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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 Feb 17. 2021

남편에겐 있고 나에겐 없는 것

사랑보다 깊은 그것


그때의 나는 분명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나 보다. 무슨 일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분노게이지가 수직곡선을 그렸던 것만은 분명하다. 한 3초쯤 아니 그래도 10초쯤은 고민했겠지, 그리고 냉정하고 차갑게 결정적 대사를 치고 말았다.


 '우리 헤어져!'


만난 지 일 년쯤 됐을 때의 일이었을 것이다. 이별의 장소로는 적절하지 않은 영등포역 개찰구 앞에서 뱉은 내 말에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은 머리를 크게 맞은 듯이 잠시 멍해있었다. 역사를 드나드는 사람들이 우리 사이의 분위기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바삐 걸음을 재촉하는 사이 그는 이내 정신을 차린 듯 나를 마주 보더니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커플링을 빼서 조심스레 내 손바닥 위에 올려줬다. 그리곤 나를 향해 90도로 인사를 하고 그동안 고마웠다나 미안했다나 지금은 기억도 잘 안나는 대사를 존댓말로 남기더니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간 거야, 지금.........?!


이별의 경험이 별로 없던 20대 초반의 나였지만 그래도 이건 예상 밖의 상황이었다. 붙잡기를 바란 것도 아니었으면서 어쩐지 약이 바짝 올랐다. 그때쯤 내가 읽었던 20대의 전반적인 지침서 같은 책에선 '잘 헤어질 수 있는 남자가 좋은 남자'라고 강조하고 있었다. 책에서 말한 깔끔한 이별, 그거 지금 이거 맞는데 그렇다면 잘 헤어진 거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집에 돌아오는 내내 도무지 혼란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원래 같은 말을 번복하고 (절대!) 그러는 사람이 아닌데 뒤돌아 가던 남편의 쓸쓸한 모습이 생각나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통화버튼을 누르고 모든 일을 없던 걸로 만들었다. 조금 전에 상처를 주고 아무렇지 않게 팔짱을 끼는 나를 남편이 이해 못 할 표정으로 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여자의 감정 기복에 대해 오빠가 뭘 알아, 대로 된 연애 내가 처음이랬나? 연애 다 이런 거야 오빠!' 당연히 모른척했다.


이별의 슬픔으로 어묵탕에 소주를 막 먹으려던 당시의 남편은 그것들을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값을 치르고 나와 더 이상 헤어질 수 없는 긴 인연에 다시 발을 들고 말았다.


문득 남편에게 '혹시 그 순간을 후회하니?'라고 묻고 싶지만 이제와 어쩔 건가. 어차피 진실은 남편만이 알고 있을 테지.



결혼 이후에도 나는 달라지지 못했다. 그러니까 전 세계 인구에 오직 4%에 해당한다는 인프피(infp)! 감정이 곧 인생 전체를 지배한다는 그 타입, 그게 나였다. 그나마 입금이 되는 사회생활은 놀랍게도 잘 해냈지만 이해 못 할 남편의 행동에 나는 때때로 불같이 화를 냈다. 그에 반해 남편은 숨 쉬는 돌에 가까웠다. 아무리 자극해도, 화를 내도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가 화가 나서 내뱉는 말이라곤 '나중에 후회할 말 하지 말자' 정도가 다였다.



mbti에 따르면 그는 팁(intp), 그러니까 공감능력이 벼룩의 간만큼도 없는 유형에 해당했다. 그는 타인 감정을 헤아리는 일에 서툴렀다. 감정과잉인 나를 당연히 이해 못했고 이런 이유로 인프피와 팁의 궁합은 무려 파국!!이었다.


그런데, 파국도 상대가 파이팅이 넘칠 때 가능한 일이었다. 내 상대는 부처도 울고 갈 평화주의자였다. 그는 모든 일을 그러려니, '쟤가 또 저러는구나'하고 말았다. 헤어지자는 말에도 정중히 인사를 하고 돌아섰던 남자니, 아무리 옆에서 굿을 해도 관심을 줘야 말이지. 결국 나도 제 풀에 지쳤다.



