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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 Feb 08. 2021

결혼생활에서 해서는 안 될 일

효도는 셀프, 비교도 금물!



동생은 꼭 일 년 전에 결혼을 했다.


언니, 나 이제 남자 얼굴은 그만보고 형부 같은 남자를 만나야겠어!! 더니 (, 형부 얼굴이 어때서...!! 나 얼굴 보고 결혼한 거야 왜 이래?!) 성격 좋고 자상하기까지 한 친구를 만나 깨 볶는 신혼생활이 한창이다.


동생의 결혼 후, 둘의 풋풋한 신혼생활은 주로 엄마를 통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엄마의 말솜씨는 어찌나 맛깔난지 지난 이야기도 눈 앞의 것처럼 생생하게 만다. 엄마가 즐겨 쓰는 의성어와 감탄사로 버무려진 문장들을 들으며 웃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부가 재택근무인 줄 모르고 출근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나 역시 웃고 말았다. 허탈함까지 생생하게 전해줘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엄마는 제부 소식을 왜 이렇게 잘 알아? 30년 넘게 지켜본 동생은 미주알고주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퇴근하고 방으로 들어가기 바쁜 동생에게 오죽하면 부모님이 하숙생이란 별명까지 붙여줬을까. 엄마는 동생을 대신해 제부가 매주 금요일마다 빼놓지 않고 전화를 한다고 칭찬했다. 별로 할 말도 없을 텐데 매주 전화를 하며 안부를 묻고 소소한 소식을 나누는 모양이었다.  일이 얼마나 어려운 지 알기 때문에 제부가 새삼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엄마의 칭찬에 나도 말을 보태며 둘이 아낌없이 제부를 치켜세우고 전화를 끊고 나면 나는 혼란스러운 양가감정 앞에 놓여있었다. 양가감정이 너무나 입체적이어서 더 혼란스러웠다.


그러니까 일단 남편이 떠올랐다. 아이들과 내가 친정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을 때면 다가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넬 법도 한데 소파에 앉아 모른 척, '나는 여기에 없다'는 아우라를 온몸으로 뿜으며 핸드폰에 얼굴을 묻고 있는 우리 남편 말이다.(그러게 자기 왜 집에서 속옷만 입고 있...)


하지만 중요한 건 남편이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얄밉게 느껴졌 남편에게 나는 돌연 미안해지고 마는 것이다. 전화라니 과연 내가 그 분야에서 할 말이 있긴 한가?


결혼 초, 나는 시댁에 전화를 하는 일이 불편했다. 시부모님을 잘 모르는 서먹한 상태에서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는 스스로의 모습이 너무나 어색하고 불편했던 것이다. 가깝진 않았지만 시부모님은 훌륭하신분들이어서 나는 그분들이 인간적으로 좋았다. 내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싫어하는 마음처럼 결국 숨길 수 없는 것이어서 매일같이 전화를 하거나 내 마음을 애써 꾸미지 않아도 나의 진심이 잘 전해질 거라고 믿었다. 이런 이유로 굳이 전화를 안 했었다. 지난 10년간 내가 말이다.


 그 결과 어머님은 전화만 하면 깜짝 놀라시며 '아이고 아가, 어쩐 일이고??!!'라는 문장부터 내뱉으신다. 어머님의 억양과 문장이 발음되는 속도로 봐서 앉아있다가 화들짝 놀라 일어나신 것 같다. 머쓱해진 내가 '요 며칠 날이 추워서 괜찮으신가 하고요' 하면 그제야 여유를 되찾고 '우리는 잘 있다. 느그 별일 없으면 됐다~.' 하신다.  자연스럽게 굳어진 무소식이 희소식인 상황을 잘 못 됐다 여겨본 적이  딱히 없었는데 제부의 꾸준한 전화 이야기를 듣자 나의 마음은 경상도 시댁 어귀를 씁쓸한 마음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남편은 삼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결혼을 하면서 내게는 자연스럽게 형님도 생겼다. 고부갈등이 심한 집도 많다지만 며느리들끼리 기싸움으로 피곤한 집들도 많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온 터라 나름 긴장 한 채 형님을 만났던 기억이 난다. 형님을 세 번쯤 만났을 때 나는 알게 되었다. 이 분은 나와 그릇이 다른 사람이구나! 나는 형님처럼 절대 될 수 없으며 그 대상이나 행동이 무엇이든 형님만큼 하고 사는 일은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형님은 내게 전화해 '동서, 니 임신 막달이 다 돼가는데 아무래도 내려오기 힘들겠제? 내 어머니한테 얘기할게. 여기 신경 쓰지 말고 쉬아라~' 같은 말들을 먼저 해주는 사람이었다. 고맙다는 내 말에 당연하다 해주며 순수하게 자신의 삶과 가족을 사랑하는 형님이 나는 너무 좋았다. 남편의 집안에 나와 같은 입장을 가진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동질감은 내게 굉장한 힘이 되어주었고, 막내며느리란 포지션이 그나마 다행인 내가 서툴게 실수를 해도 웃어 넘겨주형님이 그저 고마웠다.


