이가 빼곡히 채워져간 시간의 흔적들이다.
질척이는 성질의 주인이라 찌끄래기 종이들을 선뜻 버리지도 못한다. 급히 떠난 여행에서 잠시 짬이 나면 풍경을 그려볼까 싶어 종이 뭉치를 들고 갔는데, 찌끄레기들 몇 장이 달려왔다. 너희들도 콧바람 쐬고 싶었구나.
음지에만 있었던 부끄러운 역사의 찌끄래기들아, 주인님이 광합성해줄게. 시간과 손길이 찌든 찌끄래기들을 하늘과 함께 대우해 준다. 넘치게 쌓인 감정의 잔재들은 여행지에 두고 소중한 그림 찌끄래기들만 품고 집으로 돌아가련다.
인생 전반전에 좋아하는 일로 돈 벌기를 마치고, 후반전의 문턱에서 새로운 즐길거리를 만난 것만도 운이 좋다. 순전히 운으로만 그칠 것인가. 찌끄래기의 운명은 어찌 되려나. 기냥 이래 하늘이나 운수(雲水)를 끄적이고 그리다 보면 운수(運數)가 트일 날이 오려나.
축구도 인생도 후반 마지막 1분까지 어찌 될지 모른다. 연장전에 승부차기까지 해낼 체력을 키우기 위하여 팔레트를 펼치고 운수를 찌끄려보자. 못해도 그림 찌끄래기들은 탑을 이루지 않을까.
하늘수집가, 하늘바라기, 하늘전도사 홍디가 여행지에서 담은 하늘을 영상으로 전한다. 여행작가이자 자유인의 삶을 사는 ‘다카하시 아유무’의 말과 함께.
소중한 것을 깨닫는 장소는
언제나 컴퓨터 앞이 아니라
파란 하늘 아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