남편이 화를 내지 않는 모습을 처음엔 성격이라고 생각했고, 그다음엔 나를 사랑해서 이해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과 사는 날이 늘어날수록 점점 그 이유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운전대 앞에선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대는 뼛속까지 성격 급한 경상도 남자였고, 후배와 통화하는 모습이 너무 냉정해 낯설기까지 했다. 사랑이란 대전제도 좀 애매했다. 사랑이라면 나도 지지 않는데, 오히려 내가 더 사랑해서 이 난리인 것 같은데?



도대체 그에겐 있고 나에겐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남편은 그 무기 하나로 나를 철없는 아이처럼 한심하게 만들어 놓기도 했고, 감정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못난 인간처럼 만들어놓았다. 화를 냈다가도 '내 행동에 남편이 상처를 받았으면 어쩌지'하는 생각까지 더불어하느라 너무 피곤한 인프피 인간인 나는 내가 뭘 하든 동요 없이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남편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미안했다. 사는 날이 더해 질 수록 그의 무기가 뭔지 몰라도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마성의 남자야 뭐야 진짜!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내게 물었던 문장이 뇌리를 스쳤다. '나를 존중하긴 하니?' 사랑이니 성격이니 그런 게 아니었다. '존중' 그 두 글자에 그동안 꼬여있던 모든 순간의 퍼즐이 완벽하게 맞춰졌다.


그러니까 내가 '이 거지 같은 회사 더 이상 못 다니겠어! 반차 내고 산부인과 몇 번 갔다고 임신하고 유난이란 소리가 들려! 나는 당장 사표를 쓸 거야!!!'라고 분노에 차서 전화를 하면 남편은 '정말 화나겠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같은 대답 대신 '응,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해야지'라고 말했었다. 불과 수개월 전에 욕을 해댔던 회사를 향해 '자기야 나 아무래도 출근해야겠어. 이대로 있다간 산후우울증에 걸리고 말 거야!'라고 다시 출근한다는 의사를 보였을 때도 남편의 대답은 같았다. 그가 맞벌이 부모 밑에서 외로운 유년시절을 보내 전업맘으로 아이를 키워주길 바란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의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존중'은 결혼생활에 있어 마법의 키워드와 같았다. 완벽한 치트키였다. 높이어 소중히 대하는 일. 그를 있는 그대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면 세상에나! 화를 낼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게 한 번에 가능할 내가 아니었다. 마법의 치트키는 완벽한 이론일 뿐, 나는 여전히 감정의 노예로 산다. 차이가 있다면 적어도 스스로 유치하게 느낄 만큼 감정 컨트롤을 못하는 상황에서는 벗어났다는 것이다. 예전엔 사과를 하는 일이 자존심 상하는 거라 생각해 입밖에도 내지 않았는데 결혼 10년 만에 거의 사과 봇이 되었다.


'아까 내가 너무 감정적으로 화냈던 거 같아 미안해.'

한번 해보니 뭐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괜찮아, 하고 다.


생각해보면 '존중'은 사랑보다 더 넓고 깊은 것이었다. 사랑이 시간이 지나 깊이를 잃더라도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존중에 있었다. 연애시절부터 남편을 진중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그의 사랑이 다른 누구와 다르게 깊이 있었던 이유도 다 '존중'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였다.


모나고 뾰족한 나를 감싸 안아 이만큼 둥글게 만든 남편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결혼이라는 게 다른 사람이 만나 서로의 단점을 깎아 결국 둘을 비슷한 모양으로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쥐꼬리만큼 있던 남편의 공감능력도 지난 시간 많이 학습되어 이제는 기계적이더라도 위로의 말을 뱉을 줄도 안다. 그는 본디 마음은 따뜻한 남자였으니 기계적인 위로까지 보태면 감정의 노예는 감동받아 어쩔 줄을 모른다.


'오렌지주스 사 왔어. 아침에 기분이 별로인 거 같더라고'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오렌지주스 한 병을 내려놓는 남편이 기특하다. '와 이깟 주스에 기분에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다니, 완전 맞아! 천재다!' 감정과잉인 나는 주스 한병에도 감동을 받고 만다. 서로 닮고 있지만 아직까진 완전히 달라서 잘 사는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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