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홍철 Jun 24. 2022

구마겐고 건축산책, 감수자의 말을 썼습니다.

구마 겐고의 건축 만화

건축책 한 권을 감수했습니다. 일본 건축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편집자인 미야자와 히로시가 쓰고, 번역가인 김현정 님이 번역한  [구마 겐고 건축 산책_그의 건축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입니다. 출판사는 북커스입니다.

감수자의 말

 신은 디테일 안에 있다'고 니체를 따르던 미스 반 데어 로에와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현대 건축 개념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르 코르뷔지에의 굵직한 모더니즘에 등을 돌린 구마 겐고는 한 때 파격의 길을 걸으며 보란 듯이 모더니즘을 깨부수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모르게 모더니즘을 잘게 썰어낸 다음에 다시 조립하고 배치해서 아주 자연스럽게 다시 모더니즘을 기만한다. 거기다가 그는 전통문화를 건축에 여실히 담아내면서 일본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고 조용히 파격을 이어 나가고 있다. 이 책에서는 구마 겐고의 성향을, 격식을 깨뜨리는 '의외성'에서부터 드러나지 않는 '은근함'까지 그의 건축을 담아내고 있지만, 난 그의 모든 건축이 파격적이라고 생각한다.

 보통의 건축물은 표정도 없이 네모반듯하게 생겨 땅 위에서 오랜 세월을 단 한 번의 미동조차 하지 않고 덤덤하게 서 있지만, 구마 겐고의 건축은 그 장소에서 생산된 재료가 작은 단위로 쪼개지고 다시 조립되어 자연스럽게 새롭게 태어난 하나의 유연한 생명체 같다. 이 과정은 자연의 순환과 다를 게 없이 마치 신의 행위를 좇아 건축하는 것 같아 보인다.

 나는 이 책에서 작가가 구마 겐고를 대가가 아닌 명인이라고 이야기한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벽을 세우는 일에도 간단한 법이 없이 수많은 나무막대를 조립해 많은 시간을 할애해 쌓아 올렸고, 지붕을 얹는 일에도 전통 형식에 어긋남 없이 그 나라의 고유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비일상을 일상처럼 그곳에 원래 있었던 건축처럼 자연스럽고 낮게 짓는다.

 이렇게 건축가가 자신의 명확한 건축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자신만의 건축 언어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도를 했었을까? 그만큼 파격은 수많은 노력과 오랜 기다림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렇게 두껍게 쌓인 무게가 걸작을 만들어낸다.


책은 구마 겐고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그의 건축물을 일러스트와 만화로 재미있게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의 무릉도원, 해방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