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사장이었던 기록: 한 때는
카페를 처음 오픈했던 2014년.
커피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가족이나 지인 중에 자영업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장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전혀 모르고 시작했다는 뜻이다.
대형 카페들이 여기저기 열심히 자리싸움을 하며 생기던 때였고 아메리카노는 어디 브랜드가 맛있고, 라떼는 어디가 더 맛있다 등을 논하던 시기였으며 동네 카페는 동네별로 달랐겠지만 천천히 생겨나는 때였다.
이전 임차인이 쓰던 1구짜리 오래된 커피 머신과 아주 작은 사이즈의 제빙기, 냉장고 등을 그대로 받아서 썼고 메뉴는 보통 카페라면 다 있을 법한 기본적인 메뉴들로만 구성했다.
그나마 정말 다행이고 운이 좋았던 것은 친한 친구의 친구의 어머니가 커피 교육원과 원두 로스팅 사업을 하고 계셔서 소개를 받았는데 원두 맛이 아주 좋았다는 것.
여름에 공사를 하고 가을 즈음 오픈했는데 당시 후암동은 지금처럼 젊은이들이 많이 사는 핫한 동네가 아닌, 전쟁을 겪고 난 뒤 터전을 잡고 쭉~ 살고 계신 토박이 어르신들이 많은 조용하고 잔잔하며 고즈넉한 동네였다.
아침과 저녁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는 유동인구의 반 이상이 뒷짐을 지고 다니시는 70대 이상 어르신들이라고 해도 거짓말이 아닐 정도였다.
심지어는 손님 없이 우두커니 밖을 바라보면서 손님을 기다리면 할머니들이 들어오셔서 호통을 치셨다.
"여기에 왜 이런 걸 돈 들여가지고 냈어? 부모님이 해줬어? 여기는 이런 거 안돼!!" 라며.
아무래도 20대 중반을 갓 넘긴 내 모습이 철없고 어리숙해 보여서 더욱 호통을 치고 싶으셨을 것이다.
아니면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 되는데 가만히 기다리는 모습에 답답해서 그러셨거나!
오픈하고 가을까지는 너무 손님이 없어서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약간의 여유 자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불안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차린 나만의 가게에서 바쁘진 않았지만 혼자 일 하고 터덜터덜 퇴근하는 길의 쓰잘 떼기 없는 낭만에 크게 취해 있었다.
(당시에 얼마나 한가했냐 하면은 박경리의 소설 "토지"를 1권부터 20권까지 완독 하는 결실을 맺음. 심지어 20권은 어찌나 집중해서 읽었는지 눈물도 흘림)
문 열어도 드나드는 손님은 없었지만 매일 아침 7시 반에 빠짐없이 문을 열고 밤 10시가 넘어서 문을 닫았더니 겨울 즈음 낯을 많이 가리던 숨은 20,30,40세대들이 어디선가 나타나 서서히 얼굴을 비치기 시작했다.
호통을 치셨던 할머니들도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커피 한 잔 팔아준다며 들어오셨다가 생각보다 괜찮은 커피 맛에 집에 가서 다른 가족들에게 가보라고 권유를 해주시기도 하고, 장사가 안되면 내가 찾아가야겠다! 싶어서 가까운 은행이나 어린이집에 직접 음료, 커피를 배달해 드리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후암동 종점 로터리의 랜드마크가 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