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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꾸녕 Oct 09. 2024

안하던 짓_여행(5)

캠핑도전: 불안과 강박에는 캠핑처방

괜한 걱정이 괜한 짓.

2박 3일 일정으로 드디어 첫 캠핑을 다녀왔다.

캠핑을 하기에는 너무 작고 오래된 경차와 그런 경차에 함께 타고 가기에는 너무 커다란 중형견에 대한 걱정, 장비를 구매해서 시작했는데 나와 캠핑이 안 맞으면 이 장비들은 또 어쩌지 하는 걱정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대며 끊어지질 않았는데 다녀오고 나니 모든 걱정이 괜한 짓거리였다.

캠핑을 가는 날 새벽에는 처음 해보는 일들 투성이라 시간을 넉넉하게 계산해서 준비하기로 했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모든 짐을 차에 꾸역꾸역 싣고 인근 한적한 공터로 차를 몰고 가서 생애 첫 자동차 루프백을 설치했고 생애 첫 캠핑 짐들을 테트리스 하며 차에 쌓았다.

경차와 중형견

평소와 다른 자동차의 묵직함을 느끼며 바람에 의해 혹여라도 고속 주행 중에 루프백에 문제가 생길까 봐 옆으로 지나가는 반짝거리는 검정색 대형차들에 비친 내 차를 보며 '휴~ 루프백이 무사하군.' 하며 캠핑장까지 조심조심 운전해서 무사히 도착했더니 이렇게까지 걱정할 일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고마운 사람들.

몇 년 만에 다녀보겠다고 해서 그런 건지 캠핑을 하겠다! 떠들고 다녔을 때 여기저기서 많이 빌려주고 나눠주고 알려주고 응원해 줬다. 든든했다.

심지어 캠핑장에 도착해서 텐트를 치는데 도저히 모르겠는 거다. 지나가는 사장님에게 "도와주세요!!" 다섯 글자를 외쳤는데 오시더니 척척척척척 다 해주셨다.

다음 캠핑 때는 꼭 스스로 해야 하는데 너무 빨리 다 해주셔서 눈으로 방법을 좇느냐고 눈이 매우 바빴다.

생각해 보면 우리 중형견 라떼도 캠핑을 도와줬다. 원래 무지하게 예민한 녀석이라 낯선 곳에서 작은 소리에도 겁먹고 짖는데,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매우 무뎌졌다. 캠핑장까지 가는 3시간 동안에도 한 번도 낑낑대지 않고 차에서 잘 자주 었다.

다들 고맙습니다. 덕분에 첫 캠핑이 좋은 기억이 되어서 더 욕심내게 되었어요!


불안과 강박.

 오래된 차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싶어서 카센터에 방문할 때마다 수리할 곳이 군데씩 발견되어서 계획에 없던 지출을 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스트레스를 받았다. 점점 안 보이는 문제가 있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었는데 나중에는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하기 시작했다.

'어휴~이거 제때 발견 못했으면 진짜 일어날 뻔했네!', 

'이야~이걸 미리 발견하고 가서 고친 내가 대견하다!', 

'엣헴! 문제가 생길 때까지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니까 문제가 생길 때까지 추가적인 걱정은 하지 말자!'라고 하면서.

생각을 바꿨다기보다는 내가 생각을 살짝 조종한 것뿐인데 정말로 마음이 편해졌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할지 걱정하면 되는데 왜 발생하지도 않은 문제를 발생할까 봐 미리부터 상상하고 걱정하는 것인지 이래서 어른들이 걱정도 팔자라고 말씀하시는 건가.


 캠핑장에서 첫 째날에는 텐트를 치고 나서 이리저리 정리를 했더니 지인들이 와서 함께 저녁을 먹고 가고 둘 째날에는 아무 계획 없이 해가 떠서 일어나 밥을 대강 먹고 쉬다가 텐트 정비와 정리가 하고 싶으면 일어나서 잠깐 하다가 커피가 먹고 싶어서 인근 카페에 어슬렁어슬렁 갔다가 와서 노래를 들으며 책을 읽고, 강아지 운동장에서 우리 개가 뛰어놀 수 있게 해 줬다가 가만히 또 앉아서 핸드폰 웹툰을 보다가, 책을 보다가, 일기를 쓰다가, 저녁을 먹으려고 화롯대에 불을 피우고 와인을 한 잔 마시고 도란도란 대화를 하다가 밤이 깊어 씻고 잤다.

 돌이켜 보면 모든 일정에 정해진 시간이 없고 계획이 없었다. 비행기가 지나가면 가만히 비행기를 보고, 파란 하늘에 구름이 떠가는 방향을 봤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규칙 있게 나가던 개 산책도 자유분방했다.

내가 방문했던 캠핑장은 어느 정도 예의 있는 개에 한해서 오프리쉬가 가능한 분위기라 잠깐씩 주변을 잘 살핀 후에 줄을 놓아줬는데 텐트 근처 풀 숲에 가서 알아서 배변 활동을 하고는 나에게 치우라고 물끄러미 바라보길래 어이가 없기도 했다.

매일 지키던 규칙과 루틴들을 전부 지키지 않아도 무사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

그 당연한 사실을 지금까지 경험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혹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아주 오래전에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굉장히 새롭고 평화로웠다.


그렇다. 나는 불안도가 높고, 약간의 강박 증세가 있다.

별 일 아닌 일 또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생각하며 불안함에 손가시를 뜯거나 가마를 뱅글뱅글 꼬고, 정해진 일정이나 생활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상당히 불편하고 예민하다.

규칙적인 생활은 건강을 위해 너무도 중요하지만, 깨고 싶거나 깨도 될 때는 깨야 하는 것이 규칙인데 규칙을 무슨 일이 있어도 잘 유지하며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나에게 너무 강력하다.

그런데 그 강력함이 캠핑이라는 평범하고도 특별한 경험으로 깨져버렸다. 

처음 또는 오랜만에 느껴본 평온함의 2박 3일은 생활이 아니라 삶이었다.

캠핑이라도 해보라고 권유해 준 직장 동료에게 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다고 카톡을 보냈다. 캠핑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고, 입문하게 해 줘서 감사하다고. 

단지 어디론가 떠나서만이 아니라, 떠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떠나서도 좋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앞으로 틈만 나면 다닐 예정이다. 단, 여름은 빼고!

잘 자고 일어난 우리 개 라떼씨
불멍. 불 끝이 추는 불규칙한 춤이 이뻤다. 불도 규칙을 깨줌.
친구가 회를 사가지고 놀러 왔다.
저래 보여도 엄청 커다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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