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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꾸녕 Oct 12. 2024

안하던 짓_여행(6)

캠핑도전: 차곡차곡하다 보면 

꾸깃꾸깃

 캠핑장에서 떠나는 날이었다.

텐트를 펴는 법은 영상이나 설명서를 재차 확인하며 예습을 해서 갔는데 결국 캠핑장 사장님이 거의 다 도와주셨고, 텐트를 접는 법은 펴는 것의 반대로 하면 될 거라 생각하고 아무것도 습득하지 않은 상태였다.

텐트 안의 모든 짐들을 꾸러미 단위로 정리를 해두고 마지막에 폴대를 빼서 텐트를 무너뜨린 후 텐트 가방에 다시 담아야 하는데 내 텐트의 규모가 크기도 하고 예쁘게 접는 법을 한 번도 찾아보거나 본 적이 없어서 대충 접은 텐트의 크기가 처음 샀을 때의 2배가 되어 있었다. 꾸깃꾸깃.

어찌저찌 집에는 가지고 들어왔고 텐트를 바삭하게 말려서 보관해야 한다고 해서 겁도 없이 그 커다란 텐트를 건조대에 펼쳤는데 텐트가 방보다 커서 도무지 펴지지가 않았다.

대충 꾸깃꾸깃 건조대에 널고 제습기를 틀어 말리고 난 뒤에 다음 날, 또 가방에 꾸깃꾸깃 쑤셔 넣고 끙끙대며 넓은 옥상을 찾아 나섰다.

7.5m 길이의 거실형 텐트

이렇게 커다란 텐트를 무슨 생각으로 집에서 접겠다고 한 것인지 나의 수상한 자신감이 이해되질 않았다.


 옥상에서 텐트를 무사히 펴고 찾아본 영상대로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기껏 하루동안 제습기로 말려놨더니 비라니... 에이! 다시 하면 되지 하고 급한 대로 또 꾸깃꾸깃 가방에 쑤셔 넣고 2시간 정도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2시간 후, 일기 예보도 이제 비가 오지 않는다고 되어 있고 하늘도 화창하길래 또다시 텐트 가방을 들고 옥상에 가서 촥촥 펼치고 시작하려는데 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텐트 정리 그만하라는 계시였다.

구름과 해가 나를 보며 장난치는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ㅅㅂ, ㅅㅂ 대 놓고 소리 내서 욕을 하며 짜증과 함께 젖은 텐트를 다시 텐트 가방에 꾸역꾸역, 꾸깃꾸깃 담아 차에 실어두고 혼자 화가 나서 집으로 들어와 버렸다.


3일 뒤에 다시 공휴일이 있어서 차분한 마음으로 텐트를 들고 다시 찾은 옥상.

텐트 접기 성공

유난히 볕이 쨍하고 바람도 시원하게 부는 날이었다.

볕과 바람이 함께라서 10분 만에 눅눅했던 텐트가 바삭하게 말랐고, 텐트 접기 실패 후 꼼꼼하게 찾아본 영상대로 텐트를 차곡차곡 접어서 드디어 텐트 접기에 성공했다.




텐트를 접으면서.

숙제도, 과제도, 목표했던 일들도, 사람 관계도 나는 언제나 마무리를 똑바로 못 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숙제나 과제는 기껏 잘하다가 마지막에 귀찮아서 대충 마무리하고, 목표했던 일들도 초반엔 꽤나 열심히 잡고 늘어지다가 끝에 가서는 도저히 나랑 맞지 않는군! 이러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며 포기하고, 옛 애인들과의 관계에서도 제대로 끝맺지 않고 이별을 했던 것 같다.

오늘 서점에 들렀는데 눈에 띄는 책이 있었다. 니체의 너는 편하게 살고자 하는가.

편안함이 성장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주장하는데 나에게 적용해서 해석해 보자면 어느 정도의 고통은 감내하며 발전하고자 했지만 최고 고통스러운 부분을 끝까지 넘기지 못했기 때문에 완전한 성장을 하지 못했다.라고 공감되는 책이다.


누구든지 살아가면서 많은 일을 겪는다. 일을 겪게 되는 초반부에는 당사자인 내가 겪어야 하는 일이니까 누구든지 일을 겪을 수는 있다. 다만 일이 진행되면서 장기든 단기든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인데 일이 끝나기까지 얼마큼의 애를 쓰고 끝까지 감내하느냐, 또 일이 끝날 때까지 그 일이 내 일이라고 여기며 얼마나 끝까지 지구력으로 버티느냐의 일은 니체가 말하는 것처럼 편하게 살려고 하지 않는 성장하는 인간의 표본이겠다.

그러니까 나는 일을 겪어는 봤지만 성장하고자 하는 사람이 되어 본 적은 없는 것이다. 즉, 어떤 일이 벌어져도 알아서 해결되기만을 기다리며 편하게 살고자 했다는 것.


캠핑을 다니면서 여행기를 연재로 적어보려고 했는데 캠핑을 매주마다 다녀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첫 캠핑을 다녀오자마자 나에게 결핍되어 있던 부분들, 앞으로 제대로 다져야 할 태도들에 대해서 느끼고, 정리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캠핑 여행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느껴진 부족한 부분들과 계기들을 잘 눌러 담아 채우고, 차곡차곡 예쁘게 정리하는 시간을.

그러니까 편하게 살고자 하지 않으려는 나를 다독이는 시간과 글이 필요해 보인다. 

캠핑 여행기 연재를 자연스럽게 급 마무리 짓는 내 모습임 ㅋㅋ


짐을 싸고, 필요한 것을 사고, 짐을 싣고, 운전을 하고, 짐을 풀고, 규칙 없는 하루를 보내고, 원상 복귀하며 마무리를 차곡차곡하는 일까지 일련의 모든 과정들이 내게 조언했다.

"차곡차곡하다보면 다 끝나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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