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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 Jan 24. 2021

농산물 택배 안에 반지가 있었다!

껍데기가 뭐가 중요해


토마토 상자와 딸기바가지 사이에 지가 있었다. 둘둘 말아놓은 까만 비닐봉지를 벗기고 나니 노란 고무줄로 칭칭 동여맨 탁상시계상자가 나왔다. 그 속에 분홍 케이스를 열자 백금의 반지, 목걸이, 귀걸이가 등장했다.


며칠 전에 손가락 크기를 재는 쇠뭉치(?)를 보내셨던 아버님이 분명했다. 아니면 누가 딸기바가지 속에 이런 선물을 숨길 수 있을까.


곧장 아버님께 전화를 걸었더니 '내 니를 떠올리면서 골라봤다~'는 말을 남겨주셨다. 설마 아버님 눈에는 내가 이만큼 예쁘다는 뜻인가(!) 여자 마음 움직이는 건 작고 반짝이는 걸로 충분하다더니 액세서리에 전혀 관심 없는 내 마음도 팔랑팔랑대고 만다. 이미 선물만으로도 충분히 부풀어 오른 마음에 쐐기를 박듯 아버님은 사랑해~라는 말까지 덧붙이셨다. 무심한 농산물 박스 안에 보석 3종 세트도 모자라 사랑고백까 하시다니! 결혼 후 좀처럼 빨리 뛰는 법이 없던 안정적인 심박수가 라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아버님을 처음 뵈었을 때도, 결혼 후 시댁에 방문했을 때도 아버님은 한결 같으셨다. 수박 하나 못 잘라낑낑거리고 있던 나에게 '우리 집은 되는대로 하면 된다' '잘하는 사람이 하면 되는 기거든~' 시며 수박시원하게 썰어주셨다. 그해 여름, 그 수박은 신혼의 맛만큼 달콤했다.




남편은 자기가 태어난 곳을 가리켜 아마 우리나라에서 인구가 제일 적은 군일 거라고 말했다. 내가 자란 곳과 300km도 넘게 떨어진 곳, 살면서 그런 지명을 가진 곳이 있는 줄 까맣게 몰랐던 작은 마을과 인연이 닿아 우린 결혼을 했다.



첫 명절에 '어머니 몇 시에 일어나세?' 하고 물었더니 어머니는 조심스레 '니 내랑 같이 목욕 갈래?' 하셨다. 오래된 집이라 아무래도 씻기가 불편할 테니 목욕탕에 가자고 하신 것을 알고 망설이다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어머니의 기상시간은 새벽 네시였다.

네시니....! 그 시간에 자는 건 곧잘 해왔어도 일어났던 기억은 거의 없는데. 


그날 해도 안 뜬 4시 20분에 어머니를 따라 목욕탕에 갔다. 동네의 작은 목욕탕은 분명 24시간 영업하는 곳이 아닌데도 문을 열고 있었고 심지어 붐볐다. 명절이라 그런가? 이 동네는 도대체 뭐지? 그곳은 늦은 서울의 밤거리, 새벽의 네온사인, 도시의 마천루가 환상처럼 느지는 작고 고요한 곳이었다.


내가 새벽의 목욕탕에 넋을 잃고 있을 때 '하이고, 거 미용실 집 서울메느린가?' 하고 알은체를 해오는 분들까지 등장했다. 당황한 나는 알몸으로 엉거주춤하게 인사를 건넸다. 상도에만 있다는 등 밀어주는 기계를 감상하고 탕에 들어가서 부지런한 동네 할머니들을 구경하다가 어머니 손에 붙들려 등도 밀렸다. 부끄럽고 어색해서 자꾸만 작아지던 내 몸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어머님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휴 때는 또 왜 이렇게 많이 나와..)


'내는 제사 준비하러 가야되니께 니는 천천히 하고 오니라~' 어머니는 목욕탕에 나를 혼자 두고 종갓집 제사 준비를 하러 가셨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경험했던 시댁은 어색하고 낯설고 놀라운 상황의 연속이었다. 다른 문화와 환경이 생경하기도 했다. 게다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시댁의 문화중에는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것들도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불편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피곤하지, 시댁이 그런 거다.' 해주시던 어머니의 말씀 때문일까? 어머님은 시어머니와 자신의 며느리들 사이에서 적당한 완충역할을 하며 조금씩 낡은 문화를 몰아내고 세대교체를 시도하고 계셨다.


새롭고 젊은것에 마음을 열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어머님은 너무 멋있었다. 그뿐인가. 어머님과 아버님은 나에 대한 성급한 판단도 없이, 별다른 질문도, 충고도 없이 바라는 건 더더욱 없는 채로 그대로의 나를 가족으로 맞으셨다. 누군가가 나를 무해한 시선으로 보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경험은 처음이었다.


결혼 10년 차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두 분은 나에 대한 그 어떤 코멘트도 없으시다. 대신 늘 무언갈 보내주시고 안부를 물으신다. 시부모님이 보내주신 것들 중 포장이 그럴듯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무엇을 주시든 모두 다 진짜였는데 포장은 볼품없었다. 담고 있는 껍데기를 하찮게 여기는 삶의 태도는 오히려 그분들이 무엇을 가지셨든 더 빛나 보이게 만들었다. 그럴듯해 보이기 위해 애를 썼던 내 주위의 사람들과 지난 시간을 충분히 우습게 만들 만큼 멋진 가치관이었다.


남편과 소위 썸을 타던 그 시절, 나를 위해 들고 나온 남편의 빼빼로데이 선물상자 안에도 시부모님의 가치관이 담겨있었다. 남편은 그 상자 안에 신문지를 구겨서 얇게 깔아왔다. 그 아트박스에 가면 색색의 예쁜 포장재가 천 원 이천 원에 팔리고 있었는데 남편은 그것들 대신 상자 신문지를 깔고 각종 긴 모양의 과자들을 빽빽하게 채워왔다. 상자 안은 볼품없었지만 내용물은 넘쳤다. 낭비 없는 소비습관, 원칙에 철저한 상품 선택, 쓸데없는 지출을 줄이고 내실을 택한 상자에 마음이 동했다.



농산물 박스 안에 들어있던 반지는 그래서 더 귀하다. 손에 껴보니 빛났다. 과연, 아버님이 신상이라 귀띔해주신 것에 어울리는 디자인. 이것은 아마도 아버님의 가게에 있던 가장 예쁜 반지와 목걸이 귀걸이였을 것이다. 사랑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표현하는 것만큼 세상에 값진 일은 없다. 껍데기가 뭐가 중요한가. 나는 오늘도 그 집 남자들의 내실 마음이 동한다. 어머님의 사려 깊음에 때때로 감동한다. 무려 16년 전, 상자 아래 깔린 신문지를 비웃지 않고 남편과 결혼하길 잘했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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