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한국관 자리가 화장실이었다고?
작년에 이탈리아 베니스를 갔었다. 베니스 길목마다 한글로 '자유공간'이라고 쓰여있는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있어 내심 반가웠다. 베니스 비엔날레 홍보 포스터였다. 베니스에 머문 지 이틀이 되던 날, 여유가 많아 털레털레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비엔날레 행사장으로 찾아갔다. 큰 길가에 툭툭 튀어나온 독특한 국가관 건축물들이 서로 아웅다웅하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어? 한국은 어디 있지? 못 보고 지나쳤나?' 지도에서 대충 위치만 파악하고 찾아갔는데, 한국관이 보이지 않았다.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갔더니, 한국관은 작은 구릉 위에 우거진 나무 뒤에서 소심하게 숨어 얼굴을 내비치고 있었다. 한국관은 다른 국가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작아 보였고, 튼튼하지 않은 가설 건축물처럼 보여 나는 이곳에 관심을 두지 않은 한국에 내심 서운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한국관다웠다.
베니스에서는 예술과 건축을 주제로 두고 매년 서로 번갈아 가며 비엔날레가 열린다. 이 행사는 국제적으로 매우 권위 있는 비엔날레이다. 행사장은 주제관과 29개의 국가관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관은 29번째 마지막 주자로 뒤늦게 이곳에 입성했다. 한국관은 화장실을 개조해 만들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사연은 이렇다. 1993년 독일관 작가로 선정됐던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이곳에 내 나라의 파빌리온이 없으니 괜한 설움이 올라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비엔날레 부지에는 국가관의 분양이 다 끝난 상태라 한국관의 자리는 있을 리가 없었다. 거기다가 베니스 섬 자체가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함부로 건축할 수가 없었다. 백남준은 비엔날레가 개최될 때마다 자신이 지낼 만한 곳이 없어 다른 국가관 지하에서 지내야만 했다. 그래서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자마자 이제는 말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비엔날레 조직위에 행사장 후미진 곳 화장실 자리라도 좋으니 그곳에 한국관을 넣어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한다. 그래서 그는 한국정부와 협의해 행사장에 화장실 300개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지만, 재래식이라 냄새 때문에 또다시 좌절을 맛봤다. 베니스 시장한테 절절하게 편지도 써봤지만, 미적지근한 반응에 결국 그는 필살기를 쓴다. 백남준은 직접 그린 드로잉 등 자신의 작은 여러 작품을 글과 함께 관계자들에게 보내는데,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무려 대상을 받은 아티스트의 작품이라 그들도 거절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백남준은 한국관을 얻어낸다.
중국 등 쟁쟁한 23개의 국가관들이 공격적인 신청을 했었지만, 베니스 비엔날레는 한국관을 마지막 국가관으로 선택했다. 단 하나의 조건이 붙었다. 3년 뒤인 1998년에는 철거하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건축 허가를 받자 한국관을 지을 시간은 며칠밖에 남지 않았었다. 그때 한국인의 기지가 발휘된다. 3일 만에 한국관을 다 만들어버리고, 주변까지 깔끔하게 정리했다. 이후 한국관은 철거되지 않은 채로 현재까지 비엔날레에서 잘 운용되고 있다.
한국관은 건축가 고(故) 김석철과 이탈리아 건축가 프랑코 만쿠조가 설계했다. 그러나 재작년이었던 2017년에 한 아티스트가 작품을 설치하려다가 한국관이 허가되지 않은 불법 구조물이라고 발견됐다며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이는 절차상 서류가 빠져있던 것 뿐이었고, 모두 원만하게 해결됐다고 한다. 그런 사연이 있는 한국관을 작년에 가서 보았다. 마침 전시는 대한민국 60년대 경제개발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제는 'Spectres of the State Avant-garde'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이다. 그 중심에는 건축가 김수근이 있었고, 예술작품과 함께 당시 여의도와 세운상가 등 대한민국 경제개발을 설명하고 있었다. 사실 백남준과 김수근은 예술적으로 많은 걸 공유했던 사이였다. 그곳에서 난 우연히 두 거장을 보게 됐던 것이다.
이 작은 건축물이 가진 사연을 듣고 나니 한국관은 어떤 국가관보다도 힘이 있었고, 당당해 보였다. 자리가 가지는 힘은 대단하다. 베니스라는 멀고도 낯선 나라에서 작은 건축이 또 한 번 나라를 만들어냈다.
출처 : 중부매일(http://www.j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