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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철 Nov 05. 2020

에블린 그레이스 아카데미로 보는 건축의 조건

자하하디드의 공공건축 에블린 그레이스 아카데미

세계대전이 끝이 나자 영국은 몰려들어오는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나라의 문을 열었다.


런던의 브릭스톤은 이민자가 거주했던 지역 중 하나였는데, 그곳은 사람들이 사용해야할 편의시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고, 실업률도 높았다.


그러다가 1981년에 경찰이 유색인종을 과잉진압했다는 이유로 브릭스톤에서 흑인 폭동이 크게 일어났고, 이후에도 계속 크고 작은 폭동이 끊이지 않았다.


정권이 교체되자 영국정부는 이 상황을 더는 방치할 수가 없어 지역재생의 일환으로 낙후된 지역에 교육시설과 같은 편의시설을 지으면, 범죄율이 낮아질거라는 판단으로 영국전체에 3천500여 개의 학교를 짓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브릭스톤에도 아카데미를 짓기로 계획한다. 영국정부는 교육정책을 대외적으로 이슈화하고 싶었던 이유로 학교 건축의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하디드를 선정한다.


학교부지는 일반적으로 8~9헥타르이지만, 아카데미는 1.4헥타르로 상대적으로 규모가 아주 협소했다. 거기다가 아카데미는 에블린 중·고등학교와 그레이스 중·고등학교인 네 개의 학교를 모두 건축적으로 통합한 에블린 그레이스 아카데미(Ark Evelyn Grace Academy, 영국 런던, 2006~2010)를 만들어야 했다. 건축가 자하하디드는 좁은 학교부지를 수평적으로 쓰기 보다는 수직적으로 올려 공간의 효율성을 높이기로 했다. 그래서 공용홀을 중심으로 에블린과 그레이스를 양쪽으로 분할하고, 위쪽은 고등학교(upper), 아래로는 중학교(middle)를 만들어 건축을 네 덩어리로 분할했다.


문제는 학생들이 뛸 수 있는 운동장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하디드는 운동장을 작게 하나 만들고, 육상트랙을 건물 아래로 관통해 놓음으로 운동장의 기능을 서로 분리해 공간 효율성을 최대로 높였다. 그리고 체육관과 강당 그리고 도서관과 같은 시설은 공용공간으로 만들어 시간대별로 동선이 겹치지 않게 했고, 전체 건축물 중앙에 위치해 각 건축물을 연결하는 센터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했다. 아카데미는 네 개의 독립된 학교로 이루어져 있어서 학교로 들어오는 입구를 각각 다른 곳에 위치해 서로의 동선이 부딪히지 않도록 계획했다.

건축의 탄생에서 자하하디드 편


하디드는 에블린 그레이스 아카데미의 외관을 주변과 전혀 다른 건축재료를 사용해서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길 바랐다. 학생들이 또는 지역주민들이 외부에서도 바로 학교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에블린 그레이스 아카데미는 완성되어 영국왕립건축가협회(RIVA)에서 수여하는 스털링 상(Stirling Prize) 수상으로 이어졌고, 지역재생에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건축은 죽어가는 지역을 재생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단 하나의 건축이 죽어가는 도시하나를 살렸던 사례는 많이 있다.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쇠퇴한 산업으로 거의 죽어가는 지역을 완벽하게 되살렸고, 도축장이었던 뉴욕 첼시에 휘트니 뮤지엄을 지어 쓸모없는 땅이 될 뻔한 지역에 활기를 불러일으켰다. 그 사례를 받아들인 서울시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지어 오래된 동대문의 상권을 살려냈고, 서울역 앞 고가를 공원화해서 쇠퇴한 지역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켜 사람들의 어려운 마음을 크게 어루만져 주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몇몇 도시에서 지역을 살리는 배려의 공공 건축보다 행정관료를 더 중요하게 여긴 건축이 종종 보인다.


로마 시대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좋은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조건이 필요하다고 했다. 첫째는 튼튼해야하고, 둘째는 쓸모있어야 하고, 셋째는 아름다워야 한다고 했다. 세 번째 항목은 비너스타스(venustas)라고 하는데, 아름다움을 비너스로 비유하며 뷰티(beauty)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다가, 훗날 다른 건축가에 의해 뷰티가 딜라이트(delight)로 재해석되었다. 딜라이트는 기쁨이라는 뜻이다. 즉, 건축은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공공건축은 더욱 그러하다.


코로나19가 좀처럼 물러나지 않는데다가 집값이 마구 치솟는 부동산 정세로 내 방 한 칸 마련하기 힘든 이 시국에 모두를 위해 내 발 하나 땅에 딛고 한 칸이라도 올라설 건축이 주변에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매우 크다. 우리는 아래에서 위로 우러러 볼 건축이 아닌 건축 위에서 함께 멀리 내다볼 건축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중부매일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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