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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 Mar 03. 2021

엄마,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점집이 웬 말이란 말인가!



남편은 과묵한 편이지만 삼 남매 중 막내인 가 난다. 출생순위, 그건 숨길 수 없는 건가 보다.

'장모님, 회사 가기 싫어 죽겠엉~ 회사가 사람을 막 아휴 힘들게 해요. 그만둘까 봐~'

'아이구 우리 사위 힘들어서 어째! 그것들이 왜 사람을 힘들게 하고 그런데!'


리엑 만랩에 감능력은 더 높은 엄마 앞에서 저절로 속마음이 나올 만도 하지. 자주 봐서 이젠 진짜 엄마 같다는 장모님에게 요즘 너무 힘들고 지친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자마자 엄마는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며 남편을 위로했다.



아마 남편은 이 대화를 잊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대화를 곱씹고 곱씹었을 사람이다. 밥을 하다 말고, 청소를 하던 도중에도 회사 가기 싫어진 마흔 살 사위를 걱정했다. 사위 걱정을 하다 보니 딸 걱정도 되고 보물 같은 손자 손녀 걱정까지 이어졌겠지. 그러다 흘러 흘러 점쟁이한테 찾아갈 계획까지 세웠다고 엄마는 말했다.



펄쩍 뛰는 나를 향해 엄마는 그 점집이 인기가 많아서 5월은 되어야 순서가 돌아온다고, 아직도 먼 일이라며 한발 빼는 동시에 얼마나 용한지 얼굴만 보고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술술 읊어댄다고강조했다. 한 집을 찾아 예약 마친 뿌듯함이 전화기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하긴, 엄마가 점을 보겠다고 나선 게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내가 열아홉이던 그해 나는 수능을 망쳤다. 시험지를 앞에 둔 내내 배가 아프고 식은땀이 났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도 안나는 시간이 흐른 뒤 받아 든 수능성적표는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충격이었다. 그때, 집전화 플러그를 뽑고 나만큼이나 기운 없어하던 엄마는 철학관이라고 쓰여 있던 간판 아래로 내 손을 끌었다. 여기가 아니라 담임을 만나야 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는 이미 사주팔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철학관의 아주머니는 알아보지 못할 글씨로 사주를 풀이했는데 사주를 보는 건지 신점을 보는 건지 궁금하게 아주머니 등 뒤로 당이 무섭고 낯설게 서 있었다.


내가 무섭고 낯설지만 신기한 당 구경에 한창일 때 아주머니 드디어 입을 뗐다. '원래 이대를 갈 사준데'라고.


이대라고?  아줌마 완전 가짜다. 엉터리! 내신성적이 좋은 편이었지만 그건 다 시험날짜가 나온 후 치밀하게 짜서 실천한 벼락치기 분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대라니. 나는 이대를 갈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속내를 알 리 없는 철학관 아줌마는 멈추지 않았다. 이대에 이어 의사, 판사, 변호사, 회계사 같은 직업을 신나게 나열하더니 그런 남편을 만나게 될 거라고 장담했다. 사주가 좋아서 그렇다나. 엄마의 얼굴은 순식간에 밝아졌다. 짙은 시름이 드리워져 있던 얼굴을 어떤 명의도 이처럼 단박에 밝게 만 순 없었을 것이다.


점쟁이는 나에게 20대 초반에 남자를 잘 못 만나서 고생할 수도 있겠다는 말을 추가로 남겼지만 엄마 귀엔 들리지 않는 듯했다. 들어온 나쁜 운을 풀어주는 제사를 지내는 게 어떠냐는 철학관 아줌마의 영업도 노련하게 거절하며 엄마는 '나의 좋은 사주와 남편복'에 거웠던 걱정훌훌 털어냈다. 후에 의사 판사 호사 신  회'사'를 다니는 남자를 데려올 걸 까맣게 모르고, 10년 뒤 그놈의 회사가 문제 될 건 더더욱 모른 채로 우리는 또다시 실수든 불운이든 실패든 그 어떤 시기를 지나 꾸준함으로 인생을 대하 사는 일에 몰두했다.









5만 원 내면 다 봐준다는데, 여덟은 너무 많은가?


말리는 내 말은 들어오지 않는지, 엄마는 예약 날짜가 아직 멀었다면서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마친 듯 가성비를 고려한 적정한 인원을 고민하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물론이고 두 딸과 사위에 손자 손녀의 앞날까지 내다볼 작정이었나 보다. 무일푼으로 시작해 노후 걱정 없는 인생을 만들기까지 그녀가 얼마나 절박하게 살았고 틀림없이 계산했으며, 매번 성실하게 실천했는지 내가 잘 알았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습관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돈이 많아도 절약하고, 매번 자신의 소비를 의심했던 엄마의 지난 인생. 그래, 한 명의 앞 날만 물어보고 일어선다면 그건 엄마가 아니지. 그렇고 말고.




'애들은 사주 보는 거 아니래. 그리고 5만 원에 너무 많은 거 아니야?'


가지 말라고 하면서도, 그 돈으로 맛있는 거나 사드시라고 얘기하면서도, 어쩌다 보니 엄마와 함께 합리적인 인원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래, 우리랑 너희 둘만 봐야겠다!

엄마는 드디어 고민을 끝낸 듯 경쾌하게 말했다.



이제 5월이 되면 알 수 있단 말인가? 우리조차 결정하기 전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정해지지 않은 우리의 미래를!


이미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통해 내게 많은 것을 주었다. 아무리 어려운 시련도 지나가기 마련이라는 것을, 원하는 바가 분명하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분명한 진리를 일깨워줬다.


확실하지도 않은 앞날을 미리 안다는 것이 얼마나 시시한 일인가. 오히려 나는 남편과 내가 성실하게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뿌듯해하고, 함께 변수들을 고려해 단단한 삶을 이뤄나가는 지금이 좋았다.


럼에도 불구하고 점을 보러 가는 엄마의 발걸음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즐거운 60대, 신나는 인생 2막 만을 남겨둔 엄마에게 나는 열아홉에도, 서른여덟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걱정거리였다. 쓸데없는 줄 알면서도 얼마의 위로를 얻기 위해 엄마가 또다시 점집을 찾는 이유가 나 때문이라니!



'엄마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점집이 웬 말이야!!'라는 말을 삼키고 알지도 못하는 그 점쟁이가 진짜 용하기을 바라본다.

남편과 내가 알아서 잘 살 거라는 걸, 내가 유약해 보여도 큰일 앞에선 대범하고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는 것을, 남편은 무얼 해도 잘 해낼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챌 만큼 소문대로 용하기를. 그래서 오래전 그날처럼 엄마의 근심이 훌훌 날아기를 나는 기도(!)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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