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에서 놀던 디자이너는 까봤다
###[간헐적 간식]은 여러 작가님들과 함께 쓰는 공동매거진입니다.###
징글징글 방학이다. 삼시 세 끼에 간식까지, 추위에 바깥활동도 없이 집콕하는데 어찌 소화가 되고 배가 고픈 것이냐. 왜 때문에 먹으면서 다음 끼니를 걱정하고, 장을 보고 또 봐도 먹을 게 없는 것이냐고라고라. 이런 울아들 엥겔지수 하늘 찔러싸는 소리가 절로 난다 말이다(무의미문장 주의. 애미심정을 토로하는 뜻 없는 헛소리입니다요호홍홍홍).
가만히 있다가 한숨이 한 가마니 될 테니 나서볼 궁리를 한다.
“가족구성원 여러분, 저는 점심을 먹은 후 도서관에 가 보렵니다. 예약한 책이 도착했다고 문자가 왔어요. 오는 길에는 맥도날드에서 간식 해결할 거유.”
“엄마, 저요 저요! 도서관 갈래요.”
“아, 맥도날드라. 뭐 먹지.”
“나는 불고기버거 먹어야지.”
도서관 가는 길에 맥도날드가 있어서 방앗간처럼 들르곤 했다. 배가 안 꺼졌어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드라이브스루로 ‘감튀+콜라’ 라랄랄라 기분 내며,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에 좋은 감정을 보태었다. 이 날은 밥을 든든히 먹었으니 책을 먼저 보고, 오는 길에 버거타임을 할 참이다. ‘선도서관 후맥도날드’ 동선도 괜찮더라. 도서관에서 촤촤촥 빠른 정리가 최대 장점.
“엄마, 아빠! 여기 제일 좋은 자리 우리가 맡아놓았어요!”
귀엽고 기특한 내 새끼들. 언제 저리 컸누. 뿌듯할 새라 케찹이 묻었네, 햄버거를 못 까겠네 금세 소란이다. 으흐으, 참자. 사리 나온다.
가족구성원들이 픽한 오후 간식 메뉴는 다음과 같다. 애비는 상하이버거, 애미는 더블치즈버거, 초딩 건만이는 불고기버거, 유딩 건순이는 맥너겟.
애미는 오늘따라 라떼시절이 떠올라 치즈버거를 추억의 스타일로 잡솨보겠다. 럭셔리하게 더블치즈를 택했으니 인테리어작업은 1층만 간단히 해보자. 버거를 감싼 종이를 고이 펼치고 버거를 열어 감자튀김을 올리고 케찹으로 예술혼을 불태워본다.
맥너겟에 목이 마른 지 환타를 들이켜던 건순이가 귀여운 토끼눈이 되어, 엄마의 얼굴과 손을 번갈아 본다.
“엄마, 뭐해요. 먹는 걸로 장난 치면 어쩌요.”
“건순아, 너는 처음 봐? 도서관 갈 때마다 엄마 맨날 저렇게 먹던데.”
건만이가 혼자만 알고 있는 듯 으스댄다. 애비는 고맙게도 애들 앞에서 애미에게 한 마디도 입으로는 내뱉지 않고, 눈빛으로 말하고 있다. 멋쩍은 애미가 먼저 궁금증을 풀어줘야지.
“아, 여보는 어릴 적에 햄버거 이렇게 안 먹었어?”
“어, 아니, 왜 그렇게 하는 거야…?”
정말 나만 아는가.
그만 모르는가.
어디 한 번 공개해 본다.
하나. 치즈버거 또는 더블치즈버거 세트를 주문하고 케찹을 여유 있게 추가로 받는다.
두울. 치즈버거가 두르고 있는 종이옷을 고이 벗긴다.
세엣. 버거타워의 꼭대기층 빵을 오픈한다.
네엣. 감자튀김 중에 길쭉하고 쭉 뻗은 아이들을 골라 패티 위에 나란히 눕힌다.
다섯. 꼬부라진 감튀는 케찹을 움푹 찍어 간간이 입에 넣으며, 케찹 한 봉은 버거에 양보한다.
여섯. 케찹을 휘리릭 그려준다. 여기까지가 타워 1층 완성이다.
일곱. 90도 방향으로 엇갈리도록 감자튀김+케찹을 2층, 3층…취향대로 층층이 쌓아간다.
여덟. 옥상층에 빵을 다시 올리면 셀프 수제버거 완성.
궁금하다.
햄버거 이렇게 누가 까봤나.
나만 까봤나.
안 까보셨던 분께는 치즈버거세트 주문을 살포시 추천드리며, 까보신 분들은 반가워서 우리 또 한 번 까러 갑시다요호홍홍홍.
사진 속 풍경 추억 돋으시는 분! 혹시, 오렌지족이셨나요? 역사 속으로 사라진 풍경이다. 강남 오렌지족 언니, 오빠야들의 근거지였던 압구정. 패피(Fashion People)들 가득한 횡단보도 앞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던 맥도날드가 국내 1호 점이다.
홍디가 햄버거 좀 까고 다니던 시절,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던 의상학과 98학번 여대생이었다. 동무들과 접선하던 장소가 압구정 로데오거리의 맥도날드 2층이었지.
의상학도라고 멋 낸다고 치장비 들지, 과제에 재료비도 꽤 들어가지, 의류매장 판매 아르바이트를 해도 주머니 사정은 쪼들렸다. 어렴풋한 가격으로 천 얼마 하던 치즈버거에 감튀+케찹의 타워를 2층, 3층 작업해서 한 입 베어 물면, 값비싼 타워버거 저리 가라였다. 너도나도 층층이 케찹 그림을 맛깔나게 그려대던 추억. 25년여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네. 시공간 초월한 맥도날드 2층에서.
예술도 먹는 것도 답이 있나. 취향이다. 흥.
누가 뭐라 해도 내 취향껏 감튀+케찹 타워를 쌓아 올릴 거다. 맥도날드의 치즈버거, 빅맥 등 코어메뉴가 전세계 매장 동일하게 긴 세월 메뉴판을 지키고 있는 게 멋지지 않은가. 나도 뭐 하나 하면 진득하게는 한다.
스물부터 50년 까면 칠순이네. 흑.
#초저가 셀프 수제버거 #디자이너가 추천하는 버거 까는 법 #까고 쌓아라 #본인은 오렌지족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