멀리 떨어져 있다는 핑계로 시댁에 소원한 나와 다르게 형님은 시부모님과 한동네에 살며 종종 딸로 오해받을 만큼 살갑게 지내고 있었다. 딸 같은 며느리는 없다지만, 님을 보면 그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가 미용실 자리를 옮기셨을 때 형님은 눈부신 손재주를 발휘해 셀프인터레어로 미용실을 말끔하게 꾸며놓았다. 아프실 때 병원에 늘 동행하고 매일같이 얼굴 보며 살갑게 안부를 묻는 형님을 보고 남편은 '형이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고 했다.' 그때 나는 남편의 부러움을 조금도 의식하지 못한 채 열렬히 동의했었다. '당연하지! 형님 같은 사람을 어디서 만날 수 있겠어.' 어머님은 내가 며느리복이 참 많다는 말을 종종 하셨는데, 그 며느리복의 8할이 형님 몫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내가 바보는 아니었다. 님은 칭찬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니까 언제나 기꺼이 그 칭찬에 내 마음도 보탰다.







내 부모에게 잘하는 일은 당연히 나의 몫이다. 배우자에게 내 몫의 효도를 바라는 순간 관계에 틈이 생긴다. 그러나 인간이란 얼마나 간사한지 막상 부모와 자식, 며느리와 사위라는 관계 얽히고 나니 우자도 내 부모에게 잘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고 마는 것이다. 나는 이제야 그것을 알아차렸지만 남편은 지난 10년간 천진하기만 한 나의 며느리 생활을 지켜보며 때때로 서운한 감정이 들진 않았을까 마음이 쓰였다.


남편은 결혼생활에서 타인과의 비교는 금물이며 효도는 셀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나에게 그 무엇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비교 그것은 전쟁의 서막이므로) 그러나 한편으론 형님과 나를 의식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비교하게 되는 상황에 자연스럽게 놓였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서로에게 뭘 바라지 않았어도 지난 결혼 10년간 우리가 얼마나 좋은 사위와 며느리였는지를 생각해보면 나는 이대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갈 때 장인 장모님도 모시고 갈까? 물어주는 남편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채널을 돌리다 관심도 없는 주말드라마에 한동안 시선을 주는 이유가 장모님과의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형님 비할바는 못되지만 10년간 자연스럽게 시부모님과의 거리를 좁혀온 나 또한 '요즘 날씨가 쌀쌀한데 어머님이 운동하실 때 입을 긴 패딩이 있으셨나? 떠올리며 온라인쇼핑몰 사이트에 접속해 택배를 보낼 만큼 서로의 인생에서 서로가 중요해지고 가까워졌다. 이 정도면 나도 꽤 괜찮은 며느리가 아닐까.



타인에게 자극을 받아 내가 좋은 방향으로 바뀐다는 것은 마땅히 좋은 일이나 나는 여전히 마음을 넘어 애쓰는 관계는 장기적으로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양가 부모님들은 마치 한입처럼 늘 같은 말을 하시지 않았던가, 너희만 잘 살면 된다. 너희가 잘 사는 게 효도라던 그 말씀. (대체 뭘 걱정하시는 건가요? 응?) 재치있고 포용력이 큰 남편과 밝고 천진한 나의 매력을 담아 가정을 따뜻하게 일구는 일, 아무리 생각해도 결혼생활에선 그것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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