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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 Dec 30. 2020

이과생과 문과생의 자식 교육

너는 어떤 어른으로 자랄까


남편은 신소재공학과를 졸업하고 철강회사 입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국문과를 졸업하고 바늘 같은 취업 구멍을 한탄하다 구성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아무리 설명해도 서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채 연애를 마치고 접점이란 없는 성격을 장점삼아 원만한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남편의 성격을 '다 그런 거지'라는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내 성격은 '왜 저러지?'로 압축할 수 있다. '자기야, 나는 160도 안되고 자기도 작은 키잖아. 근데 애가 왜 렇게 크지? 설마 성조숙증 뭐 그런 걸까'하면 남편은 '별걱정을, 잘됐지 뭐~'하고 만다. 세상만사 무심한 듯한 남자와 아이 일에 대해서라면 온 촉각을 세우는 내가 적절한 하모니를 이루며 자식 키우는 일도 그럭저럭 해가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문득 경제교육을 해야겠다고 선언했다.

뭐? 경제교육?

아이를 낳고 남편 입에서 교육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다. 그는 내가 한글을 가르칠 때도, '초등 입학 공부'같은 책을 읽을 때도 일관되게 무심했으며 '초1 필독도서'를 검색하고 있을 때도 본인이 사랑하는 미니멀라이프를 위해 안 보는 책을 버리는 역할을 해왔다. 접점이 없어 평화로웠던 우리 가정에 드디어 분란이 싹트는 것인가!


남편은 아이에게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라는 책을 안겨주었다. 아이는 고작 여덟 살인데 '열두 살'과 '부자'란 두 단어가 못 미덥게 거슬렸지만 부녀가 나서서 무언갈 하는 모습이 기특해 보이기도 했다.


몇 달간 책을 읽히고 아이랑 책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남편은 갑자기 매주 수요일마다 아이에게 용돈을 줘야겠다고 상의를 해왔다. 남편이 일주일에 한 번씩 주겠다는 금액은 만원이었다.

만원? 만원이라니!

여덟 살 아이가 한 달에 4만 원을 갖게 된다는 건 내 기준에서 너무 많았다.  

"자기 딸은 백 원짜리 동전 다섯 개와 십 원짜리 동전 열다섯 개가 모이면 얼마가 되는지도 모르는 여덟 살이야. 그런 아이한테 만원을 주겠다고? 천 원이면 모를까." 남편도 지지 않았다. 자기 용돈에서 줄 테니 액수는 상관하지 말라는 투였다. 하, 내가 지금 돈이 아까워서 이러나.


나는 요즘 아이들이 다 그렇듯 모든 걸 쉽게 가진, 너무나 많이 가진 아이가 걱정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오히려 내가 답답하다는 듯이 책을 읽어보고 다시 생각하라고 했다. 내가 의견을 굽히지 않자 '푼돈을 주고 싶진 않아'라는 발언으로 오랜만에 나의 빡침버튼을 건드렸다. 둘째를 낳고 코로나가 닥친 탓에 일이 들어와도 번번이 거절하고 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외벌이가 되어버린 우리가 푼돈 절약 없이 생활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나? 그는 푼돈 좀 절약해보겠다고 매번 장바구니 금액을 고민하는 나를 자극하고 말았다.




남편은 아이에게 돈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어 했다. 천 원씩 받아서는 아이가 그 돈으로 계획을 세우고 꿈을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일찍부터 경제교육을 받고 돈 공부를 했더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을 거라고 말하던 남편은 딸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분명한 듯 보였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2020년 기준 최저시급은 8590원이다. 돈의 가치가 아무리 떨어져도 천원은 아이에게 결코 작은돈이어선 안됐다. 아이가 천 단위의 돈을 알기도 전에 만원을 알아버리면 돈을 쉽게 쓰는 아이로 자랄까봐 겁이 났다.

어쩌면 남편의 말이 맞을 것이다. 나는 욕심이 많고 돈 많은  캐릭터를 놀부라고 일컬었던 구시대 교육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지금 이에게 필요한 건 돈보다 음악과 책,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아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아이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나의 이런 생각 남편은 '그런 추상적인 것'으로 치부다. 그런 것들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돈에 대한 생각도 행복에 대한 기준도 서로 달랐다. 새삼  이렇게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잘 살고 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결국 남편의 양보로 용돈은 주 3천 원이 되었다. 애는 생각도 없는데 우리끼리 이럴 일인가 싶었지만, 아이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받는 만원, 이만 원의 용돈도 아이 이름으로 된 청약통장에 넣어주는 대신 직접 관리하게 하는 등 세부사항도 협의했다.



제법 쌀쌀했던 날, 남편은 재택근무 점심시간을 틈타 아이와 함께 은행에 가서 용돈통장을 만들어왔다.

그날 저녁, 봉투를 찾아서 하나 만들어줬는데 그 위에 (인생 최초로 딸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현금 삼천 원을 아 딸에게 건넸다.



이제 매주 수요일마다 용돈을 줄 테니 채원이한테 꼭 필요한 걸 사도록 해. 그것이 물건이 될 수도 있고, 다른 것이 될 수도 있겠지. 돈은 모으기는 힘들지만 쓰기는 쉬운 거야. 돈을 소중하게 여겨야 항상 채원이 곁에 있을 거라는 걸 기억하고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랄게. 아빠가.




정작 딸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편지를 읽고 난 내 눈은 촉촉해졌다.(아, 문과의 망할 감수성 같으니!)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역시 우린 자식의 행복 앞에 환상의 팀워크를 자랑하는 최고의 팀이었다.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씩 봉투에 용돈을 건네고 아이와 함께 은행에 간다. ATM기에 돈을 넣고 함께 잔액을 확인한다. 아이의 자산운용을 도와주기 위해 ETF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여러 플랜이 많은 듯 보인다.

 돼지저금통을 털어 통장에 넣은 아이의 저축액은 벌써 12만 원이 넘었다. 그걸 아이가 읽을 리 없기 때문에 남편은 단위를 가르치는 일에도 열심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고 있자니 삼천 원은 너무 했나 싶어 져 남편과 상의 후 3일 뒤, 아이가 아홉 살이 되면 매주 7천 원의 용돈을 주기로 했다.


문득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자랄지 궁금해진다. 아이는 매주 은행에 가는 의미를 과연 이해할까? 마찬가지로 내가 들려주는 음악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결국엔 도움되는 일이 아니더도,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어버려 의미 없는 시간일지라도 딱하나, 우리가 너를 사랑한다는 본질은 남을 테니 오늘도 각자의 방식으로 아이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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