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
가장 평범한 하루가 가장 안정적인 삶이 되는 매일이다.
인생의 밑바닥을 찍었던..꼭 밑바닥이어야만 하는..(작년보다 더 밑바닥이 있으면 안되기 때문에 ㅋㅋ)작년에는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여기저기서 많이 얻고 받아서 올해는 내가 필요한 장소와 사람들에게 받은 힘을 나누어 주며 살자고 마음을 먹었다.
교회 반주 봉사도 하고, 후배가 운영하는 창작 워크샵도 나가고, 개인적으로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도 두 가지나 하고 있다. 업무가 고된 날도 있지만 차근차근 하나씩 해나가고 있다.
아무리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해나가도 시간을 성실히 흐르고 벌어질 일들도 차근차근 일어난다.
요양원에 계시던 사랑하는 할머니가 이제는 정말로 떠날 준비를 하고 계신다.
태어나기 전부터 친가,외가 할아버지는 두 분 다 돌아가셔서 뵌 적이 없지만 나의 외할머니는 내가 눈도 잘 못뜨던 아기 때 사진 속에서부터 늘..쭉 함께 곁에 계셔 주셨다.
할머니는 너무 옛날 사람. 그러니까 29년생이라서 전쟁 때 장독대에 숨기도 하며 살아온 분이기 때문에 엄마, 이모 말로는 언제나 아들이 최고고 아들밖에 없다고 하셨지만 나는 아무렴 상관 없었다.
그냥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큰 아들에게 가장 기대하고 의지하는 옛날 사람이고,
그렇다고 딸들을 대강 생각한 것은 아니며,
그저 할아버지가 사업을 하다가 망하고 그 이후 급히 세상을 떠나신 탓에 모진 가난을 견디며 오남매를 악착같이 키워낸 위대한 엄마였고,
세심하지 못한 아들들에게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들어도 남들한테 자식 욕 한번 한 적이 없으며,
다만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참다가 속에서 열불이 나서 그나마 편한 딸들에게는 가끔 생채기 나는 모진 말을 하며 속을 풀었던 평범한 모녀 사이를 지내던 깍쟁이 엄마였던 것이다.
그리고 손녀인 나에게는 나의 모든 역사에 고생으로 두툼해진 투박한 손을 부비며 무한한 사랑을 주신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사람이었던 것.
어릴 적 할머니랑 같이 살았기 때문에 매일 할머니랑 같이 잠들었었는데 잠이 안 올때는 할머니한테 참 요상하게도 발바닥을 만져달라고 했었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거친 손으로 내 발바닥을 간질간질 만져 주었지만 손이 너무 거칠어서 간지럽진 않고 견디기 딱 좋은 감칠맛 나는 기분이 들어 바로 잠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할머니보다 키가 훌쩍 커지기 시작했을 때는 팔 길이가 맞지 않아 손을 잡고 다니던 버릇이 팔짱을 끼는 방법으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할머니랑 함께 밤을 보낼 때면 어릴 때처럼 할머니 품에 내가 다 들어가지 못해도 몸을 웅크려 할머니에게 한껏 안겨서 잠이 들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20살 대학에 입학하며 서울로 상경을 했고, 처음 술을 배우며 허우적대다가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절망하니 할머니가 핸드폰을 다시 사주시면서 앞으론 잃어버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고 그 이후로 핸드폰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짓은 한 번도 하질 않았다.
또, 2006년 그 때만 해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핸드폰 사용이 보편화되지 않았었는데 우리 할머니는 매일 게이트볼장에서 운동하고 친목을 도모하느냐고 연락이 잘 되지 않아 나도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할머니의 첫 핸드폰을 사드리며 게이트볼장에 가서도 제발 전화 좀 잘 받으시라고 할머니에게 받았던 신신당부를 되돌려 쳤다.
이렇게 핸드폰을 가지고 서로 신신당부를 한 번씩 하며 그 때부터 할머니에게 할 말이 없어도 그냥 매일 전화해서 할머니 뭐해, 밥 먹었어?, 어디야? 이 세가지 질문을 매일같이 하곤 했고 할머니는 늘 전화를 받자마자 지원이여? 어디여? 밥 먹었어?를 반복하며 서로 매일 똑같은 3개의 질문에도 늘 한결같이 반갑고 그리운 마음을 주고 받았다.
2006년 대학생때부터 2021년 30대 중반이 될때까지 이렇게 매일같이 통화하던 할머니의 전화 통화 목소리가 어느 날 이상해서 엄마에게 울면서 전화를 했고 그 날 이후 할머니는 병원으로 이모집으로 결국 요양원으로 그렇게.
예전부터 할머니가 없는 삶은 종종 상상하며 가슴 저미곤 했었다. 갑자기 닥치면 너무 무서우니까 그랬던 것 같다.
종종 상상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처음 할머니가 요양원에 갑작스럽게 입소하셨을 때는 많이 고통스러웠다. 전화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니. 이렇게 요양원에서 삶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거라고? 왜? 하면서 속상하고 화가 나고 이해도 힘들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정말로 없을 때를 대비한 연습 시간이 주어졌던 것 같다.
할머니는 이제 많이 힘이 없으시다. 어릴 때는 할머니한테 100살까지 살게 해달라고 기도할거야!!라고 했는데 할머니가 100살까지 계시기에는 너무 힘이 버거우시다.
언젠가는 무조건 겪어야 할 일이었던 내 인생에 아주 클 예정인 사건. 엄마는, 이모는, 외삼촌들은 얼마나 더 클까를 생각하면서 할머니는 이제 어디로 가시는 것일까를 상상하면서 애니메이션 코코를 떠올리면서 그렇게 더 연습을 하자.
사랑하는 할머니. 나의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