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을 떠올리게 한 책 '모순'
안진진의 남편 찾기 프로젝트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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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은 무려 132쇄를 찍은 책이자 양귀자 선생님이 육아를 하며 매일 30분씩 할애해 완성한 소설이라고 한다. 20대에 분명히 읽었는데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이번에 재독 하게 되었다.
이 소설에 대해 남아있는 흐릿한 기억은 주인공 안진진이 어떤 남자와 결혼을 하느냐의 기로에 놓여있다는 단편적인 사실이었는데 놀랍게도 시간이 흘러 이 책을 읽으니 엄마가 떠올랐다.
내가 어린 시절 이모는 정원이 있는 신사동 2층집에서 살았다. 압구정 현대백화점에서 장을 보고, 집에 놀러 갈 때면 피부관리사가 이모의 얼굴을 마사지해주고 있었다. 그에 반해 우리 엄마는 ‘모순’ 속에 안진진의 엄마와 같은 뽀글뽀글한 파마머리를 한 채 같은 동네의 작고 조악한 집에서 살았는데 그건 거침없던 웨이브만큼이나 당시 엄마의 삶이 퍽퍽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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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또한 이모처럼 안정되고 풍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었으나, 삶이 평탄하고 시련이 없어 천진하기만 했던 엄마는 남자를 평가하는 기준이 오직 외모뿐이었고 하필이면 가난한 집 장남인, 그러나 얼굴만은 대단히 잘생긴 연하남에게 반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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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서울에 있는 아빠를 만나러 가 다음날까지 소식이 없는 일이 빈번해지자 외할아버지는 엄마의 식탁의자를 빼 버리면서까지 반대의 뜻을 명확하게 밝혔지만 결국 군대도 다녀오지 않았던 연하남과 엄마를 결혼시키는 걸로 둘째 딸의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뜻을 함께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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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과 함께 엄마는 입식부엌의 식탁에 앉아 차려주는 밥을 먹던, 돈이라면 얼마든지 많아서 계산할 일이 없었던 인생 1장을 끝내고 가마솥에 불을 떼서 직접 밥을 짓는 인생 2막과 함께 시집살이를 시작한다. 할아버지가 엄마를 보기 위해 친가에 갔더니 엄마가 마당 한가운데서 펌프질을 하고 있어서 수도를 놔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엄마에게 시집갈 때 타이머신을 타고 갔던 거냐고 물어야 했다. 사랑만 했지 계산은 할 줄 몰랐던 엄마의 시련은 나를 낳으면서 더 깊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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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자신이 사랑했던 연하남이 대기업에 입사해 경제적 안정을 이룰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을 인내심 있게 참으며 살아야 했다. 천진했던 얼굴을 지우고 자신을 속이는 삶에 맞서 의심하고 확인하면서 말이다.
얼마 전, 필리핀으로 이사를 한 동생이 자신의 집에 함께 살게 된 내니에 대해서 말했다. 엄마와 나, 여동생까지 셋만 있는 채팅창에서 동생은 빈부격차가 너무 심하다면서 같이 살게 된 내니가 우리나라돈으로 환산하자면 500원이 없어서 약을 못 산다고 해서 돈을 빌려줬다는 말을 전했다. 그 말에 놀라 안타깝다는 말을 써넣고 있던 나와는 다르게 엄마는 수식어도 없이 간결하게 '수작'이라는 두 글자를 썼다. 나는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엄마의 지난 삶의 모습이 묻어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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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책 <모순> 속에서 시련 없이 완벽한 인생을 살았던 이모는 괴로운 생을 산다. 오히려 온갖 풍파를 겪어내는 안진진 엄마의 인생이 묘하게 생기가 넘쳤던 것은 삶의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부모님의 인생을 돌아봐도 책 속의 문장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늘 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내게 가르쳐주었다’는 글귀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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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가난했기에 둘이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야 했고 바닥부터 시작해 일궈나가는 기쁨을 맛보며 삶의 행복과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안진진의 이모처럼 시련 없는 인생이란 있을 수도 없겠지만, 그런 인생이 얼마나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결국 살아가기 위한 원동력은 결핍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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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진을 보며 한 사람을 만드는 환경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 엄마는 부유했던 시절과 가난했던 결혼초가 혼재된 탓에 결론적으로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나의 직업선택에 영향을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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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가 중학생이 되도록 국영수 학원에는 보낼 생각을 안 하면서도 피아노는 계속 가르쳤다. 선생님이 안타까운 얼굴로 내가 피아노에는 진짜 소질이 없다는 말을 했음에도 엄마는 천진하게 다음 달 학원비를 쥐어주고 학원을 나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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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이 중산층 대열에 끼지 못했던 나의 초등학생 시절에도 금난새가 이끄는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기 위해 예술의 전당을 찾았던 기억, 미술관과 박물관에 나를 데리고 다녔던 것을 생각한다면 내가 돈도 별로 못 버는 문화예술 분야 종사자가 된 데에는 문과밭 친가 DNA가 크게 한몫했겠지만 나머지 절반은 예체능을 시킬 것도 아니면서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게 해 준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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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나는 부모님이 시련 속에서도 자신들의 인생을 사랑하고 단단히 일구어냈던 과정을 지켜보며 컸다. 단칸방에서 시작해 부의 수직상승을 이루는 모습을 생활로 겪으며 목표를 향한 희생과 성실을 체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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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돈이 별로 없을 때에도 짜장면 외식으로 기분을 내고, 결혼기념일엔 꽃을 선물하고, 종교도 없으면서 크리스마스에는 트리를 들여놓았을 정도로, 부모님은 철없는 낭만을 자랑했는데, 생각해 보면 그런 마음으로 살았기에 어떤 시련은 시련이라고 느끼지 않고 지나칠 수도 있었던 것 같다. 덕분에 나 역시 낙관과 밝은 면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었던 걸 생각한다면 시련 앞에서도 행복하고 책임감 있게 살아준 철없었던 두 사람에게 감사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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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니 우리 집에서 자라고 있는 안진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집 안진진들에게 나는 어떤 부모일까, 하고 고민해 보며 얼마 전 너무 열심히 살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안진진들이 매일같이 알게 모르게 나를 평가하고 나의 판단을 생활로 받아들이며 교훈 삼아 자랄 것을 생각하니 더 이상 대충 살 수 없는 조금 난처한 입장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