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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 Mar 09. 2021

결혼을 하고 내가 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것

할머니 미안해요.




엄마가 카톡을 보내왔다.


<할머니한테 전화 좀 해. 할머니가 니 목소리 듣고 싶다면서 나한테 전화했어. 니 생각하니 목이 멘다면서 울컥하시더라. 가끔 전화 좀 해>


생생한 장면 묘사와 잔소리가 빈틈없이 교차되는 카톡을 보자마자 쿵, 하고 마음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언젠지 기억도 안나는 할머니와 마지막 통화에서 '너는 모르지. 할머니 이제 많이 늙었어.' 하시던 게 보고 싶다는 신호였는데 그 시그널을 분명히 읽었으면서도 할머니를 뵈러 가기는커녕 전화도 안 한 손녀를 할머니는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었다.



당장 전화를 해야 마땅한데 이상하게 통화버튼을 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둘째가 낮잠 자면 전화해야지, 하고 생각했으면서 아이가 잠이 들었을 때는 큰아이를 살폈다. 어느새 시계는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큰 집에 혼자 남은 할머니가 종일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지자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 통화버튼을 눌렀다.


니, 하고 참 오랜만에 불러보았다. 복지관에서 전화가 왔는데 그 사람 목소리가 내 목소리랑 너무 똑같아서 하마 타면 내 이름을 부를 뻔했다고 할머니는 얘기하셨다. 나도 살다 보니 너를 매일 생각하고 사는 건 아니라고, 잊고 잘 지내겠지 하고 사는데 별안간 그 목소리를 들으니 할머니 안에 있던 그리움이 터져 나오더라고, 널 만난 지가 너무 오래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그리워 눈물이 나오려 했다는 말이 너무 솔직하고 생생한 진심이라 죄송했다.


'맞아, 할머니 내가 로나 때문에 추석에도 설에도 안 가서 우리 너무 오래 못 만났어요.'나는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말하려고 애썼다. 내 마음은 어느 때보다 어두웠고 내 신경은 온통 딸에게로 쏠려있었지만 오랜만에 통화하는 할머니에게 그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2학년이 된 딸아이는 지난주부터 매일 학교에 등교하기 시작했다. 1학년 생활을 너무 잘 해온 데다 사교성도 좋은 아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아이 입에서 '엄마 애들하고 친해지기가 쉽지 않네.' '내가 화장실 가는 것도 포기하고 저 멀리 앉은 친구한테 가서 말을 걸었어.' 같은 말을 듣는 순간 조금씩 아이의 학교생활이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작년까지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학생수가 적어 300명 미만인 학교에 들었었다. 올해 동네에 대규모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며 학년마다 반이 다섯 반 이상씩 늘었다. 반 아이들 모두 친하게 지냈던 작은 동네의 학교 교문에 사람이 바글바글한 게 너무 어색할 정도였으니 아이도 혼란스러웠던 걸까. 누구와도 잘 지냈던 아이는 올해 누구든 같은 반이 되어도 상관없다고 말했는데 같은 반이 되었던 친구가 새 학기를 앞두고 전학을 가버리자 아는 반친구가 하나도 없는 모양이었다.



앞에 앉은 친구에게 가서 말을 걸어봤지만 그 아이는 이미 친한 친구가 있더라, 같은 말을 아이는 별 뜻 없이 한 걸 수도 있는데 신경이쓰였다. 학교가 너무 재밌다면서도, 친구 이야기를 달리 꺼내지 않는 아이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부모의 불안을 아이는 귀신같이 읽는다. 내가 걱정하는 것을 알면 아이가 의기소침해질까 봐 아이의 마음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아의 학교생활을 알아보려는 내 노력이 눈물겨웠다. (진짜!)


'그래,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아직 새 학기니까.' 그 친구들이 아니더라도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 아파트 단지 안에 친구들과 아이는 잘 지냈다. 하교 후 놀이터에서 한 시간씩 놀다 들어오니까 괜찮겠지.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야,라고 마음을 비웠던 날. 걱정은 더 심해졌다.


아이가 잘 노나 창을 열고 놀이터를 내려다보는데 터덜터덜 놀이터를 가로지르는 아이가 보였다. 엄마는 다 안다. 아이가 슬프구나, 지금 상처 받았구나. 멀리서 보이는 정수리와 걸음걸이만으로도 나는 알 수 있었다. 엄마가 내려다보는 것을 모른 채 딸은 내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하는 목소리 벌써 눈물 차 있었다. 작년까지 늘 붙어 다녀 단짝이던 친구와 다른 반이 되면서 알게 모르게 아이들 사이가 벌어지는 것 같았다. 아홉 살은 소속감을 아는 나이니까. 별거 아닌 걸로 다투고 서운해하면서 자라는 과정을 아이는 견뎌야 했다. '괜찮아, 친구가 오해한 거야. 니 탓이 아니야.' 아이를 위로하고, 집으로 들어온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챙겨주고 같이 보드게임을 하느라 할머니와 통화하는 시간이 미뤄지고 말았던 것이다.


건강하시냐는 내 말에 할머니는 늙으면 그래 힘이 없고 그래. 특별히 아픈 데는 없지만 기력이 없지. 그래도 목소리 들으니 좋다. 자주 통화하자고 하셨다. 할머니의 말은 글 같고, 할머니의 글은 말 같았다. 언제까지고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들을 할머니는 종종 긴 편지로 전해주었다. 우표가 붙은 두툼한 편지봉투를 받았던 날, 한 장을 읽고도 아직 이야기가 가득한 편지가 나머지 한 손에 들려있었을 때 내가 느꼈던 행복감을 세상에 다른 누구도 느껴본 적 없겠지. 그런 사랑으로 할머니는 나의 유년시절을 채워주셨다. 대학시절 소설창작론 시간에 썼던 나의 첫 소설 주인공은 할머니였다.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커다란 집에 남아있을 할머니를 생각하면 나는 이따금씩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런 마음을 담아 나는 소설을 한편 완성했었다.



결혼은 이전에 몰랐던 소중한 것을 내 손에 들려주는 대신,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내 삶 밖으로 밀려나게 만들기도 했다. 10대와 20대 매일 같이 몰려다니며 죽는 날까지 언제고 희로애락을 함께 할 것 같았던 친구들이 그랬고, 마음에서 누구보다 가까이에 있던 할머니가 그랬다. 아내와 엄마, 워킹맘, 다둥맘, 같은 수식어들 사이에서 나는 주파수를 바꾸듯 역할에 몰입하기 바빠서 결혼 이전에 내가 사랑하던 많은 것들을 잃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란 소설 말미에 서유미 작가는 '삶이 지속된다는 것은 무언가를 천천히 잃어가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그걸 알아가는 게 슬프기만 한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라고 적었다. 그 글을 읽고 나는 내가 결혼을 한 후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초연하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그런데 유년시절로부터 멀어진 내 삶에서 흐릿해지고 있는 것들에 할머니 있었다니.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으면서도 선연하게 드러나자 당황스러웠다.


할머니는 그런 것쯤은 다 알고 있다는 듯 통화 내내 담담했다. 나를 배려하는 할머니가 여전히 너무나 어른이라서, 내가 그 앞에서 아직도 철없는 손녀이기만 해서 여러모로 마음 쓰이고 죄송스러운 통화였다. 나는 꼭 지킬 생각으로 전화를 자주 하겠단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러나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날이 따뜻해지면 갈게요. 할머니. 통화를 끊기 전 남긴 그 말만은 너무 가벼워서 내가 좀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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