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지 Nov 01. 2016

고백

새벽에 쓰는 일기

나는 여행기를 잘 보지 않는다. 책도 많이 읽지 않는다. 블로그를 꾸준히 해 본 적도 없다. 에스엔에스도 전체 공개로 사용하지 않는다. 글을 썼다가도 하루가 지나 비공개로 바꾸거나 몇 년을 해 왔던 블로그도 마음이 변하면 한 순간에 닫기도 한다. 인터넷으로 내 글을 알리거나 낯선 이들을 사귀는 거에도 별 재능이 없다. 그런 내가 브런치에서 상을 받았다. 그것도 여행기로. 우어어.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여행기는 잘 보지 않지만 여행은 잘 다닌다. 많은 책을 읽진 않지만 좋아하는 책은 계속 읽는다. 알려지지 않은 좋은 글과 숨어있는 작가를 발견하길 좋아한다. 그리고 당신의 글은 정말 좋다고 얘기하는 것도 좋아한다. 가끔 하는 블로그엔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도 터 놓지 못했던 마음을 서슴없이 쏟아내기도 했었고 그렇게 마음 맞아 알게 된 사람들과 십 년 넘게 연락하며 지내고 있기도 하다.


분명 나는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걸 좋아하고 그걸로 사람들과 교감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인터넷에선 마음 편히 표현의 욕구에만 충실하기엔 걸리적거리는 게 많아져 버렸다. 일기인지 홍보글인지, 댓글을 받기 위한 댓글인지, 팔로워를 늘리기 위한 친구 요청인지. 시간이 거듭될수록 그 경계가 모호해지는 매체들 사이에서 그냥 마음을 닫아버리기로 결심했던 것 같다.


그러다 브런치를 알게 됐다. 한 번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쓰고 싶은 사람들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귀찮음이었으니까. 역시 이곳엔 내가 좋아하는 게 잔뜩 있었다. 보통 사람들의 보통이 아닌 경험담, 그 경험들을 포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써 내려간 내공 있는 글들. 그 속에서 읽을 수 있는 삶에 대한 열정과 글쓰기에 대한 순수한 마음들. 응원해 주고 싶은 삶이 세상엔 이렇게나 많았구나. 나만 하는 생각인 줄 알았는데 당신도 하고 있었구나.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응원하게 되었고 순수하게 글로서만 소통하는 재미를 브런치를 통해 되찾았다.


마감도 없는 글을 스스로 써 내려가는 작업은 어찌 보면 참 힘겨운 일이다. 한때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글을 보인다는 것에 회의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집에서 매트만 있어도 충분히 혼자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요가원에 가야 요가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누군가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다. 인정하면 쉽다. 나를 위한 기록이지만 그 기록을 같이 봐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은 중요하고 필요한 존다. 마치 운동할 때 꼭 필요한 선생님처럼. 브런치는 그런 존재다.


상을 탔으니 매거진에 쓴 글은 일 년 간 지울 수 없다. 중간에 이 곳을 없애거나 도망갈 수 없게 되었다. 다행히 아직 하고 싶은 말의 절반, 아니 그 절반의 절반도 하지 못했다. 지금도 서랍장엔 쓰다 만, 혹은 제목만 달린 글들이 수십 개 쌓여 있다. 하고 싶은 말을 계속할 수 있는 이곳이 있어 좋다. 이런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상관없이 순수하게 글로만 봐주고 응원해주는 당신들이 있어 좋다. 나는 계속 쓸 것이다. 오늘 밤에는 꼭 이런 소감을 담아 일기를 쓰고 싶었다. 아침에 보면 간지러워 지우게 될지도 모를 글을. 내게 상을 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브런치팀과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들이 대부분인 독자들에게 꼭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