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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꾸녕 Oct 26. 2023

人스타그램

나를 알리다 나를 잃어버림

1. 나를 삼킨 인스타그램

가장 오래 사용하던 인스타그램 개인 계정을 잠시 비활성화시키기로 했다.

뭔 대단한 일인 것처럼 수줍게 고백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나의 모습이 남에게 보이는 것, 남의 이야기들이 보이는 것에 피로함과 불안함.. 그런 비슷한 종류의 기분이 매일 들었는데 고민하다가 그럼 안 하면 되잖아?로 급 결론을 내렸다.

나의 모습이 남에게 보이는 것이란 표현보다는 남에게 보이고 싶은 내 모습이란 표현이 더 맞겠다.


누군가에게 빠르게 닿을 수 있는 수단들의 목적은 스마트한 휴대폰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쓰게 되면서

연락->대화->소통->공감->기록->광고

이렇게 변한 것 같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다가 말이다.


청소년 때부터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프리챌, 버디버디, 다모임, 네이트온, 싸이월드, 네이버블로그 등을 써본 적이 있었고 지금은 인스타그램과 브런치스토리를 사용한다.


버디버디 이전에는 친구들과 소통할 때 오로지 전화 또는 손 편지 등을 주고받으며 갖가지 소식을 전했다. 답장 꼭 줘~ 이러면서.ㅋㅋ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때는 너무 어렸을 때긴 하지만 의외로 최신 문명에 뒤쳐지기 싫어하는 아빠 덕분에 두껍고 거대했던 콤퓨타 모니터로 실체가 없는 사이버 세계를 빠르게 구경하고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본격 대화 채널인 버디버디, 네이트온이 중학생 때 퍼지면서 편지 대신 집에 가면 바로 컴퓨터를 켜서 친구가 실시간 로그인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별 중요하지 않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버릇이 생겼고 고등학생, 대학생 때는 싸이월드에 웃긴 사진 올리고 웃긴 사진에 웃긴 댓글 다느냐고 바빴던 것 같다.

 네이버블로그는 이 거리 저 거리 돌아다니며 사진 찍고 구구절절 하루의 이야기를 담느냐고 바빴고 말이다.


그리고 인스타그램!

첫 계정은 10년 전 작은 커피숍을 개업하면서 만든 것이었는데 이번에 비활성화시킨 계정으로써 목적은 가게의 홍보를 위해 만든 계정이었다.

오픈하고 가게가 휑할 때 "요즘은 이런 어플로 가게 홍보도 많이 한대~"라고 친구가 말해줘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아이러니한 것이 정작 그 친구는 인스타그램을 귀찮아하는 친구였고 지금은 더 심하게 귀찮아한다.


물론 처음부터 배짱 있게 대놓고 가게를 광고하고 홍보하진 못했다.

단지 “이런 사람이 하는 가게예요~ 편하게 오셔요” 또는 “우리 가게에서는 이런 에피소드가 벌어져요 재밌겠지요? “ 또는 개인적인 일상 이야기들로 편하게 채워갔고 인스타그램 하는 손님들이 늘어갈수록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며 조금씩 친밀감을 갖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친밀감이 쌓이고 소통하는 재미에 그때부터 인스타그램은 습관이 되었다.

어딜 가거나 먹거나 놀거나 웃기거나 놀라거나 슬프거나 하는 모든 에피소드와 감정을 인스타그램으로 집어삼켰고,

스토리 기능이 생기면서는 더욱 짧은 주기로 사용하게 되었다. ‘아 이거 빨리 올려서 보여주고 싶다!’


2. 눈치게임 하다가 삐짐

3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문득 예전보다 사람들이 피드보다는 스토리 중심으로 인스타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유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생각해본다.

걍 바빠서.

캡션 쓰는 것이 귀찮아서.

피드로 계속 남기는 것이 찜찜해서?

스토리는 누가 봤는지 다 아는데 피드는 보고도 좋아요 안 누르니까?

계속계속 올려도 도배되지 않으니까.

좋아요 수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또 어떤 이유가 있을까 궁금하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지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 다른 사람들은 아예 다르게 생각하는지.

그런데 이제는 인스타그램이 또 릴스를 많이 찍으란다.

계속 새로운 뭐가 생기네.


요즘은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이용자에게 추천 게시물이나 광고가 뜬다. 심지어 네이버나 구글에서 검색한 것과 관련된 것이 인스타그램에도 뜨고 뭘 살까 말까 고민하면 인스타그램에 뜨고 어딜 갈까 생각하면 인스타그램에 뜬다. 어디가 아프면 추천 영양제도 뜬다. 참나.  

신기하면서도 괘씸하다. 나의 모든 것을 인스타그램에게 알려주고 인스타그램이 정해둔 길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듯한 이 느낌. 알고리즘이 뭔데 나의 모든 것에 관여하려고 하는지 재수가 없는 느낌이다.

자꾸 소비하게 만드려고 해서 그러는 듯.


3. 역행을 역행하는 역행자

사람들이 나의 계정에 오래 머무르게 해야 하고, 좋아요를 많이 눌러야 하고, 내 게시물을 어디론가 퍼다 날라야 하고, 댓글도 활기차게 달려야 하고, 노출이 많이 되는 적재적소의 시간대를 노렸다가 게시물을 올려야 하고.. 이것들은 알고리즘이 높은 점수를 주는 공식같은 것이다.

 아마 이런 점을 알게 된 이후에 인스타그램 어플에 대한 묘한 거부감이 생긴 것 같다.

치.뾰로통한 느낌이랄까.


처음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던 목적은 가게 홍보였지만 정작 하다 보니 누군가와 지속적으로 빠르고 쉽게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공유하고 눈치 보지 않고 소통하는 재미가 더 커졌었다.

 그런데 그것을 나 스스로 편하게 하지 못한다면 나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도, 내가 다른 사람의 일상을 건조하게 무심코 보면서 넘기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소중한 사람들과는 카톡이라도 하고 전화하고 만나면 되니까.


인스타그램 그까짓 것이 뭐라고 글까지 쓰냐 싶지만 강아지 똥 산책 외로 10년 동안 꾸준히 해온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라서 어찌 보면 의미가 크다


가게 계정을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인스타그램이라는 어플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앞으로도 계속 알아가야 한다.

대체 얘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걸 싫어하는지 고민하며 얘한테 잘 보이기 위해 화질 좋은 카메라로 바쁘게 무언가를 찍으면서 시도해야 한다.

 나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만든 컨셉을 표현해야 하는 또 다른 세계.


애증의 세계.

더 나은 컨셉충이 되어 돌아갈 테다.

당분간 ㅂㅂr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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