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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 Mar 06. 2016

다섯 개의 공항을 거쳐 이틀을 꼬박 날아간 그곳에는

미지의 섬나라가 우리에게 손짓하던 날


우리는 정말 그곳에 있었을까


지금도 사진을 보며 생각한다. 우리가 정말 그곳에 있었던 걸까 하고. 이 섬에 오기까지 우리는 각각 다른 항공사(제주항공, 카타르항공, 노르웨지안 에어, 아틀란틱 에어)로 다섯 번의 비행을 해야 했다. 인천, 도쿄, 도하, 스톡홀름, 코펜하겐의 공항을 차례로 거쳐 꼬박 이틀이 걸린 여정이었다. 우린 대체 왜, 일 년에 한 번뿐인 황금 같은 이 여름휴가에 이렇게 멀고도 힘든 여정을 택했을까. 왜 꼭 여기, 페로 섬이어야 했을까. 


스톡홀름까지 왕복 티켓이 320달러라니!


그러니까 이건 말도 안 되는 값으로 유럽행 티켓을 손에 넣으면서부터 시작된 여행이었다. 아는 언니가 알려줬다. "홍지야 지금 카타르 항공에서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티켓을 팔고 있어! 근데 출발은 일본에서 해야 해." 나는 그때 인도네시아 섬을 여행하기 위해 막 가루다항공 티켓을 끊으려던 참이었다. 그때 자카르타 인 발리 아웃 왕복 티켓이 육십만 원 정도 했는데 그 절반 가격으로 유럽을! 그것도 북유럽을 갈 수 있다니! 갑자기 마음이 흔들렸다.


융에게 이 사실을 알린 금요일 밤, 특가 마감까지는 세 시간이 남아있었다. 우리가 티켓을 끊기엔 충분한 시간. 고민할 것도 없이 순식간에 결제는 끝나 버렸다. 스톡홀름행 티켓을 왕복 38만 원에 예약했던 그 새벽의 흥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부터 이틀 동안 우린 몹시 흥분해 있었고, 이 값싼 티켓을 손에 쥔 기회로 뭔가 더 낯선 땅으로 떠나고 싶단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융은 퇴근하면 매일 밤마다 북구의 도시들을 찾아 헤맸다.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아이슬란드에 이번에 가보면 어떨까? 시기도 유월이라 여행하기 좋은 날씨일 텐데. 우리의 마음은 아이슬란드로 점점 기울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짧은 기간(오가는 비행시간 빼고 일주일 정도)에 아이슬란드를 간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아이슬란드 북부까지 다 둘러보고 싶었고 투어만 하고 오긴 싫었다. 우리가 직접 짠 일정대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여행을 하고 싶었고 캠핑도 하고 싶었고 사람의 흔적이 닿지 않은 풍경을 보고 오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일정도 비용도 너무 빠듯했다. 아이슬란드를 먼저 다녀온 지인들의 얘기를 들으니 더더욱 짧은 기간에 그 큰 땅을 여행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쩌지? 그냥 도심 여행지는 가기 싫고 어디 더 좋은 숨은 곳 어디 없을까? 그래도 언제 가보겠어. 더 늦기 전에 가볼까? 나는 계속 고민 중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구글에 '덴마크 풍경'을 검색 중이던 융은 갑자기 소리 질렀다.


드디어 찾았어! 우리 아이슬란드 말고 여기 가자! 
여기 페로제도에 가는 거야!

응? 페로제도?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나라 이름이 융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거기가 어디야?라고 묻는 내게 흥분한 융은 한 장의 사진을 보여 줬다. 여기야. 숱한 말 보다 사진 한 장이 충분할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이었다.


사진 출처: blog-o-graphy.com


여기가 어디야? 보고도 못 믿는 나는 또 말했다. 와 이런 데가 있었네! 그래 이런 데도 있다. 여긴 바로 페로 아일랜드(Froe island).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 중간 즈음에 위치한 제주도의 두 배 크기만 한 덴마크령의 작은 섬나라. 영국과 덴마크에서만 항공편으로 갈 수 있는 곳. 그리고 2015년 내셔널지오그래픽 포토그래퍼들이 뽑은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 1위로 꼽히면서 여행자들에게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티켓을 끊었던 그날 새벽처럼 다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래 여기 가자. 여기라면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을 거야. 그때부터 우린 페로 섬에 관한 모든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국내 웹엔 거의 정보가 없었다. 대신 공식 사이트가 매우 잘 갖춰져 있었고 해외 사이트에는 그럭저럭 정보들이 좀 있는 편이었다. 시중에 나와있는 가이드북 하나 없는 미지의 땅으로 떠난다는 사실이 우릴 몹시 흥분시켰고, 우린 그때부터 우리는 스톡홀름에서 코펜하겐으로, 코펜하겐에서 페로 섬으로 들어가는 티켓을 일사천리로 예약했다.


그래 가는 거야, 페로 섬으로!


보면 볼수록 이곳의 규모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섬이었다. 비용도 합리적이었다. 4일권 교통 패스를 끊으면 모든 버스와 배 이용료가 무료였다. 그리고 하루 종일 걸으며 이곳저곳 자유롭게 둘러보길 좋아하는 우리의 여행 스타일에 이곳은 너무 꼭 맞는 여행지였다. 융은 두 달 간 퇴근하기가 무섭게 구글맵을 친구 삼아 자발적 야근에 돌입했다. 우리가 페로 섬에서 트래킹 할 만한 모든 지리와 지형지물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조립하기 시작했고 나는 숙소를 예약하고 티켓을 예약했다. 여행을 위한 우리의 분업은 밤낮없이 즐겁게 이뤄졌다. 그렇게 페로 여행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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